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도전기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기

by 포옹

매일 같은 치료실, 같은 시간. 치료에 관심이 없던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변화가 더뎌도 치료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이분과 함께했던 시간은 물리치료사로서의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무표정의 할아버지는 늘 왼팔로 팔베개를 한 채, 왼쪽을 응시하며 누워 계셨다. 할아버지의 세상에는 오른쪽과 정면은 희미했다.

나는 오른편에서 치료를 했었다.

“oo님,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잠깐 나에게 눈길을 주더니 이내 다시 왼쪽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오른팔을 조금 움직여 볼까요?”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굳은 오른쪽 어깨관절을 조심스럽게 움직이자마자,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의 눈에서는 빔이라도 나올 듯 날카롭게 나를 쳐다보셨다. 그 눈빛에 움찔했지만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팔의 감각이 있으시구나.' , '고개를 돌릴 수 있으시네.'라고 생각했다.

“와, 바로 아시네요? 오늘은 안 아프게 천천히 할게요. "

나는 다시 슬며시 오른쪽 어깨를 움직여봤다.

할아버지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는 하든지 말든지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못 본 체했다.

‘좋아! 오늘은 치료가 가능하겠구나! ’

이런 날이면 어깨치료를 계속해도 괜찮았다.


할아버지는 말씀을 못하시지만 이해는 하셨다. 그리고 오른쪽 몸에 대한 편측무시가 있었다. 그러한 편측무시로 인해 몸통의 중심선을 인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왼손의 기능은 활동적이었기에, 최소한의 도움으로 매트에서 움직임이 가능하셨다. 하지만 오른쪽의 신체를 치료하는 건 좀처럼 회복이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할아버지는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과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못하시니까 뭘 원하시는지도 모르겠고 고민이 많았다. 지켜보다 보니 할아버지는 유독 휠체어에 앉아있는 걸 좋아하셨다. 앉아있기를 하기 위해선 왼손으로 지지를 하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세웠다. ' 앉기.’


치료는 오른쪽의 신체를 잡는 것부터 시작했고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나는 매트에서 치료할 때면 “oo님, 오른팔, 다리 챙기는 것 잊지 마세요. "라고 할아버지가 지겨운 표정을 지으실 때까지 말했다. 다행히 오른팔과 다리를 잡고 몸을 돌려 일어나 앉는 것은 수월하게 해내셨다. 매트에서 왼손으로 짚으며 앉아있을 수 있었다. 휠체어이동은 쉽진 않았다. 왼손을 이용해서 휠체어에 앉긴 했지만 왼쪽으로 넘어질 듯 몸을 던지며 앉았다. 그리고는 몸이 안 돌아갈 때까지 왼쪽으로 돌려 그곳을 바라보기 바빴다.


제대로 혼자서 앉기 위해서 다음 목표는 '몸의 중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익숙함을 깨는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정면을 인지하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구상했다. 구석에 있는 치료실 매트로 가서 벽으로 왼쪽을 막고 종이로 만든 머리띠로 시야를 차단하거나 왼쪽으로 눕히기, 오른쪽에 있는 물건을 잡기 등을 반복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방식만 지속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왼쪽을 벽으로 막을 땐, 뒤까지 쳐다보셔서 뒤를 또 막아야만 했고, 종이로 만든 머리띠는 할아버지가 내키지 않으시면 무용지물이었다. 제일 열심히 하셨던 건 오른쪽에 있는 물건 잡기였다. 그것도 몇 주 뒤가 되면 아예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러한 방법들을 돌아가며, 또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추가하면서 치료했었다.


나는 그래도 할아버지와의 치료가 좋았다. 가끔 돌발행동을 하시고는 나의 눈치를 보셨다. 그중에 하나 생각이 나는 건, 바닥에 있는 물건을 손으로 잡다가 발로 차고는 나를 슬쩍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셨다. 나의 반응이 궁금하셨는지 그때 그 할아버지의 표정에 나는 웃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앉아있을 때는 오른쪽으로 무너지는 것을 버티도록 했다. 그리고 종이로 만든 머리띠를 착용한 채 고개를 안 돌리도록 하면서 앉아있는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왔다. 몇 달이 지난 후엔, 치료시간 되기 전에 대기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넘어지지 않고 매트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쯤 할아버지는 신체를 적절히 사용해서 스스로 기립기를 잡고 일어나는 것을 해내셨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할아버지는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치료가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그동안에는 나에게 빔을 쏘듯 쳐다보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치료가 끝나서 매트에 앉아있기만 하면 휠체어를 잡고 나를 보셨다. 내가 살짝 도움을 드리면 잽싸게 휠체어에 탔다. 그리고 기립기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기구에 도착하면 왼팔을 번쩍 들어 기립기를 붙잡고 왼다리를 사용해서 쉽게 일어나셨다.

