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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만원 주고 실패사기

배운 대로 살 수 있을까? 4부

by 지호
고생은 사서 해라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하라는 뜻다. 아까운 돈 굳이 고통스러운 일에 투자하는 게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돈으로 사는 행복보다 돈으로 사는 실패가 더 값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실패를 돈 주고 살바에 당장에 맛있는 저녁을 사 먹는 게 더 값지다 생각했다. 오늘은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작가가 바라본 실패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실패는 그저 실패일 뿐

한국 사회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안 하니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듯 확실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한다.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적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적당한 삶을 사는 걸 추구한다. OECD국가 중 공무원 경쟁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도전에 대가로 받을 실패에는 격리 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필자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야구 경기 결과를 포스트 한 게시물만 봐도 이기면 "믿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지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매번 잘할 수 없고 실패 속에서 오는 배움의 가치를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게 책정하는 탓인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중고등학교 때 도전적 정신을 높게 사던 선생님들이 항상 해주시던 말이다. "실패는 도전해야만 겪을 수 있듯이 성공도 도전해야만 겪을 수 있다." 이 말은 중학교 3학년 역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다. 그때당시 필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 줄 알았다. 사회가 시켜서 하는 공부에 찌들어가는 우리들을 보며 뭐라도 일단 해보라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패가 삶에서 실보다 득이 더 많을 시기인 우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거였다. 중고등학생 때 실패라고 굳이 꼽자면 시험 성적을 제대로 못 받은 거 정도인 것 같다. 그때 당시엔 시험 문제 한두 문제 못 맞춘 게 새벽에 혼자 울정도로 쓰라린 실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두 문제는 내 인생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은 꽤나 크다 생각한다. 그때 목표성적을 받지 못하더라도 공부했던 습관들이 성인이 되고 하고 싶은 전공이 생긴 지금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10개 정도의 공부법을 돌려해 보며, 9번의 실패를 몸소 겪으며 1개의 공부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4500만 원의 값어치

4500만 원이라 하면 일단 필자는 단 한 번도 벌어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이다. 4500만 원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평균적인 사교육, 평균적인 지원을 받는 학창 시절에 드는 평균 비용이다. 8살부터 19살까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평균적인 교육을 시키는데 총 4500만 원이 든다는 뜻이다. 필자는 분명 평균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을 거라 장담하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평균값을 원딩으로 삼았다. 학창 시절 받은 사교육은 생각보다 가짓수가 많았다. 피아노, 미술, 바이올린, 태권도, 인라인, 독서&논술, 수학, 영어, 과학, 국어, 한문, 이 외에도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지금 필자의 삶을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받은 사교육의 결과는 실패로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요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과대학이나 꽤 오래 지망하던 메디컬 쪽을 갔더라면 공부에 투자한 돈이 어느 정도 성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적어도 손익분기점은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돈 들여 공부한 수학은 몇 년이 지난 지금 간단한 지수법칙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부모님은 4500만 원으로 필자의 실패를 샀다.


소명

참으로 묘한 부분이 있다. 부모님이 돈 주고 구매한 실패는 교육적 실패로 이어졌지만 필자의 소명을 샀다. 요리를 해야겠다는 소명. 여러 경험을 해보며 본인에게 맞는 최적의 일을 찾았고 교육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학창 시절 투자받은 경험은 지금 필자에게 있어 거푸집이 되었다. 수학학원에 투자한 수학적 지식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요리를 함에 있어 자잘하게 자리 잡은 산수는 편안하게 하고 있다. 국어학원에 투자한 지식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거름이 되어주었다. 영어학원에 투자한 수능 1등급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본적인 영어대화, 독해, 듣기가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도 절대 안 가

친구들끼리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때 가끔 "특정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필자는 고민도 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모두가 의아해 하지만 필자에겐 확실한 이유가 있다. 농담 삼아 이야기하자만 지금까지 한 군생활을 다시 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확실한 이유는 과거의 자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보다 너 나은 나를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장함에 있어 자잘하고 큰 실수들과 실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몇 가지 되돌리고 싶은 과거들이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과거들에서도 배운 것들은 있었다.



필자는 지금 잔잔하게 흥분해 있다. 앞으로 살면서 실패에 얼마큼 많은 돈을 쓸 것인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실패가 얼마나 쓰라릴지도 궁금하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한다는 게 필자에게 있어선 너무 중요한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이만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진짜
'실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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