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같은 길을 걷다보면

by 여래

도연은 스물여섯 살 되던 해 손가락에 자신의 이름과 동일한 법명을 새겼다. 평생 가져갈 것이라 다짐하며.


통화하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마음의 문이 닫혀있던 그 시절, 메신저로 두어 번 주고받은 메시지가 다인채로 약속된 타투이스트와의 술 예약. 타투 업계가 온전히 양지로 오기 전었던 그 시절 도연은 서울 토박이였음에도 태어나 음 홍대입구에 가게 되었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6번 출구 찾았다. 구 계단을 천천히 올라 주변을 살피곤 이윽고 화려한 건물들을 비집고 들어간 좁은 골목사이 허름한 건물 보였다. 페인트 칠도 벗겨지고 있는 건물의 6층, 엘리베이터는 커녕 간판도 없다. 불빛도 아주 희미하다. 드라마에서나 볼 같은 3부 사채 사무실 같기도 하다. 문을 열 들어가니 '지-잉' 하는 얇은 기계음이 일정 간격으로 들린다. 두꺼운 자리 모양의 정 뿔테 안경이 마냥 촌스럽지는 않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다. 에게 뚜벅뚜벅 걸어간 도연은 아무 말도 지 않은 채 포스트 잇에 적은 한문 두 자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이거 새기시게요? 아.. 이건 한문 획이 많아서 잘 안 될 것 같은데.. 잉크가 번질 수도 있고 손가락이 얇아서 획끼리 붙을 거 같고...."

"어.. 그러면 끝에 뻗침, 삐침 없이 정교하지 않아도 되니깐 그냥 똑같이 그어만 주세요. 저한테 중요한 거라서요"


굳이 그 이름이 손락에 얹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꼭 해내야 할 과업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곳을 꼽으라면 병원, 가장 싫어하는 냄새는 병원 알코올냄새,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맞는 것 찌르는 것 아픈 것이라 단언해 왔다, 도연에게는 그것들을 무릅쓰고 해야 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압박감마저 생겨났다. '나같이 겁 많은 사람이 타투할 때의 두려움, 아픔마저 이겨냈는데 무엇을 하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서 잘 견뎌내야지.' 무언가를 몸에 새긴다는 건 아주 굳건한 의지와 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 해 초 도연은 첫 직장을 정리하고(당하고) 부족한 호주머니 상황을 조금이나마 메워줄 소중한 곳이 필요했다. 돈도 잃었지만 몸도 마음도 다 잃었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머리와 마음 속에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채 그저 걷는 재주를 가진 송장이었다. 그 와중에 집에 있는 엄마가 떠올랐다. 예순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었지만 당신만의 이유로 재정활동은 할 수 없는, 그러니까 도연에겐 부양의 대상이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엄마라는 게 나를 살려주려는 수호신 었을지 세상을 단절할 기회조차 내 멋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꾼인지 그땐 몰랐다. 그냥 오늘 하루 배고프고 속 곯고 있는 자신을 위해 단 얼마를 벌더라도 머리 쓰는 일이 아니면서도 사람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야 했다. 입을 여는 순간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누군인지 알아차릴 만큼의 단순한 신체 기능조차 도연에겐 능력의 영역이었다. 언감생심 힐링이니 마음치유니 하는 것들은 그저 팔자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저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자신에 대한 수치심도 미움도 두려움도 떠올리지 않게 해줄 곳. 딱 죽을 만큼 괴로웠던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절을 만난 건 도연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도록 하늘이 도와준 것 같았다.


이전 삶이 술이나 퍼마시며 시커먼 크레파스로 뒤덮여 햇살을 닮은 밝은 색은 그어볼 틈조차 없던 마음이었다. 그런 자가 살기 위해 간 곳이 절이라니. 그래도 목숨은 건지겠구나 하는 도감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나올 때 마음의 무게를 떠올려본다. 당장 한 시간 뒤에 앞날도 알 수 없고 인생에서 달라진 건 크게 없지만 숨이 쉬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한 삶이었다. 숨과 심장박동 간격이 제 속도에 진입한 것 만으로도 무언가가 대단히 변화된 것 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현실은 암흑이지만 잠에서 깨어나 어디론가 출근해 돈은 벌고 있다는 것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비하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남들 일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부터 일하고, 남들 퇴근하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퇴근했다. 개념도 명확치 않았던 '평균'의 무리에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일하다가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흔들릴 때면 대적광전을 찾았다. 그저 엎드려 절하고, 끊임없이 정리하고 자신말고 그곳에 있는 누군가들을 위해 말하고 행동했다. 그렇게 지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좌복을 켜켜이 쌓아 놓는 것, 법문을 마친 스님의 찻 잔을 내리는 일, 주지스님을 뵈러온 손님이 다녀가신 다각실의 찻 물, 찻 잎을 버리는 일조차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두 계절이 지났다. 음력 8월 15일 백중이 다가오며 많은 신도들이 조상영가천도를 위해 기도신청을 해왔다. 기도 신청한 가정의 영가들을 모시는 위패를 인쇄하며 퇴근을 준비한다. 내일은 영가를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한 의식 중 하나인 지옷을 접는 날이다. 한 2천개는 접어야 하니, 위패가 인쇄되는동안 화선지를 잘라놓는 중이다. 보살님들과 둘러앉아 종이작업을 하는와중에 주지스님이 들어오셨다.


"다들 수고들 하네요. 고마워요. 근데 우리 아기보살은 법명이 있어? 젊은 보살인데 잘 적응하고 있네.."

절 안에서는 신도들, 종무원들의 본명에는 관심이 없다. 주로 보살, 처사, 거사, 스님 등의 호칭이 있다. 예를 들어 회계업무를 본다면 재무보살, 회계보살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하지만 도연은 그 절에서 가장 어린 종무원이었기에 특별히 아기보살로 불리었다. 약간 애칭일지도 몰랐다.


"아, 아니요 없습니다. 스님"


사실은 도연은 열세 살 때 받은 법명이 있다. 지혜의 품성을 가지라 하여 반야성이라는 법명을 받았었다. 다만, 이날 이때까지 자신의 삶은 지혜로웠던 적이 없으며 품성이 지혜롭다고 생각한 적은 하루도 없었다. 도려낼 수 있다면 깨끗이 도려내고픈 세월이었기에 굳이 스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때에도 도연이 가장 무서워하는 뜨겁고 따끔하고 아픈 것을 이겨내면서 받은 법명이었다, 연비의식이라 해서 우리가 아는 향에 불을 붙어 불길은 죽이고 불씨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팔에 2초 정도 대고 떼어낸다. 참회진언을 외우며 나의 죄를 참회한다는 의식과 함께 한다. 열세 살에도 그러 두려움을 이겨내고 받은 법명이지만 과감히 버렸다. 좀 포장을 해보자면 그렇게 잘 마무리해서 보내주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그럼 내가 보살 법명하나 지어줄게. 괜찮으면 생년월일정도만 이야기해줘."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스님은 A4용지를 접어 편지봉투에 넣어 도연에게 내밀었다.

"나는 아기보살이 이렇게 살길 바라."





도연(길 '도' 인연' 연')

인생의 길을 걷다 무수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같은 길 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인연.
그 인연들을 소중히하며 계속해서 걸어 나아가길
.
.
.








keyword
이전 18화자정(自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