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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 트랙 - 주재원 후보군 되기

입을 열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결국 내 성장을 스스로 선언했다

by 츤데레달언니

나는 회사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남편은 해외 주재를 마치고 돌아왔고, 아이도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한 직무에서 15년을 넘기며, 나도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었다.

예전에 나를 아끼던 선배들이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내게 혹시 주재를 생각해 본 적 있냐며 물어왔었는데,
그때는 해외 주재원은 나와는 매우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였던 듯,
"아휴, 제가 어떻게 가요" 그렇게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일차로 남편의 의중을 떠보았더니, 그 역시 찬성하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해외 파견은 궁극적으로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남편의 동의가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 부서장에게는, 솔직하게 주재원이 되고 싶다고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부서장과 공식적인 면담 절차가 없었기에,
면담을 요청하거나 메일로 상황을 설명해야 했는데 나는 부서장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당당하게 일하고 회식에서도 분위기를 휘어잡던 내가,
정작 나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굉장히 쑥스러웠다.

그런데, 그걸 왜 부탁이라고 생각했을까.

내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탁이 아니라, 내 안의 욕구에 대한 존중이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면서,
대신 나의 해외 파트너였던 주재원 선배들에게는 주재 가고 싶다고 노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 같다.


드디어 부서장에게 나의 커리어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공식적인 면담은 아니었고, 캐주얼한 자리에서 슬쩍 꺼낸 이야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주재원 후보군은 본사 부서장의 해외 조직 운영 전략과,
현지 법인 주재원의 후임에 대한 기준이 중요했기에,
지금처럼 공식적인 선발 풀을 통한 시스템이 아닌, 비공식적인 보이스가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미국 법인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담당 품목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작았다.
부서장이 나를 프로모션 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그 시기, 우리 회사의 전 세계 주재원 2-300명 중 여성은 10명 이내에 불과했던 터라,
여성 주재원 선발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선배들은 나를 도와주었다.
미국 법인에 있었던 주재원 선배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본인 주재원 후임이라며 과장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고,
다른 품목의 기획 부서 선배는 나의 이름을 후보군 리스트에 넣어주었다.


그 사이 부서장이 교체되었다.
새로운 부서장은 현지 법인의 요청을 "업무 할 사람이 없다"는 궁색한 이유로 묵살했다.

나중에 들은 어이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부서장은 나의 커리어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성장만 중요시했던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미국이 아닌 유럽 지역 주재원 후보로 발령을 받고,
주재원 교육에 입소하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실은, 내가 주재원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작은 표현에도 주변 선배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오랫동안 지켜본 나의 업무에 대한 진심, 열정, 헌신을 기억했고,
그 보답으로 나를 밀어주었던 것 같다.


조직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재원 후보나 승진 대상자를 사전에 풀로 만들고,
공개적인 선발 과정과 기준을 운영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구성원 개인이 자신의 비전을 설계하고,
스스로 부서장에게 선언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구성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였고,
각자의 커리어 성장 비전을 듣고, 내부 풀을 만들었다.

중간 관리자들과 협력하여 구성원들의 비전을 하나씩 달성하도록 지원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공개적인 평가 기준도 함께 마련되었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직접 내뱉은 성장 비전을 토대로,
스스로의 업무와 직장 생활에 대한 동기부여를 만들어갔다.

그것은 나에게도, 조직 관리에 있어 큰 자산이 되었다.


주재원은 또 다른 성장의 세계였다.

나는 그 세계에서, 또 다른 나와 나의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프랑스 법인으로 최종 발령을 받았다.


다음 편에서는, 프랑스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고
좌충우돌 일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프랑스에서 일하기 (1) – 세 달 안에 조직 장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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