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으로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었던 할머님
처음 만나 뵈었을 때 A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수줍은 표정과 작고 귀여운 체구에, 곱게 하나로 묶은 머리. 조용히 웃으며 주변을 살피는 눈빛엔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때의 A님은 많은 활동이 어려웠다. 앉아 있으면 옆이나 뒤로 넘어졌고, 조금만 서서 움직여도 중심을 잡지 못하셨다. 머리 묶는 것조차 손이 따라주지 않아 그 부드러운 머릿결을 조심히 잡아서 여러 번 대신 묶어드렸다. A님은 어떤 동작을 하든, 망설임 없이 하셨다. 천천히 쉬운 동작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운 동작까지 해내셨다.
A님은 밝고 다정한 분이었다. 다른 환자분들과도 금세 친구가 되셨다. 서로 선물도 주고받으시고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으신 분이었다. 치료시간이 되면 A님은 새가 지푸라기를 물고 오듯, 다른 분들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한 아름 안고 오셨다. 병실에서 있었던 이야기, 치료이야기, 가족과 집이야기를 정성스럽고 재밌게 말씀하셨다. A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환자, 간호사, 간병사, 치료사 누구와도 친해지셨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계셨지만, 그런 별로인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으셨다. 좋은 사람들이 언제나 A님 곁을 지나다니며 말을 걸어서 A님은 금방 즐거워졌다.
퇴원하기 몇 달 전부터 A님은 작업치료실에서 종이접기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하트를 접어 오시더니, 어느 날은 여섯 개를 들고 와서 내게 색을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짙은 분홍색을 골랐다. 그 하트는 내 서랍 한편에 붙어 놨다. 그 뒤로 A님은 매일같이 종이를 접어 오셨다. 치료 중에 지나가는 치료사들에게 보행연습을 하며 하나하나 나눠주셨다. 그렇게 종이 하트는 간호사, 환자, 보호자들에게도 전달되었다고 들었다.
나중에는 나에게 A님은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다. 저녁 먹고 병실에서 쉬어야 할 시간에도 계속 접으셨다고 했다. 그 정성에, 나는 놀랍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 의아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무료해서 그러실까?
겨울이 다가오자 이번엔 눈사람 접기를 시작하셨다. 하트보다 더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머리 하나, 몸통 하나를 따로 접고 조립까지 해야 했다. 흰 종이에 알록달록한 모자와 눈과 코까지 손수 그려 넣으셨다.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한 선물이었다. 그걸 내게 보여주시며, 어떤 눈사람이 예쁘냐고 물으셨다. 나는 웃으며 골랐지만, 속으로는 ‘이건 너무 복잡해서 많이 안 접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눈사람들 또한 수십 명에게 전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낯선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작은 감동, 의문 그리고 부끄러움. 왜일까. 왜 나는 저런 나눔을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까. 환자와 치료사라는 관계 안에서, 나는 라포 형성을 치료의 수단으로만 여겼다. 치료 외의 감정 교류는 번거로움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A님을 치료를 하는 시기에는 ‘마음’을 건네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것도 모든 사람에게, 이유를 설명하지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따뜻하게.
A님이 퇴원하시던 날, 마지막 시간에 치료실을 걸어 다니며 모든 치료사들과 악수를 나누셨다. “정말 고마웠어요.” “잘 지내세요.” 그 인사를 할 때마다 A님은 눈물을 쏟아내셨다. 그때, A님이 사람들과 나눈 애정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그 진심을 마주하자, 마음이 따듯해졌다. 단순한 인사말 같았지만, 그 눈빛과 눈물, 손의 온기를 통해 A님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시간을 살아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A님에게 "건강하세요" 하며 안아드리는 순간, A님을 치료하게 되어서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때 조금 알았다. '이런 진심 어린 애정을 주고받는다면 마음이 풍족하겠다.'
그건 그 당시의 나에게는 낯설고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나눴는지. 어깨가 아프다면서도 왜 계속 종이를 접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그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이유 없이 마음을 건네는 A님의 모습, 누구에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A님 곁에 있으면서도 웃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마주 보지는 못했다. 겉으로는 "되게 다정하시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참 깊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곁에서 지켜보며 따듯하다고 느꼈을 뿐, 다정함과 나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받은 것에 감동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요즘 자주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놓쳤는지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A님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 따듯함은 오히려 더 강하게 스며들었다. 나눔이라는 건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누구든 자신이 가진 만큼 내어주는 것이라고,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런 걸 깨닫기 위해서 A님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A님에 대한 기억은 따듯한 날,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불쑥 떠올랐다. 따스해서 잡고 싶지만, 날아가는 모습이 더 아름다워서 그대로 두게 되는 그런 기억. 잡을 수는 없지만,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는 기억이다. 나는 아직도 그 바람 속을 천천히 걷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가만히 보고 있지 않고, 작은 시작을 하기로 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내 마음을 조금씩 꺼내어 건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따뜻한 기억이 말이다.
혹시 그런 따뜻한 기억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듣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