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1994)> 리뷰
1부와 2부 모두 공통으로 등장하며, 핵심적인 인물들이 교차하게 되는 장소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이다. 영화의 모든 요소는 내러티브를 위한 부가적인 요소이며 일종의 장치이기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가게의 이름처럼, 여기는 심야에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일종의 교차로 같은 공간이다. 전달자는 흔히 소유권이 없는 존재지만, 이 영화의 인물들은 ‘전달’의 반복 속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그런 소유 없는 경유의 장으로, 결국엔 감정의 소유권을 되찾는 공간이 된다. 1부의 하지무와 2부의 633은 이 가게에서 전화와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연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거나, 상대방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 전달되는 무언가는 반드시 특정한 시공간을 경유하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나, 그것이 지나간 공간에는 얼룩과 같은 추억이 남는다. 1부와 2부는 앞서 말했듯이 우연과 일상이라는 사랑의 양면적이고 이분법적인 면을 각각 소재로 만든 스토리지만, 이 두 가지 스토리는 어딘가 유사한 부분을 통해 하나의 중심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주제로써의 기능을 갖춘다. 그 두 소주제를 엮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영화의 스토리에 불과한 이 플롯을 보편적인 로맨스로 탈바꿈하는 장소가 된다.
1부와 2부 모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존재한다. 먼저 통조림은 1부에서 하지무의 사랑과 미련을, 금발 여인에게서는 삶의 유통기한을 뜻하고, 2부에서는 페이가 633의 토마토 통조림을 바꿈으로써 등장한다. 이는 공산품화되는 사랑을 도식적이면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매개체가 아닐까. 실리적인 목적이 아니라, 5월 1일의 파인애플 통조림처럼 공허함에 의해 갈망하게 되는 사랑의 성질과, 그러나 라벨이 바뀐 정어리 통조림처럼, 갈망의 끝에 도달한 사랑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작중에서는 종종 비가 내린다. 1부에서 비는 하지무가 수분을 날리기 위해 스물다섯 살의 생일 오전 여섯시에 달리는 장면에서 등장하며, 2부에서는 633이 페이의 편지를 읽지 않고 편의점 앞의 종이박스에 버리는 장면에서 비가 내린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비는 도피의 시간을 캐릭터들에게 선사한다. 하지무에게는 쳇바퀴 모양의 운동장을 조깅함으로써 과거의 나에게 단절을 고하고 싶은(그러나 여인과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는 언급을 통해, 과거의 애인과 그 기억으로부터는 벗어났을 지는 모르겠으나 여인과의 사건은 하지무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기에, 단절을 부르짖으나 실상은 도피에 가까울 것이다) 캐릭터의 모습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하고, 2부에서는 633이 아비에게서 얻지 못했던 탑승 티켓을 얻음으로써, 아비로부터 도피하여 페이에게 도달하는 일련의 로드무비와도 같은 과정의 완결을 선사하는 순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어항이라는 매개체도 자주 등장한다. 어항은 충칭맨션이라는, 등장인물들이 필름 내에 구속된 공간임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벗어나고픈 현실과 그 루틴. 즉, 습관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의 추억은 전달이라는 목적성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실체임과 동시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경유하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이 두 가지 이야기들은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해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두 이야기의 감정선을 하나로 엮는 교차로이자, 그들 모두가 지나쳐야 했던 감정의 밤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밤을 지나,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다른 기억과 소망들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중경삼림』에서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침투한 매개체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충칭맨션은 동일한 물리적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시선과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모한다. 복잡한 구조와 얽힌 동선, 흐릿한 조명과 습기를 머금은 벽면은, 그 안에 머무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반영하면서 사랑의 흔적을 담아낸다. 장소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퇴적되는 시간의 흔적이다.
왕가위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잔광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다가가지만 완전히 겹쳐지지는 않고, 결국은 어긋남 속에서도 짧은 온기를 나눈다. 그 순간은 말보다 이미지로, 서사보다 리듬으로 전달된다.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쳐간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그 자리에 무언가를 남긴다.
따라서 『중경삼림』은 사랑의 시작이나 끝을 말하기보다, 사랑이 머물렀던 ‘자취’를 보여주는 영화다. 충칭맨션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두 개의 사랑이 교차하면서도 절묘하게 어긋나는 방식은, 삶과 감정이 결코 하나의 서사로 포획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때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이 깃든 시간의 기억이자 사랑의 무언이 스며든 응시의 장이 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어떤 결말이 아니라, 감정이 스며든 장소감을 남긴다. 그것이 바로 왕가위가 사랑을 담아내는 방식이며, 『중경삼림』이 도달한 가장 보편적인 진실이다—사랑은 늘 어딘가에 머무르고, 우리는 때때로 그 자리에서, 비워진 감정을 조용히 되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