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막막한 청춘, 압구정 피트니스에서

압구정에서 만난 신세계

by 제드 Jed

남아공에서 고등학교를 시작해

대학교 졸업까지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이 쉽지 않았고,

낯선 언어와 문화에 부딪히며 버텨야 했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때로는 긴 터널 같았고,
가끔은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끝내 졸업장을 손에 쥐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해냈다. 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것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 문제였다.


2004년, 나는 결국 입대를 선택했다.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낯선 세계로 들어가야 했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길


논산훈련소로 향하던 날 아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부모님과 함께 집을 나서 서울에서부터

차로 2시간을 달려가는 동안,

차 안은 적막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내 옆에서 손수건을 꼭 쥐고 계셨다.
나는 어색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만

다짐을 되뇌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별일 없이 버텨내겠습니다.”


훈련소 앞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어머니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셨다.


“입영장정 집합!”
대대장의 우렁찬 구호가 울려 퍼지자,

훈련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누구 하나 크게 소리 내 울지 않아도,

그곳에 모인 부모들의 가슴은

똑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안다.

그때 부모님이 느꼈을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도 애틋했는지.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손에서 벗어나,

훈련소의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정말 군인이다.”
낯선 공기 속에서

나의 두 번째 유학길이 시작된 듯한 기분이었다.


군 생활, 그리고 또 다른 나


논산훈련소에서의 24개월은 짧지 않았다.
나는 조교로 근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수많은 훈련병들을 가르치고 관리해야 했고,

때로는 그들의 두려움과 눈물을

함께 받아내야 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도 변해갔다.
책임감이 무엇인지,

동료를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군대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서 배우게 되었다.


군 생활이 끝날 즈음,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남아공에서의 7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군대에서의 2년은 나를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세워주었다.


병장 휴가, 새로운 길의 시작


2006년, 병장으로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친구가 건네준 피트니스 클럽 1일 무료 이용권.
운동을 좋아하던 내게 그것은 별것 아닌

선물 같았지만, 결국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압구정 한복판에 자리한 그 피트니스 클럽은

말 그대로 또 다른 세상이었다.
5층 건물 전체가 피트니스 클럽으로 꾸며져 있었고,
층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내렸다.


주스바, 의류샵, 필라테스 센터, 비크람 요가,

그리고 화려한 조명과 음악까지.


내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기가 진짜 현실이 맞나?”
나는 그 화려함 앞에서 압도되었고,

동시에 이상하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전율 같은 것이 일었다.


부모님의 반대, 나의 결심


그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말했다.
“저 피트니스 클럽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민우야, 남아공에서 유학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길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떠니?”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고,

아버지는 잠시 침묵만 이어가셨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는 번개처럼 내린

확신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거다.

이곳에서 꼭 시작해 보고 싶다.'


부모님의 설득에도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군 제대 후 사회로 돌아가는 막막한 길 위에서,
압구정 피트니스 클럽은

나를 부른 첫 번째 세상이었으니까.



다음 회 예고

제대 후 나는 약속을 지키듯 그 피트니스 클럽을

다시 찾았다.
정식 면접을 보고, 결국 첫 직장을 얻게 되었다.
그 설레는 첫 출근,

그리고 처음 나를 찾아준 고객과의 만남.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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