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한마디

치료사와 나, 그 경계에서

by 포옹



나는 오른팔 안쪽에 작은 타투가 있다. ‘행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 몇 년을 고민한 끝에 새긴 이 타투는, 스스로에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뜻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었다. 팔로 몸을 감싸 안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굵고 단정한 기본 서체로 해서 정직한 행복이 담겨있다.

하지만 어느 시기엔가 나는 그 타투를 테이프로 가리고 다녔다. 크게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누군가 물어보면 의미를 이야기하기도 민망했고, 묻지 않아도 괜히 스스로 조심스러워졌다. 그 무렵의 나는 병원 안팎에서 말투, 표정, 태도를 조절하며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치료 현장에서도 그런 긴장감이 이어졌다. 치료사로서 늘 침착하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감추고 있었다.

그 시기에 만난 환자 A님이 있었다. 두 달 정도 치료를 진행했고, 곧 치료사는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A님은 늘 정돈된 말투와 우아하신 환자분이었다. 치료 초기에는 치료계획과 목표가 분명했고, 진행도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치료 설명을 드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A님의 표정은 어딘가 막혀 있는 듯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이 닿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도 쉽게 유대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치료 중, 내 팔에 붙여둔 테이프를 보시곤 조용히 물으셨다.
“그건 뭐예요?”
“타투예요.”
그분은 잠시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굳이 가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말투도 표정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남았다.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감추고 있던 내 모습을 A님이 가볍게 알아차린 듯했고, 아무 말 없이 ‘괜찮다’고 말해준 것 같았다.

A님과의 치료 과정을 돌이켜보면, 진심을 가지고 치료와 설명을 했지만 정작 그분의 반응보다는 내 계획과 기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치료의 방향성과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한마디는,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조심스레 감추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움츠러든 마음이 환자에게도 미묘하게 전해졌을 것이고, 그건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치료사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환자마다 다른 속도와 말의 결, 반응을 읽어내는 감각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기려고 한다. 그 이후로는 나를 지나치게 감추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게 되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환자분들에게도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치료사로서의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나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환자에게 더 진심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A님과의 치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지금도 ‘숨김없이 솔직한 나’를 마주하는 용기를 떠올린다. 동시에 치료사로서 환자분 한 분 한 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제대로 바라보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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