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브런치 작가되다

by HB

“요리를 한번 배워보면 어때요?”


재작년 가을, 어느 한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연로하신 어르신을 보고 난 이후부터 한 번씩 툭툭 던지듯 건넨 말이다. 그 어르신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배낭에서 찬 통을 꺼내 반찬의 반을 덜어 넣었다. 댁에 가서 드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괜히 짠하며 마음이 아팠다. 그날 이후, 앞으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생각해 보며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남자들도 자신을 위해서 음식 몇 가지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 한 잔조차도 다 챙겨주던 내가 남편에게 요리를 배우라고 말하니 그는 깜짝 놀라는 듯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쩜 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요리를 배우라고 권유했다. 작년 2월, 그는 나의 말에 화답하듯 요리학원에 등록을 했다. 두 달 코스 하나 정도 배우면 충분할 거라 여겼다. 더 이상 다니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그는 새로운 그의 재능을 발견했고 요리에 푹 빠져 들었다.


처음 요리학원을 등록할 때는 부끄러워 나를 앞세우던 남편이 혼자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다음 과정을 결정하며, 수업에 앞서 미리 공부를 한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그 순간을 지나쳐 버리기가 아까워, 작년부터 남편의 요리를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그의 요리를 브런치에 올리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탈리안 요리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한식과는 달리 집에서 전혀 연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니 그다지 집에서 해 먹을 거 같지도 않은 요리들이고, 무엇보다 낯선 이름과 각종 소스명이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와 양식 요리가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브런치에 그의 요리를 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고, 평생 성실히 살아온 발자취 그대로 요리도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 일이 끝나면 나는 지난 추억이나 잊혔던 기억을 불러내어 글을 썼다. 옛 기억이 주는 감회에 젖어 둘이 한참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서로의 기억이 맞다고 우기기도 했다. 재미도 있었고 즐겁기도 했다. 그렇지만 둘이 협업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30년 넘게 부엌살림을 하던 나는 어설픈 그의 칼질이나 요리 과정에서 몇 번이고 대신 후다닥 해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분명 주눅이 들고 못한다고 두 손을 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꾹 참으며 그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내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낄 정도이다.


3개월여 동안, 요리 13편과 Season 1 마무리 글까지 모두 14편을 브런치에 올렸다. 매주 한편씩 올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마침 미리 계획한 여행 날짜가 다되어 우리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쯤 숨 고르기를 한번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 이후에 올린 발리에서 함께 했던 Cooking Class 글을 끝으로 나의 브런치 북인 ‘이 남자, 요리가 되네?’는 현재 휴재 중이다.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니 주변에서 남편의 요리를 왜 올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럴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 ‘굳이 내가 올릴 필요가 있을까.’ ‘남편의 요리이니 본인이 직접 올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쩍 권해 봤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직접 요리와 글을 올리면 어떨까?” 처음에는 역시,


“내가? 못한다!”


그러기를 몇 차례, 그는 결국 결심을 했고, 브런치 작가 승인 신청 절차를 밟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이제 남편은 자신의 브런치 공간에 요리 사진과 글을 올리게 됨으로써 더 꼼꼼하게 요리를 한다. 그 요리에 담긴 얘기를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어가며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새 취미를 넘어 자기만의 요리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요리에 빠지고, 마트에 빠졌던 그 뜨거운 남편의 몰입이 결국 남편의 요리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끝이 어디 일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남편의 세계가 주방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또 어디로 뻗어 나갈지,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가 만들어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