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에서
계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겨울은 나에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다. 부산에서 살던 시절의 겨울은 늘 바람으로 시작됐다. 한참 멋을 내던 때, 헤어 드라이어로 앞머리 볼륨을 세우고 고데기로 머리 끝을 말아 모양을 단단히 잡아 둔 채 집을 나서면, 골목을 채 돌기도 전에 거센 바람이 불어와 애써 만든 머리를 헝클어 놓았다. 두 손으로 아무리 감싸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었다.
서울에서 맞은 겨울은 또 달랐다. 결혼하고 올라와 처음 겪는 겨울이었다. 바람보다 공기가 더 매서웠다. 얼굴을 스치는 찬 기운이 뺨을 찢는 듯했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코끝이 찡하게 아렸다.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있어도 공기는 틈을 찾아 스며들었다. 배 안쪽까지 서늘해지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겨울은 늘 그렇게 몸을 먼저 긴장시키는 계절이었다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계절,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해야 할 일들은 늘 앞에 있었고, 계절을 천천히 바라볼 틈은 뒤로 밀렸다. 추위가 싫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나는 겨울을 제대로 만나보지 않은 채 흘려보냈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끝이 가까워지자 마음 한쪽이 허전해졌다. 이대로 또 하나의 계절을 스쳐 보내는 건 아닐까. 나는 겨울의 끝, 생동력과 정적 사이에 잠시 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추운 곳, 아직 겨울이 남아 있을 법한 곳, 평창으로 향했다.
산 능선에는 녹다 만 눈이 희끗하게 남아 있었고, 햇빛을 받은 들판은 누런 빛을 띠며 낮게 엎드려 있었다. 새순은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았고, 바람은 차갑지만 거칠지는 않았다. 겨울이 완전히 떠난 것도, 그렇다고 온전히 머무는 것도 아닌 중간의 시간이었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했다.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건너는 중이라는 사실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숙소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다. 로비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수영장에서는 물장구치는 소리가 밝게 울렸다. 작은 몸들이 넘어졌다가 금세 일어나 다시 달렸다. 울음은 오래가지 않았고, 웃음은 쉽게 번졌다. 그들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겨울의 끝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다음 계절의 움직임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의 숨결과 웃음이, 마치 아직 보이지 않는 새순처럼 느껴졌다. 생동력은 언제나 조용한 틈에서 먼저 움튼다.
평창까지 가서 나는 지난겨울을 한 번 더 건너왔다. 부산의 거센 바람도, 서울의 차가운 공기도 그 자리에 함께 떠올랐다. 그 모든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와 닿아있다. 계절은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듯 보여도, 그 안에는 이미 다음의 기척이 깃들어 있다.
이제는 새봄을 맞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