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을 더 이상 구독하지 않고,
새 글 알림도 받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더라도
풀꽃은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자라난다. 너무 작고 남루해서 눈여겨보는 사람조차 없다. 학원가 뒷골목, 건물 외벽에 기대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는 너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잿빛 건물에 우르르 들어가는 아이들. 그들을 ‘학생’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름도, 나이도, 원하는 것도 다 다를 텐데. 풀밭에 핀 꽃을 모두 풀꽃이라 불러도 좋지만 각각에도 이름이 있듯이. 민들레, 엉겅퀴, 제비꽃, 개망초. 너는 다 마신 음료수 캔을 내려놓고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작게 휘청거리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 세상의 풍파에 짓밟히고 무너져도, 강인하게 버티는 풀꽃이 되라고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닐지. 풀꽃은 밟혀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게 보듬어야 할 존재일 뿐인데.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들에게 꽃집에서 파는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라고 외쳐대진 않았을까. 가슴 한켠이 아려와서 고개를 들기 버겁다.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결국 자라나는 풀꽃을 꺾어버리겠다는 소리가 아니었을지. 상념을 끊듯 종소리가 울린다. 곧 수업 시작이다. 넥타이를 고쳐 매고 철문을 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