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는 그림을 잘 그렸다.
어렸을 적 오빠 그림의 모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장독대 옆에 피어있는 키큰 주황색 개나리 꽃 옆에 한참을 않아 있어야 했다.
몸을 비비 꼬다가 한 소리 듣기도 했던 것 같다.
오빠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그려서 보냈다.
알 수 없는 추상화도 그렸던 것 같다.
오빠는 위로 누나가 셋이어서,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다고 한다.
63년생인 오빠가 서너살에 찍은 듯한 사진을 커서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귀했으면 사진까지 찍어 주었을까.
'손주사진을 많이도 보셔겠지.'
할아버지가 셋째 언니를 "남동생" 봤다고 많이 이뻐했다고 한다.
오빠는 중학생 때 홍천으로 유학을 갔다.
그래서인지, 큰오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없다.
오빠를 이뻐하던 할아버지는 오빠가 10살 때 돌아가신 것 같다.
할아버지는 1893년생이었다.
'그때 80까지 사셨으면 오래 사신걸까.'
그에 반해 할머니는 65세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1900년대 생이셨다. 큰오빠를 땅바닥에 내려놓지를 않으셨다고 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용한 양반"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던 것 같다.
반면 할아버지와는 "말"이 잘 통했다고 했다.
한번은 장마에 떠내려 가는 어린 나를 죽을 힘을 다해 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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