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인생의 터닝포인트이자 티핑포인트가 되어 주다
고전의 해석이라는 선입견이었을까?, 처음에는 읽기를 주저했었다. 열하일기는 내가 세 번째 읽은 고미숙 작가의 책이다. 처음 접한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는 글쓰기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주었고, 두 번째 접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사주명리학에 대한 개론을 느끼게 했다.
'열하일기(출간 20주년 기념 리커버판)'는 연암에 빙의되는 고 작가의 심성과 문체를 통해 200여 년 전 '금수저의 이단아' 박지원이 사람과 사물을 어떻게 보고 읽었는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488쪽 적지 않은 두께와 곳곳에서 뛰쳐나오는 생소한 단어들, 여백의 미가 덜한 빽빽한 문단과 각장의 펼침이 본의 아니게 '정독의 속도'로 맞추게 했다. 그렇게 '뱁새'의 심정으로 일주일간 새벽녘에 읽었다. 이 책은 고미숙 작가가 왜 열하일기에 심취하여 인생의 터닝포인트이자 티핑포인트가 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멈칫'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혔다. 낯선 단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네이버의 도움을 받느라 수도 없이 일단정지를 했지만. 읽을수록 점점 연암에 빙의되어 가는 고 작가를 확인했다.
그녀는 부록 편 '나의 열하일기' 403쪽을 보면 2003년 4월 13일 여행의 첫 기착지 선양(심양)에 도착했을 때의 풍광과 느낌을 연암 뺨칠 정도로 표현했다.
"세계적인 오염 도시답게 선양의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스모그려니 하고 공항을 나서는데, 차고 거센 황토 바람이 몸을 덮쳐온다. 어린 시절, 태풍이 덮쳐왔을 때, 강원도 시골 산자락 밑에서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던 기억이 흑백필름처럼 휙 스쳐 지나간다. 아뿔싸! 우리는 4월 황사가 용트림하는 계절에 그 진원지에 들어선 것이다. 겁대가리 없이. '영웅의 싸움터'라고 했던 연암의 말 때문일까. 나는 바람의 회오리 속에서 전사들의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이 땅에 도래했을 때도 이런 흙먼지가 천지에 요동쳤으리라.”
연암과 고 작가의‘합화(合和)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독자에게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작한 도입부, 목적을 위해 고난을 헤쳐나가는 진취적인 기상을 ‘유쾌한 노마드'로, `범람하는 유머와 열정의 패러독스'로 장식한 본론부, 연암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마감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는 연착륙이다.
보론 부분 연암과 다산을 비교한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는 작가의 심연, 생각의 욕심이 읽힌다. `나의 열하일기 1', `나의 열하일기 2', `열하일기의 원목차', `열하일기 등장인물 캐리커처', `주요 용어 해설',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찾아보기'까지 이 책은 부록에 `맛있는 후식'에다 `예쁜 고명'까지 얹어 주었다.
이토록 정성을 들였으니 `그녀의 인생에 대전환을 가져다준 책'이라는 말에 공감이다.
고미숙 작가의 열하일기는 큰 틀에서 보면 글쓰기의 고전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올해에도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나 모두의 가슴속에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만들어주기를 소망한다. 호쾌한 연암의 문체를 닮은 고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사진 ll 일러스트레이터 한유사랑 씨가 그린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전신 입상/월간중앙
#연암 #고미숙 #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