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들

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4

by 쌍둥이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4

<알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들>





“배움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오늘도 별처럼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매일을 그렇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끝에 최종이 있는 일이건, 그렇지 않을 일이건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거나, 때론 했었던 나는_

과거의 그 ‘무언가’를 알지도 못했던, 과거와는 조금이나마,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만 있다면, 그 누구든지 간에—

탄생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존재들이다.


아득한 것들 사이로_

잠시 삶을 느끼는 쉼터를 찾는 나그네이고, 신호등의 중간이며, 바람 속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이다.


생애는 찰나이고, 태초의 우리와 삶이 끝난 이후에 일들은 우리가 영영 알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일 것이다.


결국, 과거로는 갈 수없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떨어지게 되고,

쉼터를 찾는 나그네들은 오래 걸을 수 없으며,

노란 신호등이 깜빡이고 나면, 붉은 신호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무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소한 것들이 될, ‘삶을_무엇에 쓸 수 있는가.’



나는 삶이 쓰여야 할 곳들을 찾으려, 오늘을 애쓴다.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배우고, 느끼고, 울고, 웃고, 숨을 쉬고, 감사하거나.

배우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감사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작과 끝이 이토록, 비슷한 것들이라면, 삶을 감사하고 즐기며, 행복을 느끼려 배우고, 애쓴다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 되는 것일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알 수없음에도, 불구하고_

나는 10년 뒤에 내가, 1년 뒤에 내가, 10분 뒤에 내가.

걷는 중에도 꽃을 볼 수 있었음을, 빛나는 중에도 깜빡일 수 있었음을, 떨어지는 중에도 바람을 느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 하고_ 늘 바랄 뿐이다.



나는, 잘 죽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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