그 모습에서 나는 가능성을 봤다. '일어서기 훈련도 가능하겠다!'

그래서 다음 치료목표는 '몸의 중심선 인지하기'와 '안정적인 일어서기'였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일어설 수 있는지, 뭘 더 평가해봐야 할까,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심지어는 할아버지가 일어서는 꿈까지 꿨다.


가장 중요한 건, 일어설 때 왼쪽으로 잡아당기시니, 그 방향으로 넘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의 다리의 관절가동범위도 충분한지도 확인하며 필요한 치료요소를 추가해 갔다.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고정한 어깨 보행기를 할아버지 앞에 두고 높이조절이 가능한 매트를 조금씩 올려 체중을 다리로 실게끔 해드렸다. 그 순간 옆 선임치료사님이 조심스레 말했다. "너무 무리하게 하면 위험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매트높이를 낮추었다. 키가 큰 할아버지를 감당하는 건 쉽지 않기에 위험한 치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리에 힘만 들어가면 되므로 무리하지 않고 치료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는 어깨 보행기를 잡고 스스로 일어서셨다. 살짝 몸이 왼쪽으로 밀리긴 했지만 심하지 않으셔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일어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치료에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부터 치료가 순조롭지가 않았다.

이후에 점점 오른쪽팔이나 다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날도 있었고 치료를 거부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어떤 치료가 이로울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홀로 앉아있기까지 가능해지고 나서 또다시 고민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큰 소리를 지르며 왼손을 들어 치료하는 것을 막았다. 그런 날에는 다른 환자들이 놀라지 않게 2인 집중치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냥 조용히 옆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면 성난 할아버지는 차분해지셨고 그제야 다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할아버지에게 적합하지 않은 치료를 하려는 걸까. '라는 회의감이 스치던 날도 있었다. 억지로가 아닌 적절한 때에 움직이시도록 돕고 싶었다. 호통을 치는 날에는 서있기 연습을 하지 않고 앉아서 물건 집거나 중심 잡고 앉아서 통증 없는 선에서 오른쪽 다리와 팔을 움직였다.

다시 매트에서 치료하는 날들이 계속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치료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어떻게 서든 밀어 혼자서 기립기를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여전히 치료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얼른 기립기로 가고 싶어 하셨다.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정면을 인식하게 된 이후로는 휠체어바퀴를 직접 조절해 앞으로 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휠체어를 열심히 민다. 왼쪽다리를 움직여야지만 앞으로 갈 수 있었는데 왼손으로만 바퀴를 움직이니 휠체어는 오른 방향으로만 돌아갈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맞춰, 치료 초반부터 기립기까지 스스로 가는 과정 자체를 치료로 삼았다. 하지만 휠체어를 일직선으로 밀고, 정면을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살짝 도움을 주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가셨고, 그러면 왼쪽에 있는 나를 찾아보셨다. 점점 왼쪽공간을 인식하고, 방향에 대해 인지하셨다. 휠체어가 잘못 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 휠체어 바퀴에 손을 멈추셨다. 나는 다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많이 알려드렸는데 다리를 사용하는 것을 끝끝내 하지 않으셨다. 마지막은 항상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다. “제가 밀어드릴테니, 손 올려주세요.”


할아버지를 치료했을 당시 나에게 작은 변화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치료를 하면 할수록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해 주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목표에 더 집중하는 나를 만들어주었다.

비록 모든 치료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매번 할아버지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단 한 번의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 매 순간의 작은 시도들로 이루어진 도전기였다. 그 도전은 할아버지에게도, 나도 함께 성장하는 여정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치료사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