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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하게 절절하게 힘을 다해

by 여래

도연에게는 또래에 어울리지 않는 보다 진하고 깊은 희생의 마음이 있었다. 그것도 다 옛날 말이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옛날말이 되어버린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어리석음과 희생은 한 끗 차이다. 어쩌면 그런 마음보다는 타인의 여건이 좋아질 수 있도록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힘이 될지 모른다. 실제 삶은 더욱 그렇다. 맏며느리가 수십 년 시부모를 봉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새어나가는 돈들이 얼마일지 가늠도 하지 못하지만 일 년에 명절 두 번, 시부모 생신두 번중 한두 번만 두둑한 용돈을 드린다면 , 보약이라도 한재 해드린다면 최고의 효부는 둘째 며느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면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아플때 정말 많이 아프다. 때론 다치기도 한다. 계산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다. 자신을 지켜줄 무기는 오직 '진심'밖에 없다. 그 진심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 지켜내는 것 외엔 별 방도가 없다.


그 때에도 한없이 마음이 추락하는 동안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마음이란 놈을 지켜냈어야 했지만 도연은 그렇게 추락하는 엘레비이터안에서 피하려고도 덜 아프려고도 하지 않고 주저앉지도 않은 채 철퍼덕 바닥에 던져졌다. 기적적으로 죽지는 않았다. 다만 소생할 힘을 다시 모으는 게 참 죽으라고 힘이 든다. 한 계단 씩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도연은 늘 22층 꼭대기에 있던 그 시절의 건강한 마음만 그리고 있다. 시야가 흐려진게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모른다. 마흔이 되어도. 그제사 마음이 급하다. 다시 오를적에 계단으로 올라갈지 부서진 엘레베이터를 다시 고쳐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다시 거슬러 가는 길에 조금의 부딪힘도 먼지같은 잿가루도 세세한 무너짐의 균열도 견뎌내기가 힘들다. 이내 다시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재차 손에서 모든걸 놓고 만다. 결국 제자리걸음을 한다. 먼저 추락한 곳보다 조금더 깊은곳에 떨궈지거나.


자기하나 건사할줄 모르는게 또 가진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자꾸 누군가를 지키려 한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허황된 사고로만 생을 살아간다.


가끔 글을 쓰는 도연의 몸도 엉망진창이다. 때때로 심장이 특별한 이유 없이 요동친다. 그러다 의식을 잃기도 한다. 하루 종일 누워있을 만큼 기력이 없는 날도 많다. 하루 열여섯 시간 넘게 자도 여전히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해져 땅끝을 쳐다보는 심정이 될 때마다 글을 쓴다. 잠시도 쉬지 않고 갈겨쓴다. 자그마한 찻잔에 양동이 물을 들이부어대듯이. 글을 쓸 힘만은 남아있어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마음 어딘가에 사는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겠는 무언가가 가슴팍을 손톱으로 톡톡 건드릴 때마다 도연의 마음은 몇 번이고 쿵 무너진다. 불안에 잠을 설친다. 청천벽력처럼 그놈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랬다. 그래서 자신이 사라지기를 택한 날도 있었다.


무형의 것이었는데 어떤 날엔 실체를 갖고 오기도 한다. 한때 미웠어도 절대로 털어낼 수 없는 피 섞인 누군가의 투병소식을 들으면 그제야 알게된다. 그저 측만증인줄 알았던 척추뼈는 59도나 휘어있어 대수술이 아니면 재건이 힘들다. 그 휘어진 척추뼈는 심장을 압박하고 이내 콩팥까지 영향을 준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숨나갈듯 기침을 해대고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날에도 마스크를 쓰지않으면 호흡이 어렵다. 손가락 아귀가 자꾸만 지맘대로 접히고 발가락에 강직이 일어난다. 온몸이 성한곳이 없다. 하나씩 고장나기 시작했을때도 그저 알콜중독인 그가 미웠을 뿐이다. 이제 오랜시간만에 만나 쳐다보는것만으로도 눈물이 날것같은 그를 보며 깨달았다. 나는 그가 아파도 괜찮을 정도로 미워하지 않았음을. 그가 아픈 게 나의 마음 때문은 아닐까 자책한다. 이심전심이라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그에게 좋은 마음을 주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내내 스스로 따져 묻는다. 그의 아픔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하나둘 머릿속으로 소환해본다. 결국 또 가족이다. 친할친자를 쓴 친정이라는 곳. 저마다 살아가고 있지만 셋다 비정상이라 누가비정상인지 가름할 수 없고 셋다 많이 아파 누가 더 아픈지 따지는게 의미없는 우리는 셋중에 그나마 허우대가 멀쩡하고 가장 오래 돈벌이를 했던 도연을 보호자로 지정했다. 그리 산지 십오년즈음 되어간다.


photo by chatGPT


도연은 친언니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그저 마음을 다한 것으로는 소용이 없는 걸까?'라는 질문 속에 도연은 그에게 마음조차 다하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여전히 이름은 모른다.

대부분의 삶에서 간헐적으로 힘도 의지도 기력도 없던 날이 더 많던 도연은 어렴풋이 생각해 냈다. 애절하게 절절하게 그렇게 기도해 보자고. 두 손 모아 신을 향해 올리는 기도여도 좋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단지 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라는 것에서 이 마음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꾸린 가정에 더 다정하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만 호인이고 싶은 건 아닌지 되묻는다. 그 답도 도연은 아직 모른다. 연에게 내 가정과 친정은 융합할 수 없는 무언가지만 나는 다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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