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은 먼저 무너졌다

후회

by HB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햇볕이 사람의 숨을 짓누르듯 내려앉던 계절이었다. 부산에 계시던 엄마를 잠시 동안이라도 서울로 모시기로 한 결정은 그 여름 한가운데에서 내려졌다. 그 선택이 이후의 시간을 이렇게 오래 붙잡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부산에서 홀로 지내고 계셨다. 가까이에 사는 남동생이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병원에도 동행하며 보살피고 있었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남동생이 산악자전거를 타다 크게 넘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충격이 너무 커 당분간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엄마의 걱정은 깊어졌다. 사고 소식을 들은 뒤로 엄마는 혹시라도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불안해하는 엄마를 더 이상 홀로 둘 수는 없었다. 동생과 여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의논했다. 서울로 모시는 방법도 그중 하나였다. 그동안 엄마의 건강 문제를 살펴볼 병원도 미리 알아두었고, 무엇보다 정성껏 지은 따뜻한 식사를 챙겨드리고 싶었다.


내가 부산으로 내려가 엄마 곁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엄마를 서울로 모실 것인가. 선택은 단순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현실이 얽혀 있었다. 며칠이 아니라 언제까지가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내가 부산에서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다 엄마를 서울로 모시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혼자 계시는 것보다 가족이 곁에 있는 편이 낫고, 치료받기에는 서울이 더 나을 것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엄마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당분간 엄마를 서울로 모시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침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남편이 엄마를 모셔 왔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라는 남편의 연락을 받고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렸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택시에서 내리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 그 순간, 머리보다 먼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늘 괜찮다고 말했다. 아프다는 말 대신 “좀 지나면 괜찮다”라고 했고, 힘들다는 말 대신에 ”이 나이에 다 그렇지”라며 웃어넘겼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 훨씬 쇠약해져 있었다. 지난번 보다 작아진 몸, 기운 없이 내려앉은 어깨, 잠깐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얼굴, 몇 걸음 옮길 때마다 멈칫거리는 발걸음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얼른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기력을 되찾아 드리고 싶었다. 혈당이 오르지 않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찾아 준비했고, 기운을 돋운다는 것들을 빠짐없이 상에 올렸다. 한의원으로 모시고 가서 보약도 지었고 허리 협착으로 인한 통증을 덜어드리려고 약침도 맞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드리고 싶었다. 지금부터 잘 챙기면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집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낯선 공간은 엄마에게 안정이 아니라 긴장이었고, 마치 고립된 것처럼 느끼는 듯했다. 결국 엄마는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엄마를 차마 붙잡지 못했다. 아무리 딸의 집이라 해도 당신 자리는 아니라는 걸 엄마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엄마의 마음이 오히려 섭섭하게 느껴졌다.


눈앞의 쇠약이 기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생이 기울고 있다는 신호인지 사람들은 겪어 봐야지 안다. 그 차이를 그때의 나는 몰랐다. 엄마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셨고, 그 후 스무날 만에,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2018년 7월이었다.




시간이 지나고도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왜 그때 더 빠르게 결정하지 못했을까. 왜 곧장 병원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왜 나는 집에서 돌봐드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을까. 그러나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선택들이 아니다. 그것은 엄마를 서울로 모신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익숙한 공간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내가 그 곁에 머물며 돌보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가족 모두를 덜 힘들게 하는 쪽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이기적이었는지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돌봄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남아 주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 여름의 나를 떠올린다. 엄마 곁에 있으면서도 끝내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던 나를 생각한다.


머리보다 먼저 무너진 그 가슴은 지금도 내가 끝내하지 못한 선택을 조용히 되묻고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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