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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회사생활 틈 사이, 반짝였던 후배들

그때 만난 미리와 경민, 그들은 여전히 내 곁에 같이 걷고 있다

by 츤데레달언니

지겨운 회사생활 속에서도 내가 꿋꿋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그때 만난 후배들 덕분이었다. 나는 당시에 작은 조직의 장을 맡고 있었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집에 가는 것은 잊은 듯한 열정은 아마도 후배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법했다. 나의 부서로 입사한 신입 사원 미리는 큰 키에 늘씬하였고 노랗게 물들인 머리로 처음 조우하였다. 사전에 듣기로는 회사에서는 보기 드문 S 대 출신이라고 했다. 노란 머리를 지적하려는 순간, 신입 사원 수련회에서 응원단이었다고 했다. 응원단은 각 회사의 응원을 지휘하는 최고봉으로, 그날을 위해 한 달간 피나는 연습을 거듭하여 전문 응원단 뺨치는 모습으로 변모를 하게 된다. 나 역시 신입 사원 시절 경험한 터라, 미리가 응원단이었으니 노란색 머리쯤이야 하면서 넘어가게 되었다.


미리는 똑똑한 후배였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개 정도는 우습게 일처리를 해내면서도 나의 빨간펜 지적에 즉각 대응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빨간색을 줄여가는 심지 굳은 친구였다. 사실 나는 그때 미리에게 공을 들였다. 신입사원의 1년이 평생을 좌지우지한다는 나의 어록을 실천해야 했고, 여자 선배가 얼마나 똑 부러지게 여자 후배를 가르치는 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미리야 말로 나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그녀를 가다듬어 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 잔소리를 해대서 집에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미리와 나는 3-4년 정도 같이 일했는데 나중에는 표를 낼 수는 없었지만, 미리가 자랑스러울 지경에 도달했다. 미리와 나는 동반 출장도 많이 다녔었는데, 우리는 중남미 미국을 돌아다니며 반드시 오더를 따오겠다는 영업의 집념을 과시라도 하는듯, 출장지역마다 법인, 거래선 등과 미팅하면서 완벽하게 사전에 준비하고, 미팅할 때는 거래선 옆에서 침 튀기며 제품을 설명하였으며 미팅 후 석식, 회식 자리마저도 영업의 일환으로 여기면서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본사에서 들이닥친 아마조네스 전사의 느낌처럼,,, 그러다가 나는 해외 주재를 나가게 되어 미리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후로 10년간 두세 번 정도 만났을까. 미리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이지 워킹 우먼으로 지내면서, 남편이 해외 주재를 가면 홀로 본사에서 버티다가 , 본인도 다시 주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한참 후 미리가 주재하던 그 나라에 출장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린 오래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미리는 남편이 주재를 간다고 했을 때, 나를 떠올리며 본인 역시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본인 역시 주재를 가게 되었던 것도 나의 영향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내가 그녀의 롤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감격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힘들었던 그 순간에 얘도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고 울컥했었다. 미리와는 나중에 같은 부서의 임원과 그룹장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후일담은 연재 중에 또 나올 것이다.


또 다른 한 여자 후배는 경민이다. 경민이는 경력으로 입사한 내 옆 부서의 핵심 인재였다. 경민 역시 키도 크고 제법 덩치도 있었으며 게다가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후배였다. 어느 날 퇴근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게 되었다 날씨는 비가 올 듯 흐리고 그 당시 나는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즐겼던 지라, 우연찮게 경민과 그 동네에서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하기로 했다.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우리는 장소를 세 번쯤 옮기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그녀의 인생에 나의 인생에 콧물에 눈물에 술김이었는지 아니면 팍팍한 현실을 그렇게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그날의 술자리는, 그 후 우리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경민 역시 똑똑한 후배로 일사천리 같은 일처리에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말솜씨에 술도 잘 마시고 동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친구였다. 다만 업무에는 단호함이 있어, 그녀의 주변인에 대한 호불호 기준은 항상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였던 것 같다. 경민의 아래 사원들은 일을 호되게 배워가며 우수한 사원으로 거듭나기도 했으나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민과 나는 자주 만나서 회사 업무의 노곤함과 상사의 피곤함에 대해 험담으로 풀어내기도 했고,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 분위기에 분노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각자의 커리어 성장에 대해 상의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경민은 유럽의 어느 나라에 주재원으로 단신 파견 나갔다. 참고로 그녀는 싱글이다. 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로 파견 나갔었기 때문에 우리는 유럽 주재원 회의나 전시회 같은 때 가끔씩 조우할 일이 있었다. 유럽의 주재원 들답게 와인잔을 기울이며 주재원의 외로움, 사업의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다나 경민은 본사로 귀임하기 얼마 전 내게, 아름다운 그 나라의 유명한 찻잔 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줄때도 쿨하게. "그냥 언니 줄께요" 아직도 그 찻잔 세트는 아까와서 사용하지 못하고 그처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 둘 다 파견을 마치고 본사에서 만났을 때, 경민은 내가 임원 승진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실 때마다 나와 밤새 술을 마셔주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으며, 마중 나온 우리 남편의 곱지 않은 시선을 기어이 견뎌준 나의 절친이 되었다. 이후 나의 마지막 몇 해를 같이 일하면서 또 다른 시련을 같이 겪기도 했는데. 그 후일담 역시 나중에 풀어내려고 한다.


내가 그 두 명의 여자 후배를 글로 남기는 이유는, 그들은 나의 과거에만 머무는 존재들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각자의 인생을 쳐다보며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또 가끔은 만나서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헛헛한 나를 끊임없이 만나주며 과거의 추억을 통해 나의 자존감을 드높여주기도 하면서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내게도 영감을 주는 후배들이 어쩌면 이제는 친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지겨웠던 회사생활도
그들이 있었기에 따뜻했다.

그리고 지금도,
내 곁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나의 친구들이다.

다음 편에서는
‘지겨운 회사생활의 틈’ 속에서
마침내 성장 트랙에 올라서던 순간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제목은
〈나의 성장 트랙 – 주재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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