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일 년, 평생을 좌우한다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항상 같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작은 키에 단정한 아저씨 머리, 굵은 뿔테 안경 속 예리한 눈빛, 쨍쨍한 목소리. 연예인으로 치자면 조영남과 김건모를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과장님이셨다. 부서의 선배들이 올린 다양한 업무 문서들을 훑어볼 때마다 시니컬하면서도 논리 있는 지적을 예외 없이 하고, 때론 쨍쨍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따끔한 훈계를 하시곤 했다. 어찌나 따끔했던지 선배들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자리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럼에도 부서의 유일한 여자 신입이었던 내게는 꽤 다정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게는 빨간펜 선생님같이 업무를 돌봐주는 대리님이 옆에 상주해 계시기도 했지만, 과장님은 업무보다는 회사생활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일러주시며 조그만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편애를 하셨다. 30년 전 이야기지만 아마도 그 신입이 빨리 성장해서 한 명의 조직원으로 그 몫을 다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과장님이 해주시던 주옥같은 몇 마디는 회사 생활 내내 나도 내 후배들에게 유물처럼 전달했던 슬기로운 회사 생활의 어록 같은 것들이었다.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이렇다
“일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담당자의 일에 대한 자세는, 예를 들어 불이 났으니 불을 끄자가 아니고, 불이 났으니 현관 옆에 놓인 소화기를 들고,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불꽃의 뿌리를 향해 짧고 강하게 분사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혹시 핀이 안 뽑히면 대체 수단은 뭔지도 미리 알아둬야 진짜 ‘준비된 담당자’다.
"회사에서 세명만 챙기면 성공한 회사 생활이다. 한 명의 선배, 한 명의 후배, 한 명의 동기. 회사를 떠나고 나면 결국 남는 건 그들뿐이다. "
대부분 위아래 혹은 위옆에 등 두 명은 잘 챙기는데 세명을 골고루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가끔씩 부서에 들르는 과장님의 지인들 중 세명을 특히 잘 챙기는 선배들을 내게 특별히 소개해 주곤 했다. 그 선배들은 나중에 지나 보니 회사 내 평판도 좋고 오랜 회사생활 내내 종종 만날 때에도 여전히 좋은 사람, 따뜻한 선배로 나를 대해주셨다. 회사 밖에서도 그분들 옆은 늘 북적이었다.
"영어메일은 수동태와 관계대명사의 조합이다 "
당시는 90년 대 중반으로 나는 미국 거래선의 한국 파트너로 매일 구매 바이어와 영문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 시절은 FAX로 업무를 주고받던 때라 IBM 시스템으로 전자 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게다가 영어로 격식 있는 메일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대리님의 빨간색 테러를 당하던 내게 과장님은 한마디로 영문 메일 잘 쓰는 방법을 중요한 목적어를 주어에 두는 수동태 형식과, 그리고 중요한 단어를 추가로 설명하는 관계대명사의 형식의 문장을 만들라고 했었다. 예를 들면 , I sent two samples to you today 보단, Two samples were sent to you today, 혹은 I sent two samples which would be displayed next week in your office, ~ 등등의 형식으로 쓰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인데, 지금이야 대부분 입사 전에 영어메일이 학습된 상황이지만 당시만 해도 과장님의 조언은 참으로 꿀팁이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어 메일의 빨간펜 자국은 점점 줄어들었고, 일 년 즈음 지났을 땐 바이어와 꽤 커뮤니케이션도 잘하고, 업무 외에도 과장님을 졸졸 쫓아다니며 슬기로운 회사 생활에 적응도 잘하는 중견 사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리한 바이어의 요구가 있었다. 수주의 예측 (Forecast )에 못 미치는 수주 확정을 하곤 빨리 생산해 달라는 요구였던 것 같다 사실 바이어가 신이던 시절이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도 있는 문제였는데 당시 나는 바이어에게 절차(Process)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 바이어 측의 과다한 수주 예측과, 수주 확정이 예측 대비 부족하여 자재 재고가 많이 남게 되었다며 앞으로는 절차를 지켜 달라며 컴플레인 메일을 보내었었다. 다음날 바이어가 매우 당황해서 거래를 하느니 마느니 생떼를 부리는 메일이 왔었는데 풀 죽어 있는 내게 과장님은 틀린 이야기는 없다고 신뢰 기반의 비즈니스에서 할 수 있는 컴플레인이다고 나를 옹호해 주셨다. 물론 뒤로는 바이어를 달래고 했었겠지만...
2년 후 나는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과장님도 해외 교육을 떠나시며 한동안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몇 년 후, 과장님이 새로 부서를 만들면서 다시 나를 불렀다. 나를 다시 부르기 위해 인사부장과 담판을 지었다는 듣기 좋은 후일담도 있었다. 그 사이 부장님이 되신 과장님은, 대리가 된 내가 제법 따박따박 업무를 처리하고 후배들에게 예전 그 어록들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네가 그때 그 신입이었냐”며 흐뭇해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30년 회사생활은 첫 단추를 빨간펜 대리님과 과장님의 특별 케어 덕분에 잘 채우면서 시작했기에 잘 버티고 지냈던 것 같다. 실은 내가 중견 사원으로 성장하면서 그 두 분에게 일을 배웠다고 이야기하면 이미 검증된 사원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느덧 나도 내 아래 신입 한 명을 두고 낮에는 업무 잔소리를 하고 저녁에 맥주 한잔으로 격무를 위로해 주기도 하며 알면 쓸데 있는 신비한 회사 이야기를 전달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뿐 아니라, 그 신입의 칭찬을 다른 이에게서 들었을 때 그 짜릿함과 성취감은 일은 잘해서 얻는 보람보다 훨씬 더 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회사생활 십 년쯤 되어 부서를 맡게 되었을 때, 후배들에게 나도 어록처럼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 " 신입사원의 일 년, 평생을 좌우한다" 는 것이었다. 즉 신입 사원의 일 년을 선배들이 어떻게 업무를 가르치고 돌봐 주는지에 따라 그 사원 평생의 회사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의 인생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나 역시 괜찮은 회사 생활을 했고, 또한 훌륭한 후배들을 보면 반드시 그들을 옆에서 집중 케어한 멘토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신입사원과 그 바로 위 사원을 엮는 1:1 멘토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운영했다. 그렇게 만난 그들 만의 동료애는 가끔은 형제보다 더 진해보이기도 하였다, 다들 지금 현직에서 훌륭한 임원으로 부장으로 잘 지내고 있다.
나의 멘토 과장님은 해외에서 십여 년 넘게 근무하시다 퇴직하셨다. 이삼 년 전까지도 가끔 연락을 드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귀촌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건강하시기를 바래보며 조만간 연락드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