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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지 않은 마음

아닐 '미', 편안할 '안'

by 여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도연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늘 그렇게 누군가에게 죄송하고 송구하고 미안하기에 입에서 멀어질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에게 도연은 미안하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일지언정 도연의 자성하는 마음과 그 깊이에 대해 진심을 느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도연의 미안함은 가벼운 자존감만 드러나게 할 뿐 착해보이지도 선량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 앞에 붙이는 '아~', '그...'와 같은 추임새 같았다.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하다 했고 고마워해야 할 일에 미안해했다. 정작 자신의 마음에게는 미안해하지 않았다. 늘 혹독하게 몰아세웠다. 미안함의 화자와 청자와 당사자는 역할이 다르다. 도연은 구분할 줄 몰랐다. 분별할 줄 모르는 미안함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도연은 어쩌면 그 알량한 미안한 마음으로 모든 걸 퉁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불편한 관계에서도 미안하다 말하면 모든 게 다 풀려있기를, 망쳐버린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면 모든 게 다 책임져지기를, 그저 이 자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 만병통치가 되길 바랐다.


미안함이 미안함을 갉아먹었다.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깊이 역시 없었다. 매일이 미안한 도연에게 '네 말은 진심 같지가 않아. 그래서 진실성이 없어'라고 하는 건 바람에 날리는 베트남 쌀보다 가벼운 얄팍한 도연의 강단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도연이 표하는 모습 이면엔 미안하다고 말했으니 날 헤치지 말라는 부탁이자 경고일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깊은 울림보다는 늘 날 서있고 위태로워 보이는 미안함은 차라리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 버린다. 떤 사람도 위태로워 보이는 이에게 한 두 번의 손은 내 밀수 있지만 영영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힘들다. 그래서 도연은 애써 감추려 한다.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다 같이 웃을 때 웃고 슬플 때 슬퍼하는 딱 그 정도의 공감력이라도 갖추길 바라면서. 그조차도 도연에겐 숙제였다. 연습하듯 참으로 당연한 것 들부터 하나씩 맞추어가야 했다.




도연은 늘 한끗 차이로 달랐다. 마음이든 행동이든 생각이 되었든지 간에. 이를테면 평생에 걸쳐 돈을 통해 효심을 증명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합리할지 모른다. 우러나는 존경심과 책임감으로 시작했다 한들 현실 앞에서 한 번쯤은 갈등한다. 국민학교 시절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버이은혜를 부르며, 낳아주셨기에 또 이만큼 길러주셨기에로 시작하는 감사함과 채무감 사이의 그 무언가는 유효기간이 20년을 채 넘기기 힘들다. 하지만 도연은 평생 할 수 있을거라고 단언했고 확신했다.


보기좋게 그 예언은 20년이 안되어 뭉그러다. 내가 쓸 단돈 10만 원이 없는 시절엔 매월 꼬박꼬박 원리금 상환하듯 송금해야 하는 20만 원의 용돈도 마음의 큰 짐일 테다. 언감생심 모친의 생활비 지원이라는 거창한 말은 붙이지도 못하겠다. 도연에게 그 돈의 액수는 필수 생활비와 같았지만 누군가에게는 푼돈 내지 용돈일지 모른다. 도연은 그렇게 치부되는 게 더 싫었다. 더 비참했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했던 선의가 의무가 되었고 어느새 채무가 되어버렸다. 도연은 그런 자신도 싫고 모친도 싫었다. 돈이 없는 내가 싫었고 돈이 없는 모친이 싫었을지 모른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갉고 갉히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이.


단 돈 십오만 원이 도연을 폭발하게 했다. 늘 입금되는 일자에서 삼일만 경과해도 빚독촉 트라우마가 살아날만큼 상냥한듯 거친 메세지가 도착한다. 갖 인사말을 쓰지만 안갚으면 압류하겠다는 이부와 뭐가 다른데.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른데..'

뒷말은 도연이 이어붙일수있다.

'왜 아직 송금안했어?'


래퍼 아웃사이더가 발음을 뭉게며 1초에 22음절을 뱉어내듯

'사계' 여름 악장 도입부 마냥 쉴틈없이

초등시절 한메타자 키보드를 미친듯이 두들겨대는 속도로


약 1천바이트 정도 메세지를 쏟아냈다. 메신저의 확인 버튼은 멈출줄 몰랐고 손가락은 미친듯이 뒹굴었다. 곧이어 도연의 모친에게 메세지가도착했다.


"미안해"


아마 65년 인생에 처음뱉어보는 미안하다는 말일지 모른다. 부친이 살아생전에도 둘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이 오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적어도 모친에게서는 더욱 그러했다. 또렷이 기억한다 그 날들을. 그런 그녀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은 생경했다.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만큼.


"네 말이 무슨말인지 알겠어."


나도 모르겠는데 자기가 내 마음을 뭘안다고.. 라고 도연은 생각한다. 잠시 욱했던 마음과 마구 치솟던 혈압이 조금씩 내려가는것이 뒷덜미를 통해 느껴진다. 터덜터덜 일을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신호등을 대기하며 도연은 문득 떠올렸다.


'미안:

아닐 미, 편안할 안... 편안하지 않다. 편안하지 않은마음.'


photo by chatGPT


미안하다는 말을 허구언날 쏟는 도연에게도, 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일이 손가락에 꼽힐만큼 적었던 도연이 모친에게도 사실은 언제나 미안함은 함께 했을 것이다. 진정 그러했을 것이다.


모녀 사이에 돈이 결부되어 있던 날에도 상관이 없던 날에도 마음이 편안한 날은 많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 그랬던 것인지 서로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모두 헤아릴 수 없어도 그 둘에게 언제나 미안함이 떠나지 않았던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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