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
어제는 가수 휘성의 발인일이다. 휘성은 2000년에서 2010년여까지 대중음악계의 큰 별이었다. 가수 휘성을 특별히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팬이 아닌 내게도 그의 노래들이 꽤나 익숙한걸 보면 2000년대 거리마다 그의 노래가 들렸던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많이 불안해보였다. TV에선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였고, 프로포폴 관련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미지가 더없이 안좋아졌다. 나는 이 무렵부터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유튜브 영상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었지만 왠지 그는 점점 더 작고 초라해져 갔다. 십년 이상 최고의 스타였던 그에게 예전같은 큰 무대는 요원해보였다. 그가 사망한 후 요 몇일 휘성의 영상을 찾아보며 무대마다 그의 갈증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내려놓기에 실패한 낙오자인가? 그의 몰락을 나약한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가난과 콤플렉스를 노력으로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섰다는 그의 마지막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비슷한 시기 스타덤에 올랐던 미국의 가수 Usher를 생각했다. 그는 1978년생으로 휘성보다 4살이 많고 2010년에 발표한 OMG가 마지막 빌보드차트 1위 곡일만큼 최근 앨범들이 과거만큼 주목받지 못하지만, 미국에서 그의 업적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2024년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대인 NFL 슈퍼볼 하프타임쇼 헤드라이너로 나선 것은 미국 사회가 Usher를 퇴물이 아닌 전설로 대우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차트 정점에 섰던 순간으로 부터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Usher와 Alicia Keys가 하프타임쇼의 주인공이 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Usher는 2016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분야에 헌액된 것 외에도 빌보드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선정하는 위대한 아티스트 순위에 한 해가 멀다하고 이름을 올렸다. 2010년 이후 Usher의 주요 기록 및 선정 이력은 나무위키에 나온것만 해도 다음과 같다.
2011년 Essence(흑인을 주독자층으로 패션, 문화 등을 다루는 월간지)선정 가장 위대한 R&B 아티스트 26위
2015년 빌보드 선정 가장 위대한 R&B 가수 31위
2015년 빌보드 선정 빌보드 2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앨범) 40위
2016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2018년 빌보드 선정 Hot 100 차트 60주년 기념 올타임 남성 아티스트(싱글) 6위
2019년 빌보드 선정 빌보드 창간 125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23위
2019년 빌보드 선정 빌보드 Hot 1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싱글) 15위
2022년 Essence 선정 역대 최고의 R&B 솔로 가수 8위
장르, 차트, 성별, 싱글/앨범 등을 세분화하여 리스트를 선정하는 것을 보면 매체들이 해당 작업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기억을 담아내려 함을 느낄 수 있다. Usher와 같이 굵직한 업적을 남긴 이들은 툭하면 업적을 기념하는 미국같은 나라에서 쉬이 잊혀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타이틀의 선정작업이 있었다면 휘성 역시 때마다 빠짐없이 리스트의 한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휘성이 레전드로 기억되었다면 현재의 차트 속 위상과는 무관하게 최고로 권위 있는 무대에 선 그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그는 조금 덜 아프지 않았을까?
이 두 가수의 대비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영웅을 기리지 않는 사회‘다. 한때의 영광은 쉽게 잊히고, 과거의 스타들은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다. 우리는 과거의 영웅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그들의 업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웅을 만들고 기억하는 문화는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휘성의 비극적인 최후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영웅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