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회사 선배들에게서 자주 들었다.
"입사 후 1, 3, 5, 7, 9년 차쯤엔 이직하고 싶은 유혹이 온다."
요즘 말로 하면 ‘현타’가 오는 시기.
그런데 나는 마치 홀린 듯, 회사를 씩씩하게 잘도 다녔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그런데 10년 차가 되자, 처음으로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일은 손에 익어 척척 진행되고, 사람들과도 두루 잘 지냈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게 다일까?’
매너리즘이었을까?
주변을 돌아보니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주재원 후보군으로 뽑혀
해외 법인으로 하나둘씩 파견을 나가고 있었다.
해외영업에서 주재원은 성장 트랙의 정점이자, 일종의 꽃이었다.
대리 때 지역 전문가로 선발돼 1년간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과장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당 국가로 파견되는 구조였다.
당시엔 그 세계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었다.
잠시 ‘지역 전문가’ 제도를 설명하자면,
해외시장 이해를 위해 선발된 우수 사원에게 외국어와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주는
굉장히 선진적인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었다.
자발적 지원이 아닌 선발 방식이었고,
다녀오면 주재원 트랙에 자동 진입하는 구조였기에
당시 해외영업 부서에 입사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마음에 품은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감생심.
입사 직후 결혼, 임신, 출산이 이어졌고,
육아는 시댁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엇이든 가고 싶어도, 보내준다 해도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즈음 나는 다른 제품군으로 이동해
3~4명의 후배를 두고 ‘과장님’ 소리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업무는 익숙했고, 후배들에게는 교관처럼 A부터 Z까지 빡빡하게 가르쳤다.
육아보다 회식을 선호하며 야근 핑계를 대고 회사에 남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시부모님께 참 미안한 시절이다.
남편도 나와 같은 해외영업팀 소속이었고,
당시 지역 전문가를 다녀온 후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때가 나에게도 큰 기로였다.
함께 떠나려면 퇴사를 해야 했고,
회사는 ‘휴직’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모두가 나의 결정을 조심스레 지켜보았고,
부서장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나는 결국, 떨어져 있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여파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남편의 주재원 파견은 이후, 나의 회사생활에서 결핍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비어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매너리즘이 내게 물어왔다.
“너도 해외 근무 가고 싶지 않아? 앞으로 목표는 뭐야?
그냥 이렇게 회사생활 계속하고 싶은 거야?”
그 질문은 내 안에도 있던 성장 욕구를 톡 건드렸다.
나도 사실, 해외 근무를 자원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나는 지금껏 나의 커리어 비전이나 성장 트랙에 대해
부서장과 진지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나는 좋은 선배, 든든한 동료, 친절한 선후배로
회사 안에서 평판도 좋았고, 일도 척척 해냈다.
"쟤 진짜 일 잘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내 비전이나 목표를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다’,
‘이런 기회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을
정작 부서장에게 요청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부서장이 내 커리어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그 대화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서장이 되었을 땐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구성원이 말하지 않으면, 부서장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잘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나의 방향은, 내가 먼저 말해야 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지겨움 속에서 내 안의 ‘진짜 질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내가 처음으로
“이게 전부일까?” 하고 물었던 시점이었다.
그 물음은, 결국
나를 성장의 다음 챕터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