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지난 11월 22일 토요일 춘천을 여행했다.
오후 12시 8분 티업 하는 라운딩을 했다. 몸과 마음이 라운딩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는 의미이다.
캐디 없는 코스라 더 많이 걸어야 했다. 다른 곳보다 더 많이 힘들다. 다음날 허벅지에 알이 배길 정도로 언덕을 오르내려야 한다.
라운딩을 마치면 몸이 지치곤 하는데 만자씨만 그런 것은 아니고 환자 아닌 분들도 힘들어 하긴 마찬가지다.
추울 걸 예상하고 만반의 무장을 하고 갔는데 웬걸 이거 완전 날씨 대박이다. 바람이 살짝 불었지만 늦가을볕이 너무 좋아 그냥 힐링이 되었다.
수호천사도 '좋다 좋다'를 연발하며 가을을 즐겼다. 가을 억새는 너무나 멋진 데코였다.
오후 5시쯤 라운딩을 마치고 따뜻하게 샤워를 하고 나니 얼마나 상쾌하던지.
배가 고팠다.
춘천 오면 늘 가던 '샘밭막국수' 대신 다른 곳을 가기로 했다. 얼마 전 티브이 먹방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집인데 그 맛이 궁금했다.
샘밭이 우리 입맛에 워낙 잘 맞아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집 탐방을 감행했다.
결과는?
사람의 입맛은 다양하다는 걸 또 느꼈다. 블로그 리뷰 등을 보고 갔는데 맛은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샘밭만 한 곳이 없었다.
'퇴계 막국수'
막국수 하나와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어 하는 수호천사를 위해 옹심이 칼국수 하나, 녹두전을 주문했다.
0.5인분 수호천사를 고려하면 분명 다 먹지 못할 양이었지만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었다.
막국수는 소문대로 슴슴하니 색다른 맛이었고 옹심이 칼국수도 나쁘지 않았다. 녹두전도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막국수는 뚝딱 비우고 칼국수는 1/3 정도 남겼다. 녹두전도 두 개 중 하나가 남아 포장을 했다.
결론은,
모든 음식이 맛있었지만 우린 '샘밭파'였다. 막국수와 칼국수에 참기름(들기름?) 냄새가 많이 났는데 우리 스타일은 아니었다.
근처에 춘천에서 꽤 유명한 '대원당'이라는 빵집이 있어 커피와 빵을 후식으로 먹었다. 특허까지 냈다는 크림빵이 달콤했다.
먹었으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몸도 지치고 날씨도 추워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빵집 넓은 매장을 이리저리 잠시 돌았다.
내비가 집까지 1시간여 소요된다고 알렸다.
수호천사가 운전대를 잡았고 만자씨는 타자마자 기절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아파트 주차장이었다.
"자기 괜찮아? 아주 죽어서 자던데."
수호천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우~~웅, 거의 기절해서 잤네. 괜찮아. 자기 힘들지?"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만자씨가 수호천사를 걱정하는 척(?) 했다.
그렇게 우리의 춘천여행은 즐겁고 행복하게 막을 내렸다.
집에 도착하니 예쁜 따님이 허그를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재미있었어? 힘들어 보이네."
꼬마시인이 물었다.
"힘들긴. 너무너무 좋았는데. 담 주에 또 가야쥐."
만자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11월 12일 20차 항암을 무사히 마치고 라운딩까지 다녀오니 뿌듯했다.
800까지 올랐던 종양표지자는 309, 다시 213으로 많이 떨어졌고 항암은 그대로 변경 없이 진행 중이다.
한동안 블로그도 브런치도 찾지 못했는데 걱정하시는 이웃분들이 있어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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