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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속 시대 흐름

신경림 /  「갈대」,  달빛

by 열쩡최샘 Feb 26. 2025

 서정 속 시대 흐름     

  신경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로, 특히 농촌과 민중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6년 현대문학에 「갈대」로 등단하며 문단에 발을 디뎠으며, 이후 『농무』라는 시집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신경림의 작품 세계는 농촌과 도시 빈민층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민중의 삶과 애환을 서정적으로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 신경림은 1950년대 중반에 데뷔했으나,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70년대에 오면서부터이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특성은 김수영의 시에서 읽을 수 있었던 모더니즘의 요소가 말끔히 배제된 점, 동시에 신동엽의 시가 보여주던 도시 서민들의 애환이나 분단의식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1970년대의 상황, 특히 산업화가 야기하는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다.



  신경림이 그의 시적 작업에서 가장 힘들인 것은 현대시와 민요 정신의 결합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한국 현대시에서 볼 수 있는 민요적 정조나 율격의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민요 속에 살아 있는 집단적인 민중의 삶과 그 의지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 시에 얽힌 이야기들」에서 “어디서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내게 언제나 새롭고 싱싱한 감동을 주었다. 이렇게 나는 여행이랄 것까지는 없는 나들이를 하면서, 죽음과 같은 실의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구중서외(1995)에서는 “신경림은 고향의 자연에서 서정을 얻었다. 그리고 소년 시절에 그는 이미 ‘사람이 사는 일의 설움’을 알았다. 6.25전쟁의 학살, 마을 가까이에 있는 광산 노동자들의 삶, 시골 장터 풍경, 무엇보다도 절망에 가까운 농촌경제의 파탄을 그는 몸으로 겪어 알고 있었다. 루카치가 “서정시도 시대의 큰 흐름을 드러낼 수가 있다.”라고 한 말이 「갈대」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필자는 『신경림 시전집 1』에서 서정적으로 묘사한 두 편의 시를 통하여 신경림의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과 민중의 삶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1) 갈대- 내면의 울음으로 바라본 삶의 진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전문, 『신경림 시집 1』, 창비, 2004. 69쪽.     


  갈대는 외부의 바람이나 달빛에 흔들리는 자연의 존재이다. 이 시는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쉽게 흔들리는 모습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이는 인간 존재의 내적인 갈등과 고통을 상징한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갈대가 외부의 힘에 의한 흔들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감정이나 고통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가 흔들리는 이유가 바람이나 달빛과 같은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감정이나 고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는 살아간다는 것은 내면의 울음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에 그치지 않고, 산업화로 인해 점점 소외되고 고립된 인간 존재의 모습이다. 결국, 갈대가 스스로의 울음을 몰랐듯, 산업화 시대의 개인들도 자신의 고독과 소외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달빛 - 과거의 기억과 정체된 삶의 풍경     


밤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

산골 여인숙은 돌광산이 가까운데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돌리고

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

비겁하게 사느라 야윈 어깨로

밤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

- 신경림, 「달빛」, 전문, 『신경림 시집 1』, 창비, 2004. 77쪽.     



  달빛은 밤하늘에서 달이 비추는 은은한 빛을 의미한다. 이 시는 시간과 기억, 과거에 대한 되새김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밤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대신 정체된 삶을 드러낸다. ‘산골 여인숙은 돌광산이 가까운데 /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의 달빛은 하루의 끝을 상징하면서도, 고요한 밤의 심리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돌리고/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라는 과거의 상처나 갈등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비겁하게 사느라 야윈 어깨로’는 산국화는 외롭게 달빛 아래에서 버텨내기 위해 희생하고 절제하는 모습이 고독한 삶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우리는 ‘밤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라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과거를 곱씹으면서도 결국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감과 체념을 드러낸다. 결국, 달빛 아래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나누지만, 현실을 바꿀 힘은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산업화와 사회적 변화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과거에 머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루카치가 “서정시도 시대의 큰 흐름을 드러내는 수가 있다”고 한 것처럼, 「갈대」와 「달빛」을 통해 신경림은 개인적인 정서와 내면 세계를 드러내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시적 형상을 구축했다.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현실의 비판과 반영, 그리고 민중적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숭원은 “서정시라고 해서 감정을 노래하는 얄팍한 소품만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서정시는 인간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먼저 제시하가도 한다”고 했다.     


 

 필자는 「갈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란 내면의 조용한 울음을 참아내는 과정임을, 「달빛」에서는 시간과 기억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와 갈등에 갇혀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작품 개별적 정서와 사회적 상황을 통합하여 볼 때, 신경림의 시는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민중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경림의 시는 서정시의 본질을 잘 보여주면서도, 한국 현대문학의 중요한 지점을 대표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과 민중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서정시의 형식을 빌려 민중의 집단적 감정을 전달한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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