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대로 살 수 있을까?3부
나는 귀찮음을 사랑한다.
그것이 정말 나의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가 귀찮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남긴 말이다.
하루를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중에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가진 지분은 꽤 많을 것이다. 필자만 봐도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이 '일어나기 귀찮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일어나기 귀찮고, 아침밥을 먹기 귀찮고, 출근하기 귀찮을 것이다.
귀찮음은 성실함의 원동력
귀찮다는 감정은 대개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귀찮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때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기술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보아라. 예전이었으면 사람이 직접 붓으로 쓴 책을 읽기 위해 책방까지 걸어서 가야 했고 다 읽은 책은 도로 가져다 놓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수많은 작가의 글을 편안하게 누워서 핸드폰으로 읽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귀찮음 때문이다. 걸어 다니기 귀찮아서 자동차를 발명했고, 운전하는 것 마저 귀찮아서 요즘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발명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편리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지만 여전히 귀찮음을 느끼고 있고 이 귀찮음을 원동력으로 더 편리한 삶을 위해 성실히 움직이고 있다.
귀찮은 삶, 편안한 죽음
우리의 삶은 매 순간 귀찮음의 연속이다. 에너지를 사용해 움직이고 생활하고, 또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밥을 먹고 수면을 취한다. 그렇게 죽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위해 귀찮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다른 이들보다 귀찮음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숙제를 미루는 일이 다반사였고, 해야 하는 일도 귀찮아서 내일로 계속 미루게 되었다. 근데 여기서 웃긴 건 나중에는 그렇게 몰아서 하는 게 단순히 더 귀찮아져서 제시간에 맞춰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자는 모든 일이 매사 다 귀찮지만 덜 귀찮은 쪽으로 모든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성실한 사람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삶의 유일한 제동장치
만약에 이 귀찮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인간들은 발전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지금보다 더 뛰어난 문명을 만들고 모든 인류가 본인의 24시간을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사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귀찮음이 사라진 세상이 전자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아까 전에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잠깐 묘사를 했었는데 다시 한번 그 묘사를 빌려와 보겠다. 몇 시간을 들여 손으로 글 쓰는 게 귀찮지 않고, 그 글을 읽기 위해 몇 시간이든 그 거리를 왕복하는 게 귀찮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의 문학적 교류는 지금만큼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모든 분야가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필수적으로 중요시하는 '의식주'는 논외가 될 것 같다.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좋은 집에 살고 싶은 건 귀찮음을 뛰어넘는 인간의 본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그 분야도 다른 분야보다는 더 발전했을지언정 지금 현 문명만큼 발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귀찮아서 해버리기
이 글은 필자가 독자분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문득 이 글을 쓰기가 귀찮아졌지만 독자들의 약속을 어겨 나중에 더 큰일을 맞닥뜨리는 게 더 귀찮아 질거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이 글을 통해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있다.
귀찮아도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러니 더 귀찮아지기 전에 해버리자
이 글을 쓰며 그동안 미뤄왔던 자잘한 일들이 떠올랐고 아마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필자는 그 일들을 빠르게 처리할 것이다. 독자분들도 더 귀찮아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하는 귀찮아서 성실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