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과 다정함의 공식
육아를 하면 체력이 바닥난다는 말을 육아 선배들이 자주 했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역시 짐작과 체감 사이엔 깊고 넓은 강이 흐른다. 인간이란 결국 경험의 총합 위에서만 제대로 공감하는 존재니까.
그런데 직접 임출육(임신·출산·육아)을 경험하면서, 나는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니야!
몸도, 표정도, 취미도 달라진 나를 마주했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나의 MBTI에도 의구심이 생겼다.
나는 에너지 레벨 극상의 E성향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매일 약속이 있었다. 심지어 주말엔 하루에 약속을 세 탕 뛰었다.
아침에 보는 친구, 점심에 보는 선배, 저녁에 보는 후배가 각각 내 에너지를 끌어올렸고, 그래야 하루를 잘 산 것 같았다. 공부나 독서를 하더라도 사람 많은 카페라도 가야 더 즐거웠다. 각종 강의와 문화행사는 다 참여해야 했기에, 스케쥴 표가 늘 꽉 차 있었다. 한 마디로 집에 잘 없었다.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없어 "미안한데, 에너지가 없어", "기가 빨린다"는 말에 늘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임신 이후, 내 인생 최악의 신체적 변화를 맞으면서 처음으로 그 말들을 절감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행복에 겨워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태교여행도 열 몇 시간이 걸리는 해외로 갔다는 이들과 달리, 나는 송장처럼 누워 있어야 하는 임신 기간을 겪었다. 40주가 다 되는 출산일 전날까지 입덧약을 먹었는데, 효과는 없었다. 플라시보 효과라도 있길 바라며 털어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약이었을 뿐.
그 와중에 코로나도 걸려 2주 간 타이레놀로 버텼고, 후유증으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임신 중기에는 2차 기형아 검사에서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확진까지 보름을 울기만 했고, 임신성 당뇨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검사도 여러 번 받았다. 입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데, 극도의 설탕물 1컵을 1시간마다 4번을 마셔야 해서 검사하다 구토를 하기도 했다.
혹여 지하철을 타게 되면, 굳이 꺼내지 않던 임산부 뱃지를 바로 꺼내 빈 자리에 무조건 앉았다. 정말로 지하철에서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필라테스로 겨우 다져 온 코어 근육이 모두 사라지고,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강제 집순이가 된 나는 침대에만 누워 있었는데도 임신 기간 3kg이 쪘다. 아기 무게를 생각하면 결국 만삭에 살이 빠진 것이다.
출산을 하자마자 입덧이 사라지며 격한 행복을 경험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번엔 콤보로 '극 예민 아기'가 등장했다. 잘 안 자고, 잘 안 먹고, 잘 안 싸는. 오감이 발달해 불편함을 수시로 토로하는 아기가.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성장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영아산통, 배앓이, 이앓이, 원더윅스, 종달기상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들을 나에게 학습시켰다.
전보다 체력은 반, 할 일은 두 배 상황에 직면했다. 서울에 유명한 양의원·한의원은 다 찾아가 도수치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달고 살았지만 면역력은 잘 돌아오지 않았다. '기적의' 50일, 100일, 1년, 2년이 지나도 아기는 통잠을 자주지 않았고 임신 때부터 3년을 잠 부족에 시달리자, 내가 달라져 있었다.
이제 나는, 늘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생겼다. 에너지가 없다보니, 나는 어느 새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특히 늘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남편에게. 매일 간편하게 맛있는 요리를 해 먹거나 데이트를 하고, 예능이나 영화를 함께 보고, 주말이면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던 신혼 기간에는 누구보다 친절했던 나. 그게 그냥 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웃기고자 하는 의도성'이 분명한, 남편의 가벼운 농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안한데, 그럴 기분 아니야. 결론만 말해줄래?"
무슨 일을 하던 중에 나는, 남편에게 이런 가시돋친 말도 했다. 대화와 경청을 제일로 삼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서로 자신을 갈아 육아와 집안일, 회사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 때였던가. 처음으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아이가 잘 때 유튜브에서 '산모 회복 스트레칭'을 검색해 스트레칭부터 해봤다. 종종 '이게 뭔 도움이 되겠어'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냥 했다.
하라는 대로 다리를 뻗고 늘려보고, 배에 힘을 줘 보고, 심호흡도 해 보았다.
1~2분의 짧은 영상으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늘려갔다.
간단한 동작에도 전보다 헉헉거렸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은 것 같았다.
목표는 단 하나, '더 다정해지기'.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남편도, 결국 사회까지 행복할 테니까.
오늘도 나는 내가 각 부위별로 야심차게 구성해둔 홈트 목록으로 '#오운완(오늘운동완료)'을 인증한다. SNS는 안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게시글을 하나 올리는 거다.
내일은 더 부드럽고 여유 있는 내가 되길 기대하면서.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 정여울, 작가
-매일 1%씩 성장하는 워킹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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