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사의 손

치료하면서 환자분들이 편안하신 지 고민했던 날들.

by 포옹


근무가 끝나고 선임치료사들이 돌아가며 실무에 적합한 치료에 대해 교육받던 날이었다. 교육을 듣고 동료치료사에게 서로 연습하면, 나는 무언가 치료사마다 손동작과 감각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연습하다 보면 손힘의 강약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선임치료사에게 직접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분의 손은 주먹을 쥐듯 움켜잡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룸브리칼 그립(lumbrical grip)과 같은 손의 형태로 하게 되는데, 손가락을 펴서 잡는 동작으로 손바닥 전체를 사용하여 환부를 마치 수건으로 감싸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섬세하면서도 미세한 조절과 그 움직임을 인식할 만큼의 묵직함이 안정되게 지지해 주어 내 다리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경험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손의 형태와 적절한 압박을 통해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치료방법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최대한 룸브리칼 그립으로 치료했다. 그렇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구부려서 주먹 쥐듯이 잡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의 압력을 조절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1년 차 시절에는 어깨를 치료할 때면 날개뼈 하나를 제대로 잡는 것도 어려웠다. 날개뼈 가장자리를 손끝을 세워서 꼬집듯이 잡아야지만 움직여졌다. 그때마다 환자분에게 "괜찮으세요?"라고 수차례 물으며 조심스럽게 치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립이 익숙해질 때까지 오래 걸렸다. 어깨나 다리를 잡고 살짝 들어 올리는 동작조차 누르는 힘이 부족해 손이 미끄러졌다.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으려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도 근무가 끝나갈 때면 무의식적으로 손끝을 사용해 치료할 때가 많았다.


룸브리칼 그립은 반복적인 실습과 실제 치료경험으로 자연스레 몸에 익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손동작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상황에 맞춰서 환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하반신마비로 허리수술을 받고 입원한 할머니를 치료하는 중에 깨달은 것이다. 할머니는 복대를 착용한 채 휠체어생활을 하며 주로 침상에 누워계셨다. 할머니는 허리와 하체의 근력이 저하되어 독립적으로 활동을 못하셨다. 할머니의 첫 번째 치료목표는 앉은 자세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거였다. 첫 번째 목표에 맞춰 그립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치료를 했고, 이후에 할머니는 혼자 앉아있기가 가능하지자 두 번째 치료목표는 일어서서 걷기였다. 내 어깨를 짚고 일어나며 무릎을 펴고 버티는 동작을 반복했다. 이후 체중 이동훈련을 통해 한 걸음 씩 걷기 시작했고, 처음엔 매트하나 그다음엔 옆매트까지 15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할머니는 “아유, 힘들다.”라고 말하며 건너편매트로 이동하기 전에 다리 힘이 풀릴 때가 있었다. 나는 “두 발자국만 더 가면 돼요!”라고 말하며 겨우 도착하여 앉혀드렸다. 그럴 때면 할머니의 바지춤을 잡아당겨 넘어지지 않게 했다. 점점 할머니가 본인의 바지에 걸터앉는 순간이 되기 전에 재빠르게 건너편 매트에 앉혀드려야만 했다. 그때마다 그립이고 뭐고 꽉 움켜잡게 되었다. 손가락 스트레칭이 필요할 정도로 오래 쥐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스스로 중심을 잡기 위해 더 노력하며 걷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다.

할머니의 치료 이후로는 고수하던 그 손동작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내 손은 언제는 바지춤을 움켜잡고 또 언제는 그립으로 골반을 잡으며 보행훈련을 지속했다.


코로나 확산시기에도 비닐보호복과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각 병실에 가서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구분하여 치료했다. 그때당시에 나는 할머니는 보행기랑 낙상벨트로 기립훈련을 했다.

병동에서 할머니를 첫 치료하는 날, 나는 보행기만 가지고 갔다. 침상에서 보행기를 짚고 일어나고 앉기까지만 하기로 했었다. 거의 치료가 끝날 무렵, 앉아서 보행기를 잡고 있는 할머니는 나에게 “오늘 걷는 것도 하자. ”라고 말했다. 나는 “제가 낙상벨트를 안 가져와서 다음에 걸어요.”라고 대답했지만 할머니는 웃으며 “괜찮아. 조금만 걷자 "라고 했다. 그리고는 할머니는 보행기를 잡고 일어나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아~ 알겠어요, 잠시만 잘 잡고 앉아계셔요.”라고 말하고 10걸음을 갈 수 있는 거리에 앉을 의자를 두고 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저기까지만 걸어요.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흔쾌히 “그래. ”라고 말하고는 보행기를 옆에 두고 내 양쪽 어깨를 짚고 힘차게 일어나셨다. 나와 함께 할머니는 의자를 향해 한 발 한 발 가고 있었다. 반 정도 걸었을 때, 갑자기 할머니는 자신감이 붙으셨는지 한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병실에서 치료도 해주니 좋네, 코로나 때문에 다들 고생이 많아~”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이 감사하면서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할머니의 다리는 영락없이 구부러지며 몸이 휘청했다. 나는 얼른 일어나 할머니를 일으켰다. 바지춤을 움켜잡은 채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움직이지 마시고 무릎 구부려지지 않게 다리에 힘주세요! "라고 말했다. 비닐보호복 때문인 건지 등줄기에 땀이 났던 게 식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할머니가 넘어지지 않도록 곁에서 지탱해 드리자, 할머니는 나의 부축에서 안정을 느끼셨는지, 전혀 불안해하지 않으셨다. 내가 지지해 드리는 그 짧은 순간에 할머니는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려는 듯, 한 번 더 내 몸을 토닥여주셨다. 나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손은 바지춤이 찢어져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때 바지에서 투둑 찢어지는 소리가 났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잡았고 할머니도 다리에 힘을 주며 한 발 한 발 차분히 집중해 의자로 가서 앉았다. 나는 앉자마자 바로 할머니에게 "아직은 걸을 때 어깨에서 손을 떼면 안 돼요. " 신신당부를 했다.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알겠어” 라며 웃으셨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치료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다시 걸어서 침대에 앉은 후 눕혀드렸다.

할머니는 항상 넘어질 걱정이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나를 믿고 치료에 임하셨다.


할머니를 통해 나는 룸브리칼 그립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 손동작은 환자에게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환자에게 조용한 배려와 안정감 있게 하려는 것은 결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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