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에서 사원으로 살아남기(6)
살다 보면 불편을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든 찾아온다. 오늘은 전 직장이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처럼 글이 안 써지는 날도 없었다. 지금까지 다섯 편에 걸쳐 신랄하게 전 직장 디스를 하면서 막힘없이 써 내려갔는데, 오늘은 깜빡이는 커서만 30분째 바라보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자판을 두드려본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직장에서의 실수는 경제적인 손실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실수는 인사 평가에서도 치명적이다. 물론 1인 기업의 사원인 나는 인사팀이 아닌, 직속상관인 대표님의 눈총을 받곤 한다.
2년여 동안 다양한 실수를 했지만, 유독 고쳐지지 않는 실수는 더블체크를 소홀히 하는 것이었다. 더블체크는 서류 등을 여러 번 검토하면서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의미하는데 나는 보고서와 같은 글 형식의 문서 외에도 현수막이나, 제안서 등의 디자인 관련된 업무에서도 더블체크를 대충 하고 넘길 때가 종종 있었다.
보고서
사업 종결 이후 '갑'에게 제출하는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이 결과보고서에는 사업 운영의 전반적인 과정과 정성, 정량적인 평가 내용들이 담긴 중요한 문서이다. 특히 '갑'에게 제출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오탈자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내용의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 더블체크 이후에 크로스체크를 거치면 오류를 더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대표님은 대표님대로 바쁘시기 때문에 문서 검토를 할 여력이 없으셨다. 그래서 문서의 최종 검토자는 대부분 나였다.
결과보고서를 '갑'에게 제출하면 수정 및 보완할 부분들을 회신을 주는데, 하루는 수정 과정에서 결과 데이터 표가 통째로 지워진 채로 보낸 적이 있다. delet키를 써서 글자를 수정하다가 표를 잘못 클릭해서 지워졌던 것 같다. 수정된 보고서에 주요 데이터 표가 통째로 누락된 보고서를 받은 '갑'은 당연히 대표님에게 면박을 주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내 모니터에는 빨간 포스트잇에 빨간 매직으로 '더블체크 필수!!'라는 메모가 붙여졌다. 메모를 붙여놓고도 더블체크 문제는 쉽사리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나 몇십 페이지의 보고서를 반복해서 검토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같은 부분을 더블체크, 트리플체크를 계속해봤자 집중력만 떨어지지 오탈자나 오류를 효과적으로 잡아내진 못했다.
그래서 체크할 영역을 구분해서 리스트업을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역별로 더블체크를 꼼꼼히 진행했고, 더블체크를 한 구역은 최종 검토 전까진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모든 구역의 더블체크를 진행한 뒤, 전체 문서를 PDF로 변환해서 이면지에 인쇄하거나 휴대폰으로 옮겨 담아 점심시간이나 여유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니 더블체크 문제는 점차 개선이 되었다. 덕분에 브런치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몇 번씩이나 퇴고를 거치는 습관이 들었다.
현수막
글 형식에서의 더블체크 실수는 디자인 영역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고, 민망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이나 기업 등 사업 운영 현장에 필요한 현수막에 오타를 확인하지 못해, 오타가 있는 채로 대문짝만 한 현수막이 현장에 설치된 걸 보면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을 절절히 느낀다.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보게 되고, 운영 측의 이미지 손상은 물론이다.
영어 철자를 하나 뺀 채로 제작되거나, 위탁 운영하는 기관의 전화번호 중 지역번호를 잘 못쓴다거나 하는 오타였다. 변명을 하자면 꼼꼼히 검토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오타였다(물론 꼼꼼히 하지 않으면 검토가 아니다). 현수막이나 입간판은 제작까지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운영일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새로 만들 수도 없다. 배경이 흰색이면 A4용지를 잘라서 덧붙이기라도 할 텐데, 초록색이나 핑크색은 답이 없다. 그래서 운영 당일에 고객사 담당자들이 현수막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끔 말을 계속 걸거나 주의를 돌렸다. 오타가 있는 입간판 앞을 가리고 계속 서있기도 했다.
입사 2년 차 때부턴 이런 실수가 현저하게 줄었는데, 제작 단계에서 오타를 꼼꼼히 검토하고 대표님에게도 크로스체크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아예 현수막을 2-3주 전에 제작을 했다. 그러면 오타가 있는 채로 제작이 되어도 다시 만들 기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몇 번 위기를 막았다.
어쩌면 나도 대표님께 부족한 '금쪽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에 나와 같은 금쪽이가 또 나와선 안되기에 실수가 잦았던 부분들을 50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로 업무 가이드를 상세하게 기록해 놨다. 얼굴도 모르는 후임자이지만, 나의 고군분투를 정독하고 또 정독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