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 뜻밖의 상황도 물 흐르듯 사라진다.

by 포옹

치료실에서는 환자가 치료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분위기와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 나 역시 환자와의 상호작용에서 불편한 점은 정확히 표현하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치료에 집중해 주세요.”

“치료와 관계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른 치료사 선생님 이야기는 저에게 말씀하셔도 제가 응해드리긴 어렵네요.”


그런데 때로는 이러한 명확한 표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도 있다.

A님과의 경험이 그랬다.


A님은 치료 중에 자주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 분이었다. 매트 위에 누워 다리를 구부리고 골반을 드는 동작(브릿지)을 하면서도 몸을 활처럼 기울여 내 쪽을 보았다. A님은 씩 웃는 표정과 흘끗 보는 시선을 넘어서 수상쩍은 눈빛으로 계속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왜요? 무슨 불편한 점 있으세요?” 조심스레 여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냥 보는 거예요.” 그리고 또 웃는다.

A님은 서있을 때조차 몸을 숙여 치료하는 나를 쳐다보셨다. 그 시선에 못 이겨 슬며시 고개를 올리면 여지없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저를 쳐다보지 마시고, 정면을 바라봐주세요. “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똑같았다.


누워 있어도, 서 있어도, 걷고 있어도 A님은 몸을 비틀어 나를 향해 시선이 따라왔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시선과 웃음이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보행 중 나의 어깨를 짚는 상황에서는 접촉까지 동반되어 더 불편해졌다.


“A님, 앞에 보셔야죠. 아까 제가 이 동작 왜 한다고 했죠?”

좋게 설명하려 애써도, 내 안의 답답함과 살갑지 못한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나조차도 내 말투에 찬바람이 도는 걸 느꼈다.

말을 뱉고 나서야 아차 싶어, 다시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몸을 비틀면 제대로 발을 딛기 어려워요. 이 동작할 때 만이라도 정면 바라봐 주세요.”


나에게도, A님에게도 치료에 방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A님은 치료 동작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A님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러한 불편함이 치료에 영향을 주는 것을 더 이상 피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반복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A님의 행동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치료의 접근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A님의 시야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나는 A님의 뒤로 물러나 치료 동작에 시선이 향하도록 유도했다.

“왼쪽으로 누워볼까요? 오른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볼 거예요. 다리를 보세요.”라고 설명드리며 주로 나는 A님의 뒤편에서 다리를 지지하며 치료했다.


두 번째로는 거울을 적극 활용했다.

거울을 가져와 앞을 보게 하고, 반복해서 시선을 안내했다.

옆으로 누운 상태인 A님에게 “뒤를 쳐다보시면 몸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다리 움직여야 돼요. 어려워도 거울 보면서 천천히 해요.” 계속 말했다. 보행 연습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있는 거울을 향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며, 나는 뒤에서 필요한 동작을 돕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세 번째는 치료 자세 자체를 바꾸었다.

엎드린 자세나 앞 테이블에 몸을 기대는 자세에서 A님에게 필요한 동작을 중심으로 치료 계획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효과적이었다. 내가 시야에 들어가지 않으니 A님도 나를 쳐다보는 횟수가 줄었고, 점차 치료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나는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대처할 방법을 찾았기에, ‘이 정도는 그럴 수 있지’, ‘궁금할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치료 중 발생하는 불편한 상황은 단순히 “그렇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말로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치료사의 위치, 도구의 활용과 치료 동작 구성까지, 치료 환경 전반을 유연하게 조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불편한 상황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도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경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예전 치료실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종 꼬집거나 때리곤 하시던 B님이 계셨다.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말씀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다. 나 역시 여러 번 B님의 꼬집음을 경험했는데, 그 솜씨가 워낙 능숙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자주 화내시는 B님을 보면서 곧 마음속으로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럴 수도 있지.


B님은 편안하신 순간에는 조용히 계셨고, 그럴 때는 참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꼬집으시면 저도 아파요. 움직이니까 아프셔서 그러신 거죠? 그럴 땐 꼬집는 대신, 제 팔을 두드려주시면 좋겠어요.”그렇게 천천히 반응을 바꾸어 가며 소통하다 보니, B님은 편안하게 치료를 받으셨다.


먼저,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왜 그럴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상대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관계도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컴플레인도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었다.

첫 재활에 오신 C님은 작고 연약한 체구의 어르신이었다. 그런데 치료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보자마자 덩치가 큰 치료사로 바꿔달라고 요청하셨다. 시작 시간이 이미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치료를 거부하고 항의까지 이어지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낯선 상황에선 누구나 불안할 수 있으니까.


“난 치료 안 해.” 라며 거부하시는 C님에게 나는,

“치료받기 싫으시군요. 그런데 오늘은 원하시는 치료사분들이 다들 치료 중이라 시간이 안 되세요. 일단 오늘만 저랑 평가만 간단히 진행하고, 이후엔 원하시는 선생님으로 바꿔드릴게요. 괜찮으시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B님과 함께 치료 평가를 시작했다. 나는 평가를 진행하면서도 한쪽으론 시간표를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B님은 “힘이 세네.”라며 내 팔을 만지시더니, 치료가 끝날 무렵엔 “안 바꿔도 돼.”라고 한마디 하고 가셨다.


그 후 퇴원할 때까지 나는 B님의 치료를 맡게 되었다. 가끔 덩치 큰 치료사가 지나가면 “저 치료사는 나 치료 안 해줘?” 하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교체를 제안하면 “안돼.”라며 계속 치료를 이어갔다.

B님과 이야기를 통해서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B님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드님이 있었고, 많이 의지하며 살아오셨던 분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처음 B님의 행동도 한결 더 이해가 되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태도도, 편견 어린 말도, 그냥 한 번 흘려보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치료사로서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환자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나는 무의식 중에 “그렇군요”라고 반응한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해되지 않던 말이나 행동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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