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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발견한 i 첫 번째

때로 우리는 서로 세상을 향한 생뚱맞은 창문이 되어

by 과몰입

여러분은 유튜브에서 영상을 많이 보시나요?

사실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정보와 검색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삶을 사는 우리에게

어느 날 알고리즘이 생각지도 못한 콘텐츠를 띄워주는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 INFP도 우연히 발견한 이 영상을 다 같이 보고 떠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난해하고 생뚱맞은 영상을 골랐던 것 같아 함께 감상해 준 다른 멤버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이번 미디어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DMT PARK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연산"을 보고 쓴 감상입니다.


첫 번째 주, 수학 실력부터 영상 취향, MBTI까지 서로 정 반대인 ESTJ와 INFP가 발견한 i를 만나보세요.


아래 링크에서 여러분도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IxrcXrrxAI?si=3c1TCB6HQL8gHjxc




때로 우리는 서로
세상을 향한 생뚱맞은 창문이 되어

ESTJ


이런 영상을 왜 봐요?


우선 이번 영상을 본 후 가장 드리고 싶은 한 줄평은 “글 쓰기 모임 정말 하길 잘했다”입니다.


저는 소위 불수능이라는 시기에 수리영역 만점을 받아 표준편차 140을 넘겼던 사람입니다. 저는 수리영역을 좋아했고 잘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회사에서 제 퍼포먼스를 보자면 문과적 요소보다는 이과적 부분에서 눈에 띄게 잘하는 편입니다. 가령 보고서 작성보다는 데이터와 관련된 업무에 강점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번 영상을 보며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이런 영상을 유튜브로 왜 보지? 입니다. 유튜브를 보는 목적이 개인별로 달라서 일까요? 저는 고민하고 생각하며 봐야 하는 이런 영상을 유튜브로 보지 않습니다. 이번에 추천해 주신 것을 보고 “누군가는 이런 영상을 찾아서 흥미롭게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30분이 300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계속 이해가 안 되어서 3번 정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되고 마음만 찜찜한 상황입니다.


두 번째, 다양한 사람이 모인 글쓰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전 이런 영상을 절대 안 보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고 어울립니다. 다양성이 담보되어 있는 이런 모임이 아니었다면 이런 취향을 가진 분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런 영상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을 지평을 열어주는 경험입니다.


댓글에 수많은 후원들과 환호들을 보며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구나 느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를 하기는 애시당초 포기하였고, 세상 사람의 다양성을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INFP


상상과 실존: 허수와 나


내가 배운 것들이 이젠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배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이 세상의 극히 일부만 읽을 수 있다는 건, 언제나 놀랍다. 나의 삶은 측정할 수 없이 거대한 코끼리의 다리만 더듬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문득, 지식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세계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배움의 길에서 꽤 멀어진 내가 왜 이런 것이 궁금한 줄은 모르지만…결국 그들이 선두에 서 있는 이유도, 인간이 이만큼 걸어온 이유도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운 좋게도, 원하는 만큼 지식을 누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방구석에서도 책이나 온라인 백과사전을 읽으며 내가 영원히 갈 수 없을, 코끼리의 머리와 등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다 인류가 가보지 못한 공간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위해 도출된 방정식 자체에 감탄하곤 한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먼 옛날의 철학자부터 오늘의 물리학자까지 머리를 맞대어 쓴 식들은 때론 미학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쯤 되면 지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지의 역사는 꽤 길다.


아주 어렸을 적엔 시계 읽기도 싫었고, 구구단을 거꾸로 외라던 숙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싫었다. 그러나 수학과 나 사이의 갈등은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정점을 찍었다. 허수부터 헤매기 시작했던가. 존재하는 무언가를 겹쳤을 때 음의 존재가 된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허수를 표기하는 i도 ‘상상 속’이라는 의미의 단어 imaginary의 첫 알파벳을 본 따 만들어졌으니, 명백한 숫자 체계에 이런 가상의 수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어리숙한 인간의 시선일 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을 지나고서야, 우연히 들여다본 것이다. 1, 2, 3, 그다음의 '무한'을. 어쩌면 무한은 원래 학교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방구석의 작은 화면 속에서, i가, 인간이 그것을 만들기도 전에, 데카르트가 상상 속의 수라고 명명하기 한참도 전에, 이 세상에 선명히 새겨져 있음을 목격한다. 복소평면 위 끝도 없이 아름다운 프랙탈로 펼쳐지기도 하고, 그 어떤 날보다도 예리한 확률의 우주 상수 안에 자리하기도 한다. 상상 속의 숫자라 이름 붙인 것과 달리, 이 숫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실존을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을 웃어넘길 때 꾸며내는 유쾌함, 믿을 수 없는 행복을 감당하기 위해 짓는 함박웃음, 너무 선명한 경험 앞에서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가 동시에 느껴지는 경외. 확장되는 지식의 지평 앞에서 인간은 매번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일까? 그래서, 계속해서 미지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걸까? 호기심이라는 유일한 등불 하나를 쥐고?


그렇게 i는 존재한다. 학교 밖에서,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나(I)’라는 존재로. 내가 포기했던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그렇게 세상을 무한히 넓혀가면서. 실존하는 거대 코끼리를, 타인과 함께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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