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일랑이는 순간 오직 그 바람덕에 평온함을 느낄 때면 도연은 어린 시절 살던 과천을 떠올렸다. 도연에게 과천은 깊고 사무친 기억보다 언제나 일렁이다 나부끼며 바람처럼 부드러운 무언가였다. 매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혜안은 없지만 손과 발과 뺨에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 느낄줄 알았고 부모 표정을 보며 그 순간을 기억했다. 어쩌면 기억의 조각이 많지 않았기에 폭풍우보다 선선한 바람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난 지 칠 년도 채 되지 않은 소녀에게 , 두 눈과 생각을 가린 텁텁한 것들이 없었기에 참으로 예쁘게 기억할 수 있었을 테다.
십수 년이 흘러 그곳에 가보았다. 도연이 딱 스무 살 되는 해였다. 오직 지하철 4호선 열차를 타고 멀리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따금 간밤의 숙취로 몸은 천근만근, 마음은 가늠도 안될 만큼 무거운 날에도 과천은 스물네 개 역이나 가야 했지만 평탄했고 멀었지만 차분했다. 도피와 위안이 적절히 섞인 이상세계 같은 곳이었다. 열차로 꽤 달리다 보면 회현을 지날 때 즈음 하수구 머리카락을 얽어서 제거해 주는 1천 원 남짓한 플라스틱 꼬챙이를 파는 아저씨들의 출현하고 경마공원역에서 오른 겨드랑이 사이로 마사회 책자를 낀 채 여간해서 고개를 들지 않는 아저씨들이 우르르 탄다. 곧 과천역이 다 왔다는 의미다.
열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개찰구를 통과해 출구로 가는길이 길고 조용하다. 굉장히 아름다운 세계를 마주하기전의 설레임과 긴장감이 동시에 반영되는 곳 처럼. 이내 과천역 11번 출구로 나와 뒷방향으로 걷다 보면 육교가 있다. 왼편 건물엔 도연이 어린 시절 다녔던 샛별유치원이 있고 지하엔 당시 한화스토어였던 마트자리가 있다. 계속해서 걸으며 옆 개천의 물 내음을 맡고 또 정처 없이 걷다보니 과천 대성당이 보인다. 이참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그렇게 절집에 드나들던 도연이지만 예전부터 성당 안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그녀에게 무척 마성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술이 덜 깬 지난 날 재수학원에 도저히 갈 수 없어 첫 도피처로 선택했던 곳이 성당이었다. 왜 절을 안 가고 성당에 갔을까 여전히 의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궁금해도 들어갈 수 없던 커다란 종이 있고 그 위에 위로 뾰족한 지붕 그 위에 십자가가 있는 저 멋지고 웅장한 건물을 이렇게나마 들어가 보았다.
조용하다. 생각보다 더 깊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지만 용기를 내어 대강당 커다란 문을 연다. 어두운 연극 무대에 핀조명을 박은 듯 문 틈 크기만큼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다. 그 넓은 자리에 세 분이 각각 따로 앉아 기도를 한다. 이윽고 멀리서 도연을 지켜보던 여성분이 도연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제술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내 나의 고민을 상담해 주신다. 종교가 달라도 괜찮다.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어도 괜찮다. 나도 이렇게 예수님을 의지해 살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윗층에서 들리는 오르간 소리, 빛이 비출수록 더 찬연하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 흰 면사포를 쓴 어느 신도의 모습. 어린 시절 세인트폴성당을 배경으로 한 만화영화에서 본 모습도 믿을수 없을만큼 멋졌지만 실제로 본 성당 안의 모습은 엄숙하고 장엄하고 고요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엄함과 멋있음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다. 이제 도연은 밤에 울려 퍼지는 대성당의 종소리를 꼭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뒷길로 걷다 보니 관악산 입구가 나온다. 세월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서 그곳이 관악산인지 청계산인지는 잘 모른다. 산길을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연주암 표지판이 보인다. 한 고개만 넘으면 연주대가 나온다는데 도연은 그걸 못 본다. 다리가 부서질 것같이 아프니까. 위쪽에서는 날이 좋아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며 탄성을 내지르는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리지만 도연은 한 계단도 더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 이만하면 되었다 하며 위안을 하며 내려오는 길 소녀 같은 모습의 단발머리를 한 늘씬한 외국인 여성이 내게 말을 건다.
시력이 좋지 않은 도연은 얼핏 뒤따라오고 있는 날씬한 여성을 산을 오를때부터 인지는 했지만 말을 걸며 대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외국인이라서 그랬나보다. 그런데 그 여성이 먼저 말을 건다. 말을 잘 뱉지는 못해도 듣기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도연이다. 실력보다 촉이 발달해서일지 모른다고 도연은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의 업무로 인해 4박 5일간 한국에 와 있으며 정부종합청사 맞은 편 그랜도 호텔에 머물고 있단다. 지금은 남편이 일을 하러 나가 혼자 바람을 쐴 겸 산에 왔다고 했다. 자신은 '아바'의 나라에서 왔으며 댄싱퀸을 내게 아냐고 물어본다. 안다고 했다. 아바이야기를 하다 캘리포티아 드림을 부른 마마스 앤 파파스얘기까지 나온다. 맘마미아 영화이야기도 한다. 도연은 단어로만 내뱉는다. 그 아바의 나라에서 온 여성분은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다. 또래보다 5~15년은 애늙은이 감성을 가진게 이럴때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그녀는 등산로 곳곳에 돌멩이들이 쌓아 만든 사람들의 소원탑을 가리키며 이건 뭐냐고 도연에게 묻는다.
"매니 피플 홉.. 온 스톤 온 스톤 온 스톤... 낫 터치 스톤... 와르르르르르르"
서로를 쳐다보며 박장대소를 한다. 되지도 않는 영어인데 소통은 다 된다. 스무 살의 도연은 졸지에 엄마뻘 중년의 외국인 여성까지 사귀게 되었다. 하산 후 KFC에 들러 닭가슴살을 두껍게 튀긴 버거세트를 함께 먹었다. 지금의 도연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의 삶은 지금보다 더 암울했고 어두웠지만 지금처럼 촘촘한 것이아닌 커다란 그물망 이었기에 구멍을 낸 틀 안에서도 아주작게 자리잡아 숨 쉴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과천에만 가면 도연은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생각해 보면 과천이 '어린 시절'의 도연에게 해준 것은 딱히 없다. 그곳에 사는 7년간 유치원을 두 번 옮겼고 아빠가 은행에서 해고되기 전 중산층이라 불리는 삶을 살던 시절 호프호텔 건물을 가족들과 함께 자주 들락거리며 외식을 했던 일, 어린이 대공원을 정말이지 매주 질리도록 갔던 것들.
그때는 무심코 지나친 어린날의 과천의 풍경과 기억과 모습이 이제는 다르게 다가온다. 과천에 살던 시절 엄마 몰래 주방에 있던 인테리어 책을 읽으며 보았던 사진 속 집이 과천의 꿈같은 나만의 집으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진다. 어쩌면 사는 내내 겪어오던 바짝 마르고 송곳같이 날카롭던 많은 일들도 과천에서 겪었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떠올려본다. 단층 주공아파트가 11단지까지 넓게 있던 과천시 중앙동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이제는 없다. 도연이 살던 11단지부터 가장 먼저 재개발을 시작해 지금은 8단지 9단지 재개발만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십수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 해도 일랑거리는 과천의 공기와 따스함은 여전히 도연의 머릿속에만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경기 남부의 과천 가는 가장 멀리 떨어진 경기도 북부 어딘가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글을 쓰고 있는 도연의 마음은 오늘도 다시 과천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