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나귀가죽]]을 읽으며
[[나귀가죽]]을 읽는 동안, 책을 자주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아서라기보다 한 인물이 말을 이어가는 방식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파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말한다.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 데려왔는지, 어떤 선택이 그를 여기까지 밀어왔는지 그는 멈추지 않고 이야기한다. 문장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자주 되돌아오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다 멈추고, 몇 장을 건너뛰었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그의 말은 그렇게 읽힌다.
처음에는 말이 많다는 인상만 남았다. 소설 속에는 늘 자신의 사정을 길게 늘어놓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우리는 대개 그런 인물들을 빠르게 지나친다. 라파엘 역시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 보니 그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왜 그는 자신의 삶을 한 번에 말하지 못하고 여러 번에 나누어 꺼내야 했을까. 문장 사이에 남아 있는 공백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말이 멈추지 못하는 상태에 더 가까워 보였다.
라파엘의 삶에서 욕망의 얼굴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인물은 페도라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기다림이 없다. 말은 곧 반응을 부르고 감정은 지체 없이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때의 욕망은 아직 생각과 결과 사이에 여백을 남겨둔다. 원한 것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은 아직 선택 앞에 머문다.
골동품 가게에서 만난 나귀가죽은 단순한 규칙을 지닌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죽은 줄어든다.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에 품기만 해도 변화는 시작된다. 이 설정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해서 현실의 어떤 장면과 겹쳐 보인다. 우리는 종종 어떤 마음을 품는 순간 이미 그 결과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라파엘은 이 규칙을 완전히 이해한 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심하고, 흘려듣고, 반쯤 믿은 채 가죽을 손에 쥔다. 그것은 분명한 결심이라기보다 놓쳐버린 선택에 가까웠다. 이후 그의 삶은 빠르게 달라진다.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질수록 주변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되고 동시에 가죽은 눈에 띄게 작아진다. 그는 그 변화를 인식하면서도 완전히 멈추지 못한다.
점점 그는 조심스러워진다. 말을 줄이고, 사람을 피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쓴다.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은 삶을 되돌려놓지 못한다. 생각은 여전히 결과를 앞서고 마음과 현실 사이에는 머무를 틈이 없다. 라파엘의 하루는 점점 짧아지고, 그의 말은 점점 길어진다. 그는 말로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파엘은 욕망 덩어리로 부르는 일은 쉽다. 그 한마디로 그의 삶은 단순해진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너무 편하다. 그 말속에서는 그가 어떤 속도로 욕망에 이끌려 살아왔는지, 어디에서 멈추는 법을 잃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이 끝내 남기는 것은 욕망 그 자체라기보다 마음과 결과 사이에 아무런 간격도 허락되지 않는 삶의 조건이다. 생각이 곧 결과가 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라파엘은 결국 시골로 떠난다. 사람을 피하고 조용한 시간을 얻으려는 선택이다. 그것은 도망처럼 보이기도 하고, 늦게 도착한 용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폴린을 다시 만난다. 늘 곁에 있었지만 한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페도라와 달리 폴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와의 시간에는 서두를 이유도 증명할 필요도 없다. 이 조용한 관계는 라파엘의 삶에 전혀 다른 리듬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이 가능성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폴린은 구원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흔적으로 남는다. 라파엘이 그 가능성을 알아보는 순간은 이미 많은 것이 지난 뒤다. 이 늦음은 소설 전체에 걸쳐 늦게 도착한 이해, 늦게 발견된 마음,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스며 있다.
[[나귀가죽]]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 소설이다. 욕망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실패한 삶의 기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읽고 난 뒤에 남는 것은 판단보다 질문에 가깝다. 어떤 삶은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한 채 흘러가고, 어떤 선택은 되돌릴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그 속도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그가 놓인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을 덮으며 나는 여전히 확신에 이르지 못한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을 그렇게 빠르게 재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라파엘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를 쉽게 지나치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의 말이 길었던 이유를, 멈추지 못했던 시간을 함부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나귀가죽]]을 읽으며 나는 한 사람의 삶에 남겨질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사라진 자리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지만 쉽게 지나칠 수는 없다. 나는 아직 그 근처에 머물러 있다. 아마 이 소설이 내게 남긴 것은 그 머뭇거림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