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는 것: 내게 숨겨진 가능성의 증거
지난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연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개인적으로, 이 모임 덕분에 같은 영상을 보고도 정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게 되죠.
게다가 이미 이 세상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면 집중하거나 신경 쓰기 싫은 순간이 옵니다.
그런데 관심을 갖고 바라봐도 알 수 없을 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들을 영영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할까요?
어쩌면 이렇게 내가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것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두 번째 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의문투성이인 삶을 나아가는 ENFP B와 INTJ의 i를 만나보세요.
아래 링크에서 이번 미디어 주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연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IxrcXrrxAI?si=3c1TCB6HQL8gHjxc
모르겠다는 것:
내게 숨겨진 가능성의 증거
처음 영상을 보고나선 화가 났다.
두 번 영상을 보고나선 조금 무기력해졌다.
세 번째 영상을 보고나선 인터넷에 테트레이션, 프랙털이론, 허수 등등.. 검색을 해보았다.
생각해 보면 주제가 정해질 때부터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영상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낀 점도 없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메모장을 켜놓고 아무 말이나 적어보기로 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오늘까지 감상문을 써야 할 텐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또는 다른 사람들과 내 자신이 비교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화가 난 걸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다 어차피 제대로 된 감상문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자의식 과잉을 발휘하여 내가 잘할 수 있는 나의 감정을 세분화해보기로 했다.
왜 처음에 나는 글을 쓰는 데 두려움을 느꼈을까? 왜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간단하게 이유를 적어보자면 나에게 '모른다는 것', 짧게 말해 '무지'란 마치 어둠 속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과 통제력을 잃는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내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사회적으로 약점으로 여겨지거나 비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럼 왜 결국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내가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 왜 화가 났을까?
스스로가 부족하거나 무능하다고 느껴져서,
자신이 생각한 자기 기대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과의 차이가 느껴져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나 자신이 멍청하다는 생각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 그 결론을 방어하기 위해
혹은 어쩌면 더 잘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어서 화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앞으로 살다 보면 더욱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많은 문제들을 자의든 타의든 마주하게 될 텐데,
나는 여전히 두려움과 분노를 느껴야 할까?
또는 그 두려움과 분노를 마주하지 못해 무지에서 영원히 도망 다녀야 하는가.
둘 중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내 삶에 다가올 어려운 것들을 대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정리한 해결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어떤 것이든 처음은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 사실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지 말고 조금 기준을 너그럽게 생각한다면 초조함이 줄어들고
뭐든지 처음은 당연히 어렵다. 그러므로 처음 접하는 주제는 당연히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큰 흐름을 먼저 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두 번째, 자의식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오히려 이해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강박은 내려두고 호기심을 마주한다.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두고 다른 방향으로 호기심과 두려움을 분리해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었는지, 설사 주 내용과는 전혀 다른 호기심이어도 그 호기심이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면 어려운 것은 쉬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쉬운 것은 또 어려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로를 주고받으며 점진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이 영상을 보고 나서 제논의 역설에 관심이 생겼듯이 말이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함에 분노하고 모른다는 것은 두렵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니 조금은 용기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런 감정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함을 인정하지 못해 피해를 주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나의 여정을 꾸밈없이 공유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Unlucky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연산"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반가움부터 느꼈다. 요즘 독서가 가장 큰 취미가 된 나로서는, 지적 허영심을 한껏 채워줄 흥미로운 영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시작한 영상은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났다.
조금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빠르게 포기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 하신 "너 초등학교 안 나왔니?"라는 무례한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이후로 나는 예체능의 길을 걸었다. 이쯤에서 나의 상황이 이해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영상을 관통하는 주제는 나름대로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시작, 또는 단순한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만들고,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쓰면서도 긴가민가하지만, 내가 이해한 건 이것이다. 그리고 이 주제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닿아 있다고 느껴 짧게나마 써본다.
영상을 보고 나서 댓글창을 열어보니,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영상을 도전했다. 역시나 어려웠다. 이 과정을 다섯 번쯤 반복했을까. 어느 날은 작업 중에 영상을 틀어놓고 다시 한번 도전했는데, 작업 스트레스와 영상 스트레스가 겹치니 심장이 저릿저릿해졌다. "아, 이걸로 어떻게 글을 쓰지?"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 이해하지 못한 것을 솔직히 인정하자고. 나는 이제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으니까.
나는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자꾸 안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안 되고,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이런 내 마음과 닮은 노래가 있다. 바로 아이유의 ‘언럭키’라는 곡이다. 가사가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소개해본다.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별 큰일 없이 지나온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래 볼게.
어쩌면 나름대로 더디게 느림보 같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도 몰라.
단어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울렸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내 자신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물론 모든 일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 돌아보며 불안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보면 나름대로 잘 지나온 삶. 남들과 조금 달라 보이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름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괜찮다, 는 말은 뭔가 모르게 너무 좋은 말이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도전에서도 결국 나는 영상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성취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 자체가 내 삶을 조금씩 풍성하게 만들고 있음을 믿는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한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그 다섯 번의 도전이 단지 영상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내 삶을 조금 더 잘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였던 것 같다.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 속에 나왔던 명언, 이 말씀으로 난 아직까지 위로받고 있다.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또 천천히 나만의 보폭으로 삶을 걸어 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