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하면 떠오르는 할아버지
재활병원에는 재활용 자전거가 있다. 그 재활자전거는 치료실내에서 코끼리라고 불린다. 코끼리마크가 있어서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치료 외 시간에는 기구를 타는 시간이 있다. 코끼리자전거나 전동자전거, 기립기, 경사침대. 네 가지의 기구들은 환자분들에게 맞춰 정해진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다가 다른 자전거와 부딪쳐서 사고가 났다. 그래서 목신경손상으로 팔다리를 재활하기 위해 입원했다. 발목과 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근력이 중력을 이기고 신체를 들 수 있는 정도로 증상이 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몸통의 안정성도 좋아서 어지럽지만 않으면, 앉아있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할아버지의 기구시간은 코끼리였고, 처음부터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매번 코끼리를 제일 열심히 굴리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일반용 자전거와는 다르니, 할아버지는 코끼리가 낯설었나 보다. “저 자전거는 앞으로 가질 않으니까 재미가 없고 이상해. "라고 말씀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가 떠오를 때면 자전거도 같이 생각이 난다. 나에겐 자전거맨이시다.
초반에 자전거맨의 손은 붓기 때문에 움직이질 못하고, 또 움직이지 않으니까 더 붓고 굳어있었다. 코끼리를 탈 때도 손장갑을 착용하고 고정해야만 했다. 가끔은 힘드신지 손을 내려놓고 페달만 밟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코끼리 자전거도 직접 잡고, 추후에 지팡이라도 잡으며 혼자 걸을 수 있게 하려면 손가락 관절 가동범위를 늘려야 했다. 하지만 통증이 심하셨다. 잠시나마 아픔을 잊기 위해 대화를 많이 건넸다. 언젠가 치료 중에 자전거맨에게 “자전거, 많이 타고 다니셨어요?”라고 물어봤다. 자전거맨은 “동호회 사람들이랑 많이 다녔지. 중간에 맛있는 식당도 가고, 자전거도로 중에서도 멋진 곳이 많아. "라며 회상하듯이 대답하셨다. 매트에서 손치료하는 날은 대화하다 보면 자전거사고가 있었음에도 자전거가 그리우신 것 같았다. 항상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기억을 그리듯 이야기해 주셨다.
자전거맨은 입원 후 한 달 정도는 우울한 마음을 가득 품고 계셨다. 그럼에도 자전거이야기를 하실 때만큼은 눈이 반짝 빛나셨다. 자전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중요한 힘이었다.
우울한 마음을 털고 난 후에는 몸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치료도 열심히 임하셨다. 마음의 회복이 빠른 만큼, 몸의 회복도 점차 눈에 띄었다.
자전거맨은 6개월 안에 일어서고 걷기가 가능했지만, 손으로는 보행기의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깨를 기대서 걷는 어깨보행차로 걸어 다니셨다. 움직임이 많아지자 손의 부기가 빠지고 손잡이를 잡게 되었을 땐, 휠체어도 밀면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휠체어를 밀며 걷는 도중, 자전거맨은 나에게 “여기 휠체어에 앉아. 내가 밀어줄게”라고 하셨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그날 자전거맨은 그 어떤 때보다도 단호하게 말하셨다. 결국 나는 휠체어에 앉았다. 나는 편치 않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주의를 해야 하는 부분들을 알려드렸다. 이미 여러 번 거절했었고 그전보다는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맨은 흡족해하셨다. 휠체어를 잡고 치료실 배드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즐거워하셨다. 걷다가 나에게 “아주 편하지~?”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은 다른 치료사선생님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좋겠네 '라며 한 마디씩 하는 치료사선생님들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약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자전거맨의 기분 좋은 모습을 보고 이 또한 치료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휠체어에 앉아서 자전거맨의 상태를 계속 뒤돌아 확인하며 넓은 치료실을 다 돌아다니고는 그날의 치료가 끝났었다. 그 뒤로도 자전거맨은 가끔씩 다른 치료사를 태우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맨은 다른 사람을 밀고 다닐 정도로 힘이 생기셨다는 것을 느끼고, 휠체어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순간을 만끽하신 것 같다.
계속해서 걷기를 연습하시다가 지팡이를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전거맨은 가족들과 치료실을 돌아다니며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퇴원하셨다.
자전거맨은 맛있는 식당과 멋진 뷰가 보이는 자전거도로를 몇 군데 알려주셨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말씀을 하셨던 모습, 화색이 돋는 얼굴과 말이 많아지며 즐거워한 얼굴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말씀해 주신 자세한 내용들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내심 아쉽다. 몇 달 전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맛집을 찾아다녔다. 도착한 소머리국밥집은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었고 거기서 먹은 수육은 녹진하니 꿀맛이었다. 그때 자전거맨이 기억났다. 자전거로드마다 맛집 알려주겠다고 하신 자전거맨에게 그때당시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고 적어두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문득 내 머릿속을 콕 찌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세월이 담긴 경험들을 나누어주려고 했던 마음이 다시금 전해진다. 정말 감사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서 얻은 경험들이 나에게도 유익한 도움이 될 순간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서 치료를 넘어서 개인적으로도 느낀 것이 많다.
자전거맨을 치료하면서, 할아버지께는 자전거가 활력소였던 것 같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퇴원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여가생활을 하며 보내는 것은 정신건강이랑 전체 건강 수준(활력이나 사회적 기능 등)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다치기 전의 할아버지의 건강한 마음들이 힘든 병원 생활도, 우울한 마음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좀 더 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연세가 많았음에도 자전거를 계속 타오셨던 것도 멋있다고 느낀다. 자전거이야기를 할 때마다 애틋함이 묻어 나왔던 자전거맨! 나는 그토록 어떤 일을 애정해 봤던 게 있나 싶다.
영원히 자전거맨으로 기억에 남을 할아버지, 지금도 건강히 재밌게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