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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by 여래

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더니 금새 어둑어둑해졌다. 천천히 내리는 비에 촉촉함을 느끼는 것은 본 적도 없는 삶이라 바랄 수도 바란적도 없었다. 언뜻 어린 날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 다시 못 볼 스쳐 지나간 꿈의 한 장면일 뿐. 이내 어둑해진 하늘에 천둥이 치고 언제 내리칠지 모르는 번개를 숨죽여 기다린다. 기다림이 애달프기보다 두렵다. 매일 잠자리에 들면 녹초가 될 만큼 깊은 심연의 꿈을 꾸게 될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뒷 목이 닿을 베개를 최대한 부드럽고 얕은 것으로 바꾸어 눕는다. 꿈에서 깨어나면 뒷 목과 어깨 근육이 뻐근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온몸과 마음이 심해를 구경하고 오는 듯하다.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렵지만 알아야 하고, 알면 내 삶이 바뀔 수도 있으리란 원이고 갈망일지 모른다.


도연은 여러 날을 고민했다. 기도라는 건 뭘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뭘까. 나는 누굴까.

객관적이어야 할까 누구보다 주관적이 어할까. 이렇게 기도하는 게 맞는 걸까. 무엇이든 정확하게 하고 싶었다. 한치에 틀림도 없이 정해진대로 해내고 싶다. 공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 마음과 인생에 삶에 작지만 소중한 것 들로만 채워나가고 싶다. 도연의 기도는 사실 너무 헐렁하고 부족했다. 어설프기 짝이없다. 허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틀리면 틀린 대로 일분일초 매 순간 진심을 담으려 노력한다. 도연의 마음은 그렇게 하루하루 맑게 닦여나갈테다.


유리 막 위에 층층이 쌓여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떡먼지들을 헤집고 마침내 맑은 유리를 만드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한 아름 씩 수일은 떠서 버리고 거둬내고 들어내야만 한다. 들어낼 때마다 먼지 구덩이에 속속들이 숨어살던 노린재 같은 벌레와 꼽재기들, 머리카락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으며 두려웠다. 그 안에 귀한 것들도 더러 보였다. 귀했지만 제대로 아껴주지 못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음이라는 유리 위 먼지 구덩이 속에 똘똘 말리고 굳고 숨겨져 찾기도 힘들었던 남편의 상처,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 연이 끊긴 지 15년은 더 된 친할머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고통들이 하루하루 새벽녘 꿈을 통해 내게 보여주었다. 지난 세월 그저 나만 보고 살았던 스스로가 죄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본 것도 아니었다. 먼지를 거두기보다 거두어진 깨끗한 유리 위에 무엇을 올려두고 멋을 내며 광을 낼지에만 고민했다. 그 일이 이뤄질 리 없었다. 될 리 만무했다. 광이 나지 않는 유리를 보며 십수 년을 마음 아파했다. 안된다고 해도 안 된다고.


potho by chatGPT


도연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촛대 위에 올려보기로 했다. 기울더라도 끝내 녹아 사그라지더라도 심지는 꺼지지 않도록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어설프지만 서글픈 기도의 첫날이 츠르름 보인다.


먼지 구덩이 안에 아빠는 도연을 걱정했다. 도연의 엄마도 걱정했다. 아빠는 도연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양손에 들고 왔다. 그렇게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별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도연은 알 수 있었다. 거실로 들어와 아빠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찰나 아빠의 간식꾸러미 안에서 오렌지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오렌지 하나가. 도연은 알았다.


"도연이 너 이제 생기 있게 살아. 그렇게 축 쳐져 죽은 사람처럼 살지 말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오렌지처럼 살아."


살아생전 아빠 입으로 제대로 듣지 못했던 아빠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아빠의 극락왕생을 도연은 마음 가득 빌었다. 비싸지 않지만 달콤해보이는 오렌지를 한아름 구입해 영전에 올린다. 아빠에게 나의 마음도 닿기를. 오래걸려도 닿아가기를.


해가 뜨고 아침이 되어 꿈에서 깨어난 도연은 온몸에 진이 빠짐을 느꼈다.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수백 미터 심해에 푹 넣었다 건져 올린 것처럼 탈진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도연은 아빠의 메시지를 잘도 알아먹었다. 한 장면 한 장면 눈빛 표정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도연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를.


그렇게 심지 위에 촛불에 불이 켜진지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을 그리고 또 다가올 날들을 기다린다. 그렇게 도연의 기도는 점점 깊어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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