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시간을 품은 채로
몇 년 전의 일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순식간의 일이라 의식이 있을 때는 이미 119가 와있었다.
나는 며칠 입원했다. 환자복을 입고 물리치료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아프면 주변이 보이지 않구나를 느꼈다. 물리치료실에 계속 누워있고 싶었다. 바삐 치료실내부를 왔다 갔다 하는 물리치료사를 뒤로 하고 얼른 병실에 가서 누웠다. 밥이 나오면 먹고 시간이 되면 치료를 받으러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여러 가지를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나는 지루할 틈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할 게 많았다. 씻고 눕고 먹고 자는 일도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꽤 빨리 퇴원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수술을 받아야 해서 수술병원으로 옮겼고 수술 후에는 다시 재활을 위해 병원을 옮겼다.
나는 그 재활병원의 직원이었다. 다시 치료복을 입고 출근을 하니 익숙한 공간인데 낯설었다.
그리고 밤에는 환자의 가족이었고 낮에는 치료사였다가 중간중간 딸이었다.
일을 하며 치료도중에 지나가는 엄마를 아는 척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런 상태였다.
아마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딱히 엄마도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치료실에서 추가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를 보던 나는 복잡 미묘했다.
집에서라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라도 배워야지 하는 궁금한 마음과 딸로서 걱정되는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치료사로 서있는 건지 간병을 하려고 지켜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퇴근을 하고 병동으로 가서 잠시 엄마와 같이 있었다.
병동 한가운데 티브이가 있고 매일 치료실에서 본 환자분들과 같이 의자에 앉아서 엄마랑 티브이를 본 장면이 또렷하다. 티브이 보다가 엄마랑 이야기 나누며 웃으며 문득, 나는 여기에 왜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편안했다. 점점 컴컴해지는 복도의 불빛이 느껴지면 주무시는 시간이 된 듯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병동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하나도 낯설지 않은데, 모든 게 이상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버스정류장을 몇 개 지나가면 수술했던 병원도 지나친다. 몇 달 전에는 그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엄마의 퇴원을 웃으며 보내주었던 간병하고 있던 가족분들도 이런 어색함을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길 바랐다. 매번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그때는 조금 다른 여러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때 당시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집정리를 하면 얼른 잠자리에 들어갔다.
출근하자마자 치료실을 지나 위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병동에 도착하면 직장이라서 어색하지만 반가운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그런 낯익은 낯섦속에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 기억하는 장면들은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병동에서의 일들이 도통 자세하게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마입장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을 정도다. 어떻게 씻었더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기억나지 않고 그저 눈앞의 병실 풍경만 남아있다.
내 기억인데도 왜 그 부분만 또렷할까. 이유도 모른 채 여전히 티브이를 보던 장면만 선명하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순간도, 익숙했던 공간도 다 낯설었다. 그저 이상한 감정만 남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 되었다.
상황이 바뀌니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그때의 낯섦은 잠시였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계속 시간이 흘러가며, 모두가 지나가는 길 위에 놓여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다행이라 느껴진다.
그때의 낯섦도 이상함도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놓인 채로 지나간다.
이제는 조금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시간 밖에서, 이 기억들을 다정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