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포트폴리오 그리기
1. 나만의 포트폴리오 만들기
회사에서의 포트폴리오는 숫자와 성과로 채워졌다.
실적, KPI, 성과지표.
명확했고, 냉정했으며, 때로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정작 나의 인생 포트폴리오엔
어떤 항목도 써넣은 적이 없었다.
이제는 그 공백을 채우는 시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생기가 도는가.
마음속에 이런 질문을 하나씩 꺼내어
묻고 또 묻는다.
나만의 시간에 나만의 답을 찾는 일.
어쩌면 인생 후반전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다.
커피 향이 퍼지는 아침,
잠에서 천천히 일어나 오늘 할 일을
손글씨로 적는다.
글쓰기 수업, 도서관 나들이, 친구와의 통화.
단순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으로
하루가 채워지는 기분.
그게 요즘 내 삶의 지표이다.
2. 월 100만이면 충분할까
가계부를 다시 들여다본다.
월세도 없고, 아이 교육비도 끝났다.
교통비도 거의 없고, 외식은 주 1회면 충분하다.
빠듯하지만 한 달 100만 원으로
삶이 돌아간다는 걸 요즘 실감한다.
물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덜 소비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는 중이다.
낭비되는 비용 대신 시간이 남고,
허무한 충동 대신 자발적 선택이 들어선다.
그렇게 쌓인 일상은 작은 기쁨으로 되돌아온다.
돈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적다고 해서 삶이 가난한 것도 아니다.
내게 맞는 속도로,
내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은퇴 후
진짜 '부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3. 돈보다 중요한 '나를 위한 시간표'
은퇴는 단지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시간을 되찾는 일이다.
주말 보고서도, 회의실의 눈치도 사라졌다.
대신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배당되었다.
그 시간이 두렵기도 했다.
목적 없는 하루가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
처음 며칠은 멍하니 창밖만 봤다.
그런데 점점 익숙해졌다.
오전에는 동네 도서관, 오후에는 텃밭에 물 주기,
밤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를 위한 시간표는
성적표도 없고, 승진도 없다.
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가 좋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4. 죽음과 마주 보는 삶의 연습
이따금 생각한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까.
10년일까, 20년일까. 아니면 내일일 수도 있을까.
이런 질문이 무섭기보다,
오히려 삶을 더 단단히 붙잡게 만든다.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마주 보다 보니,
지금이 더 소중해졌다.
오래된 앨범을 꺼내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장례식 대신 '삶을 마감하는 방식'을
나만의 글로 정리해보기도 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삶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젠 조금씩,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떠나는 법도 배우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더 깊이 살아가고 싶다.
5. 이제야 조금, 나를 알 것 같다.
회사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삶.
그것이 내 은퇴설계의 전부이고,
지금 내 삶의 정답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설계의 시작이었다.
돈만으로는 안되고, 시간만으로도 부족하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삶의 감각,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은퇴를,
조금 더 다정하게, 계속 설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