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쉽게 서로를 지나치는가
"크리스마스에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
뮤지컬 [존 도우]는 한 편의 가짜 기사에서 시작된다. 해고 위기에 처한 기자 앤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기사로 써 내려간다. 돌이켜보면, 그 기사는 거짓이라기보다 앤의 절박한 마음을 옮겨 적은 글에 가깝다. 자신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존 도우'라는 이름 뒤에 숨겨 써 내려간, 일종의 절규처럼 느껴진다.
기사 속 그 한 문장은 생각보다 멀리 퍼져나간다. '존 도우'는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지쳐있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은 모여 분노하고, 반응하며, 공감하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존 도우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앤은 전직 무명 야구 선수였던 '존 윌라비'를 '존 도우'라는 이름으로 세상 앞에 내세우게 된다. 존 도우는 더 이상 기사 속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켜야 할 존재가 된다.
무대 위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문득,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존 도우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며 살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린 적은 없었을까. 어쩌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뉴스 화면에 잠깐 나왔다 사라진 사람일 수도 있다. 잠시 지쳤고, 외로웠고, 삶이 조금 버거울 뿐인 사람. 어쩌면 예전의 나일 수도 있다. 공연은 조용히 내 마음에 젖어들어왔다.
존 도우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앤이 쓴 한 편의 기사는 결국 그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짜로 시작된 이야기가 진실이 되고, 한 사람의 절망이 모두의 질문이 되는 과정. <존 도우>는 그 과정을 통해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어젯밤,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크게 흔들리거나 특별한 감동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이 내게 남긴 여운이 조용히 마음속에 남았다.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표정을 한 번 더 보고, 안부를 한 번 더 묻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당신을 보고 있다'라는 시선이나 말 한마디가 절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따뜻하게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 보자.
P.S: Photo by E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