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가 마침내 입을 열다

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by 암슬생
여행을 계획하다
여행을 취소하다

지난 3일(수) 오니바이드 항암 21차를 마치고 금요일(5일)에는 인퓨저를 제거했다.

항암을 한 주는 운동도 못하고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다. 항암 부작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식욕도 없고, 몸도 피로하고...


대부분의 시간 거의 죽어서 잠을 잔다. 잠자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수호천사의 말에 의하면 거의 그렇단다.


이번엔 큰 결심을 하고 강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연가를 내고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올 요량이었다. 수호천사도 흔쾌히 좋다고는 하는데 만자씨 컨디션이 관건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인퓨저를 조금 일찍 떼고 강촌으로 출발을 하려다 잠시 대화를 나눴다.


"가서 뭘 먹을까? 머 먹고 싶은 것 있어?"

수호천사가 물었다.


"글쎄,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네. 근처에 가서 맛집 찾으면 되지 않을까?"

만자씨 대답에 벌써 답이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없네. 자기가 얘기한 것들 모두 당기지가 않아.'

만자씨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눈치 빠른 수호천사가 이 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너무 무리해서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가봐야 제대로 뭘 먹지도 못하고 날씨도 추워서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할 거고.. 자기 몸도 힘들고..."


"우리 다음에 가자."

수호천사가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제안을 했다.


"그럴까?"

만자씨도 가고는 싶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그냥 방안에 누워 잠만 잘 거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속이 많이 상했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리 둘은 깔끔하게 집으로 차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기에 그저 조용히 운전만 했다. 그 속상함이란...


그렇게 여행을 취소하고 집에 오자마자 만자씨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만 잤다. 여행 취소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아빠 괜찮아?"를 연신 물어보는데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이번 항암 부작용은 제법 견디기 힘들다. 아마도 격일에 한번 먹던 '렌비마'를 매일 먹는 것으로 바꾼 영향이 큰 것 같다.


항암 후 4~5일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부작용에 시달리긴 하지만, 회차에 따라 그 정도와 양태가 조금씩 다르다. 이번엔 제법 세게 온 것 같다. 금요일, 토요일 이틀을 거의 잠을 잤다.


그런 만자씨 모습을 보는 수호천사와 아이들의 심정이 어찌했을지는 불문가지다.


강한 사람 수호천사가 드디어 입을 열다

이번 항암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컸다.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희망만을 준 것도 아니었다.

800까지 올랐던 종양표지자(CA19-9)가 188까지 떨어진 것은 매우 긍정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그 감소 폭이 너무 작았다. 지난번 213과 비교하면 사실 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 오르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던 전이나 재발이 아닌 염증일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만자씨나 수호천사나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실망을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12월 23일엔 중간 평가가 있다. CT 촬영과 피검사를 함께 하게 된다. 그때 가보면 아마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때까지 또 피가 마르는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고..


어제 불을 끄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만자씨도 수호천사도 뭔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수호천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기야!! 이런 말 하기 정말 그런데..... 나 너무 힘드네.... 심장이 막 터질 것 같아...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만자씨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금세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베갯잇으로 흘러내렸다.


"울어? 내가 괜한 얘기를 했지?"

수호천사가 두 손으로 만자씨 눈물을 닦아주며 목이 멨다.


알고는 있었다. 수호천사가 얼마나 힘들지...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정도가 점점 심해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호천사는 여태까지 한 번도 내 앞에서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만자씨가 가슴 아파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겠지만 워낙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힘들지... 왜 아니겠어. 그리고 우리 둘은 서로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자. 솔직하게 힘들다고 얘기할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잖아. 서로 힘들다고 투정하고, 울고, 보듬어 주고 하면 좀 낫지 않을까?"


"그러는 게 나을까? 요즈음 특히 더 힘든 것 같아. 시간이 오래되었는데도 자긴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앞으로 어찌 될지 미래는 불확실하고, 나도 점점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수호천사도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둑한 침대였지만 눈물이 또렷이 보였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수호천사가 답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글쎄,,,, 지금처럼 열심히 잘 이겨내자고 하면 너무 무책임하지? 뭘 어찌 바꿔 볼까?"

만자씨가 되물었다.


"-----------------"


둘은 답이 없었다.

그러다 둘은 손을 맞잡고 뺨을 맞대고 한동안 슬프게 울었다. 베갯잇이 흥건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답은 없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강한 사람 수호천사, 긍정의 아이콘 만자씨도 사람이다. 긴 투병생활, 희망이 없지는 않으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이제는 꽤나 버거웠던 것이다.


이 글을 보게 될 우리 아이들, 처형, 내 여동생에겐 비밀로 하고 싶은데..


전국에 만자씨 보다 더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환우들도 있음을 명심하기로 했다.


"엊그제 TV에서 봤잖아. 뇌까지 암이 전이돼서 거의 절망했던 환자들도 지금 수술과 항암 등으로 잘 살고 있는 모습. 거기에 비하면 우린 아직 견딜만한 것 아닌가?"

만자씨가 또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수호천사와 만자씨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것을...


다만, 앞으로는 집보다는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더 많이 늘리기로 했다.


운동도 더 많이 하고,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커피숍도 다니고.. 그게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데 서로 공감을 했다.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어려운 말을 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포옹을 했다.


"컨디션 괜찮아?"


여전히 수호천사는 나의 컨디션이 관심이다. 가엾다. 많이.




#오니바이드항암 #종양표지자 #강촌여행 #항암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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