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것은
17살 때였다.
아마도 초봄이었던 것 같다.
어둑해지는 저녁길을 10여분 걸어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왔어."
걔는 나에게 필요이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방으로 들어가라고 고개짓 한다.
봉당에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나는 못올데를 온 사람처럼 당황스러웠다.
그가 앉아있다가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친구야."
"놀러오고 싶다고 해서."
친구놈이 어색한 변명을 했다.
대강 앉기는 했으나 여전히 정적이 흐른다.
그는 첫 이성이다.
이성을 한 객체로 만나본적이 없어,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침묵이 흘러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더니 친구놈이 나가버렸다.
그는 끼가 많았던 친구놈과는 달리 말이 없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통성명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해 겨울,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다.
그 카드가 그에게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누가 보냈지. 모르는 사람이네.'
그냥 지나쳤다.
그를 두번 째 만난 것은, 읍내 거리에서였다.
제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아는 척을 했던 것 같다.
"뭐지. 날 아나." 혼자말을 했다.
이제 생각났다.
'친구네 사랑방.'
그 어색한 순간이 오버랩 되면서, 그가 호각을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나는 사무실 경리로 일하고 있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 오곤 했다.
사실 창피했지만, 딱히 오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별다른 말도 없이 그저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간 것 같다.
잠깐씩만 들러 사장님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발영이 나서, 그곳에 오래 근무할 수 없었고, 그 이후 연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면사무소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업무도 배우고, 조직에 적응하느라 좌충우돌했다.
하루는 군청에 인구조사 결과를 제출하고 오는 길에 그를 스치며 만났다.
'의경을 제대했나.'
우리의 만남은 항상 그랬다. 잘있었냐, 잘 지내냐. 인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출근하는 버스를 놓치면, 나타나서 태워 주는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 했었다.
우리집에서 면사무소까지 걸어 가려면 1시간이 넘기에,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읍내에 살던 그가 우연히 나를 태울 일이 없는거였다.
그러고보니 단둘이 "커피"도 한잔 안 마시던 사이였다. 별사이 아니었다.
별사이가 아니었을 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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