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FJ
여러분, <케이팝 데몬 헌터스> 보셨나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하는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저도 익숙하지 않은 제목에 꽤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 기회를 삼아 다같이 감상 후 함께 이야기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조금 과할 정도로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하나 안 본다고 뭐 큰일 나겠어, 하는 청개구리같은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일단 보고나니 저런 마음은 커녕 너무 미루지 않고 유명할 때 봐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었는데요.
혹시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올해가 가기 전 한 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 첫 번째 이야기, ISFJ의 감상을 만나보세요!
몇 달 전,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게시물을 하나 보게 되었다. 제목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호랑이 귀여워ㅠㅠ’
‘케이팝 데몬…? 그게 뭐지?’ 싶었지만, 귀여운 호랑이라니! 망설임 없이 게시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눌렀다. (평소에도 귀여운 동물 짤을 즐겨 보는 나다.) 짤 속에는 민화에서 본 듯한 큰 덧니와 송곳니를 가진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쓰러진 화분을 두툼한 발로 열심히 세우려 애쓰고 있는 호랑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자연스레 “대체 어디서 나온 호랑이지?”라는 호기심이 생겼고, 찾아보니 넷플릭스 신작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누군가 작품을 추천하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장르가 뭐야?”일 정도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스토리를 통해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인간 본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주로 휴먼, 다큐멘터리, 사회 비판적 장르 같은 콘텐츠를 즐겨 본다. 그런 내게 <케이팝데몬헌터스>는 애니메이션, 그것도 키즈 장르라는 점에서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솔직히 ‘세상 귀여운 호랑이가 나오는 유치한 키즈 애니메이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 내가 결국 케데헌을 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유명하니까.”였다.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케데헌 봤어?”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뉴스에서는 흥행 소식이 연일 보도 됐으며, 음악 차트까지 케데헌 OST로 도배되어 있었다. 케데헌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 조차 힘들고, 미디어에서 다루는 수많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의라기보다는 타의에 가까운 분위기에 떠밀려 “대체 뭐길래?”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내 마음이 열리게 됐다.
실제로 본 케데헌은 특유의 유치하고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가득한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루미가 자신을 수용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단단해지는 헌트릭스의 우정은 예상 밖으로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루미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오해를 받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현실과 겹쳐 보여 몰입하게 되기도 했다. 타고난 환경이나 기질, 외모 때문에 원치 않게 받게 되는 편견이나 비난들. 그로 인해 느끼는 억울함과 괴로움은 비단 루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역시 겪어본 경험이니까. 엔딩 장면에서 건물에 걸린 헌트릭스의 컴백 광고를 보면 루미의 몸에는 여전히 데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루미가 데몬이라는 사실, 동시에 헌트릭스가 데몬과 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루미를 더욱 응원할까, 아니면 실망하고 돌아설까. 이렇듯 초현실적인 스토리 속에 녹아든 현실적인 고민들이, 평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를 자연스레 빠져들게 했다.
사실 나는 스토리보다는 연출에 주목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케데헌을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만든 힘은 바로 참신하고 디테일한 연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랫말이나 대사 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한국어들(특히 “가자, 가자, 가자!”라는 대사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한국스타일의 수면잠옷,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문화 등 기존의 전형적인 ‘한국문화 스테레오타입’을 넘어선 한국적 요소들이 등장해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인 나에게도 충분히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퇴마 장면을 뮤직비디오처럼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 연출은 평소 악귀나 전투 스토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조차도 몰입하게 만들었다. 처음 케데헌을 알게 해 준 호랑이 ‘더피’의 설정도 인상 깊었다. 현실 속 고양이는 물건을 쓰러뜨리려 하지만, 저승의 호랑이는 그와 반대로 물건을 세운다니⋯. 이런 역발상은 참 독특하고 재밌는 디테일이었다. (너무너무 귀여워...) 이렇듯 곳곳에 숨어 있는 연출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이, 1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케데헌의 OST들이 케데헌 OST가 아닌, 일반 아이돌의 신곡으로 나왔다면 지금만큼 큰 흥행을 거둘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돌 노래들 중에는 대중적으로 충분히 인기 있을 법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곡들이 적지 않다. 만약 아이돌이 <소다팝>이나 <골든>을 발표했다면, 그저 그런 곡들 사이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소다팝>과 <골든>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서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다팝>은 밝은 멜로디와 귀여운 춤 이면에 인간을 홀리려는 악귀들의 몸부림이라는 '서사'를 담고 있다. 이에 맞서는 <골든>은 의지와 성장을 담은 노랫말과 힘 있는 퍼포먼스 속에 헌트릭스의 인생 '서사'를 담았다. 이러한 서사들은 각각의 곡에 특별한 매력을 불어넣어주고, 의미를 한층 깊게 만들어주었다. 현실에서도 결국 중요한 건 결과물 자체만이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컨셉 등의 방식까지, 모두가 조화를 이룰 때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데몬처럼 우리의 하루를, 때로는 일생까지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영화 속 사람들이 헌트릭스로 데몬에 맞서듯,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데몬을 물리친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거나, 애정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헌트릭스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내 데몬을 이겨낼 만큼 강력할까? 케데헌 속 헌트릭스가 점점 성장하듯, 나와 여러분의 헌트릭스도 함께 단단해져 매 순간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