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함'에 대하여...(12/9)

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by 암슬생

며칠 전에는 항암 부작용을 겪으며 수호천사와 침대에 누워 함께 울었던 얘기를 썼었다.


그 글을 쓰고 난 후 많은 분들이 격려의 댓글과 응원을 해 주신 덕분인지 며칠 뒤부터 조금씩 좋아지던 컨디션이 오늘은 제대로 회복되었다. '낫배드' 정도가 아니고 '베리 베리 굿'이다.


어제 점심에 좋아하는 안동국시를 먹으며 입맛이 살짝 돌아왔고, 저녁엔 가공 미니 족발을 제법 맛나게 먹었다.


미니 족발은 몸에 그리 좋은 메뉴는 아니나 내가 입맛이 최악일 때 주로 먹는 필살식인데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수호천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그냥 족발도 물론 맛있지만 만자씨(암슬생작가)는 특히 살코기보다는 콜라겐이 많은 미니 족발을 좋아한다. 쫀독쫀독한 콜라겐 살에 짭조름한 양념을 찍어 먹으면 입맛이 돌곤 한다.


점심과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어서인지 저녁부터는 기분도 좋아지고 다리에 힘도 생겼다. 집에서 골프 스윙 연습도 하고 스쿼트도 하면서 제법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항암 부작용으로 며칠 심하게(대략 5~6일) 힘들고 나면 입맛도 돌고 몸도 회복되는 과정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늘 반복되는 일인데도, 막상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 때면 끝이 없는 컴컴한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크게 낙담하게 되고 기분이 제일 낮은 곳까지 다운되곤 한다.


"참 신기하다. '항암 부작용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게 분명해. 토, 일요일 심하게 겪으면 금방 회복되고, 토, 일요일을 수월하게 지나가면 월, 화요일까지 힘들고... 근데 그 전체 시간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만자씨가 컨디션이 좋아졌는지 하이톤 목소리로 수호천사에게 말을 건넸다.


"아휴,, 나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겨워, 지겨워 정말."

밝아진 만자씨를 보며 수호천사도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쳤다.


사람이 참 간사한 걸까?

사람이 참 간사하긴 하다. 평생을 살면서 나 자신이 그런 간사함을 제법 여러 번 느꼈으니까.


어떨 때는 이게 좋다고 하다가 어떨 때는 또 저게 좋단다.

이게 맛있다고 하다가 너무 달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간사함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뭐 그냥 귀엽게 보아 넘기면 된다. 다만,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의도적인 간사함은 절대 경계를 해야겠지만 이 글에서는 논외다.


암튼 며칠 전 글에서 얘기했던 그 암울했던 순간의 만자씨와 수호천사.

그리고 오늘의 만자씨와 수호천사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통화를 했다.

"청국장에 아~~주 맛있게 잘 먹었네요. 컨디션도 너무 좋구요."

만자씨가 기분이 업되어 수호천사에게 점심 보고를 했다.


"그래? 다행이다. 정말. 너무 좋다."

예의 그 수호천사의 대답이다.


"이렇게 조금만 참으면 회복되는 걸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난리를 친 건가? 근데 엊그제는 정말 속된 말로 그냥 확 죽고 싶었어. 너도 너무 힘들어했구. 그치?"


"맞아. 엊그제는 나도 정말 정말 힘들더라구. 이 항암 부작용이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또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고, 자기 힘든 모습 보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 근데 하루 이틀 만에 컨디션 좋아진 자기를 보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사한 생각만 드네?"

수호천사가 호호 거리며 답을 했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한번 항암을 할 때마다 항암 부작용 겪는 시간이 5~6일 정도 되잖아. 3주에 5일 정도.


한 달로 치면 7~8일? 한 달에 1주일 정도 힘든 거라고 보면 뭐 그리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1년으로 계산해 항암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3달 정도?"

만자씨가 뭐 대단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호천사에게 말을 했다.


"그래. 사실 자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항암 부작용이 물론 힘들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이번처럼 또 회복되고 컨디션도 좋아지고 음식도 잘 먹고.. 다음 항암 때까지 또 잘 지낼 수 있잖아.


자기 말처럼 1년 중 고작 3달이야. 물론 짧지 않은 시간이고 그 고통의 시간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 하지만, 암환자가 1년 중 3달 빼고 나머지 9달을 잘 먹고 운동도 하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건 감사할 일 아닌가?


엊그제는 정말 죽고 싶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해... 오늘은 또 희망이 막 생기네...ㅎㅎ."


수호천사도 목소리가 한층 업되어 말을 했다. 엊그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엔 '우린 또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이 가득 차 보였다.


사람은 간사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상태는 모두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것이 오히려 당연할 수 있다.


그토록 힘들던 어제와 그제도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고, 오늘 우리는 또 희망을 품고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만자씨와 수호천사에게 '간사함'이란 이 고난의 시기를 꿋꿋하게 이겨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듯하다.


어젯밤에 꼬마시인과 커들링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아빠 많이 좋아졌네? 이번에는 많이 힘들어하던데..."


"응, 많이 힘들긴 했는데 짧고 굵게 지나가는 것 같아. 내일이면 완존 괜찮을 듯."


꼬마시인이 아빠를 토닥토닥거렸다.

"아휴, 우리 만자씨 기특해요... 기특해."


꼬마시인의 꿀맛 같은 온몸 마사지를 받으며(아들 녀석은 시험공부 중이라 마사지 면제 기간이다)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암환우 #항암 #항암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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