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국물요리
계절이 바뀌어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국물을 갈망하게 된다.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 때,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따스한 것을 채워 넣고 싶은 원초적인 허기가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은 단 하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황태국이다.
우리 집의 황태국은 새벽의 향기 그 자체였다. 아직 세상이 잠들어 미세한 소리마저 울리는 시간, 부엌에서는 황태채를 쌀뜨물에 담그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늘 뽀얗고 담백한 맛을 내셨다. 끓일 때 마늘이나 파는 최소한만 넣었고, 간은 새우젓으로 조심스럽게 맞췄다. 복잡한 기교는 없었지만, 그 단순함 속에 묵직한 진심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 뽀얀 국물 한 숟가락을 마실 때면, 복잡한 생각이나 힘들었던 일들이 잠시 잊히고 마음이 푸근해지며 안도감이 몰려왔다. 황태국은 나에게 엄마의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위로였다. 나는 그 맛을 영원히 흉내 낼 수 없는 엄마만의 영역이라 믿었다.
하지만 요리에 푹 빠진 남편은 달랐다. 그 맛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싶어 했다. 기온이 뚝 떨어졌던 날, 새벽부터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매일 아침 야채찜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뒤부터 코끝을 스치는 깊고 시원한 향이 부엌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부엌 쪽으로 향했다. 계속되는 양, 한방 치료에 지친 나를 위해 남편은 황태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 뽀얀 빛깔과 담백한 맛은 엄마의 손맛을 제대로 재현해 낸 듯했다.
그는 황태를 볶을 때, 건강을 위해 참기름 대신 오메가 3가 풍부한 들기름을 썼고, 무대신 알배추를 넣어 국물의 시원함에 섬세한 단맛을 더했다. 뜨거운 국물이 배추의 숨을 살짝 죽이자, 그 시원하고 고소한 향이 부엌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남편의 솜씨는 훌륭했고 그 맛의 깊이는 어머니의 그것과 같이 진실했다.
데워진 도자기그릇에 담겨 나온 남편의 황태국은 모든 것이 정갈했다. 들쭉날쭉하지 않은 황태채의 크기, 국물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알배추의 모양새는 남편의 섬세하고 다정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뜨거운 국물의 그 시원함은 오랜 치료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풀어 주었고, 마음의 긴장마저 놓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이 남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된다!
자~ 이제 남편의 황태국을 소개할게요!
<재료>
황태 160g, 양파 1개, 대파 1줄, 마늘 5개, 홍고추 1/2개, 소금 6꼬집, 들기름 2Ts, 알배추 500g, 두부 1모
< 육수>
다시마 큰 것 2장, 디포리 5마리, 큰 멸치 5마리
황태 160g을 준비한다.
황태를 5Cm 크기로 다듬는다.
황태를 물에 한번 씻는다.
양파, 대파, 마늘, 홍고추를 준비한다.
전골냄비에 황태를 넣는다.
전골냄비에 야채를 넣는다.
소금 6꼬집, 들기름 2Ts를 넣고 10분 재운다.
알배추를 준비한다.
알배추 500g을 소금 4꼬집을 넣고 10분 이상 절인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다시마와 디포리, 멸치를 준비한다.
황태와 야채를 3분간 볶고, 물 400ml를 넣어 3분간 끓인다.
물 400ml를 추가로 넣고 4분간 끓이고, 물 1200ml를 넣고 5분간 끓인다.
전골냄비에 다시마와 디포리, 멸치를 넣는다.
전골냄비에 추가로 알배추도 넣는다.
전골냄비 뚜껑을 덮고 20분간 끓인다.
두부 1모를 썰어서 준비한다.
두부를 넣고 3분 더 끓인다.
완성한 황태국!
황태가 단백질의 보고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황태는 우리 집 식탁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소박한 재료에 깊은 애정을 더 가지게 되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면, 황태채를 자주 산다. 쟁여 놓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최애 혼밥 메뉴는 '황태 현미 떡국'이다.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쉽게 후다닥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황태떡국을 끓이지 않는다.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남편과 비교가 되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남편의 요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 있다. 요리를 1도 모르던 사람이니 모든 걸 계량하고 미리 준비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지만, 자꾸만 나의 요리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남편이 하는 대부분의 요리는 매번 맛이 변함없이 일정하다. 실패하는 법이 없다. 계량과 인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나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재료를 더하고 빼다 보면 그 맛이 호불호로 갈리곤 한다. 손맛이 있다고 칭찬받는 내가, 이제 겨우 요리 9개월 차 남편에게 밀리고 있다는 묘한 이 불안감. 이참에 부엌에서 완전 은퇴를 선언하고 고문직도 내려놓는 것이 현명한 건지,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 굳건히 내 자리를 지켜 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p.s: 황태국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강추드립니다. 정말 맛이 깊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