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결국 몸과 마음의 예산을 바닥내고 맙니다. 저는 이 챕터에서 그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우리의 신체 예산을 다시 충전시켜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휴식은 단순히 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대해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의식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앞서 다룰 체력 관리나 운동과는 또 다른 차원의 휴식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들이 과연 스트레스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제대로 회복시키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손에 늘 들려 있는 작은 네모난 기계, 스마트폰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하여: 소진되는 주의력
현대인의 삶에서 스마트폰은 이제 피부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는 시간보다 쥐고 있는 시간이 더 길고,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스마트폰과 함께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무료함을 달래주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친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충격적이게도, 스마트폰은 스트레스 해소에 적절한 수단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스트레스를 늘릴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하는 수많은 콘텐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을 끊임없이 스크롤하고, 알림에 반응하며,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자극을 받고 피로해집니다.
실제로 우리는 스마트폰을 상상 이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하루에 약 2,617번 스마트폰을 터치한다고 합니다. 이는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거의 30초에 한 번꼴로 스마트폰을 만진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상위 10%의 헤비 유저들은 하루에 5,427번을 터치한다고 하니, 그 사용량은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잦은 상호작용은 우리의 주의력을 지속적으로 소진시키고, 뇌를 끊임없이 ‘경계’ 상태에 두게 만듭니다.
이처럼 몸이 피곤해지면 우리는 세상 문제나 주변 사람들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집니다. 심지어 길게 이어지는 드라마나 영화조차 평일에 집중해서 보기 힘들어지고, 그저 ‘짤방’(짧은 시간 흥미를 끄는 동영상)만을 찾게 되죠. 제현주 씨는 저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이 지점을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퇴근하고 나면 자느라 바쁜데, 어떻게 관계에 공을 들이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몸이 피곤한 만큼 서로에게 날카로워져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세상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지만, 신경을 쓴다 해도 거칠게 분노로 치닫기 십상이다. 쏟아지는 정보를 꼼꼼히 가려내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려면 무엇보다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이 공감 가는 표현처럼, 우리가 스마트폰을 쥐고 정보를 훑는 시간은 사실 ‘여유’를 갉아먹는 시간입니다. 수많은 연구가 이러한 스마트폰 과사용이 뇌와 정신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합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단순히 근처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지 능력과 주의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에게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게 한 후,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놓아둔 그룹, 주머니에 넣어둔 그룹, 다른 방에 둔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한 결과, 스마트폰이 시야에 있거나 심지어 주머니에 있을 때도 뇌의 자원이 스마트폰을 억제하는 데 사용되어, 인지 과제 수행 능력이 유의미하게 저하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을 방해하며 주의력을 끊임없이 분산시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스마트폰 과사용은 수면의 질을 저하시키고 불안감과 우울감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여 숙면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효율성의 역설: 농업혁명부터 이메일까지
우리가 이토록 여유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약속했던 ‘여가’가 실제로는 더 큰 구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이 사실은 ‘덫’이었다고 서술합니다. 인류는 더 쉬운 삶을 추구하며 농경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힘들게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하라리는 이 비극이 현대의 시간 절약 기계들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이메일, 휴대전화….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종이 우편물 시대에는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하지만 오늘날 나는 매일 열 통이 넘는 메일을 받고, 상대방은 모두 즉각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심리학자 록산 코헨 실버(Roxane Cohen Silver) 박사 역시 현대 사회를 ‘집단 트라우마의 연속’이라고 묘사하며, 정보 과잉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고 경고합니다. 그녀는 “정보에 밝은 미디어 소비자는 나쁜 뉴스를 소비하면 항상 심리적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미디어 노출이 증가하면서 고통, 불안, 과잉 각성, 급성 스트레스 반응도 증가합니다. “사람들은 불쾌한 콘텐츠를 많이 볼수록 더 큰 고통을 겪게 되고,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콘텐츠에 더 끌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돌고 도는 사이클이죠.”
이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콘텐츠는 우리의 정신을 더 지치게 만들고, 스트레스의 악순환에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사랑하는 가족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활동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집중적인 주의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미 스마트폰으로 주의력을 소진해버린 우리는 정작 회복을 위한 중요한 활동에 필요한 주의력을 가져갈 수가 없게 됩니다. 마치 텅 빈 통장처럼,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사용할 잔고가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인 셈입니다.
디지털 경계를 설정하기: 두뇌 소모를 줄이는 지혜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다양한 이점과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소중한 주의력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뇌를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두뇌 소모’를 줄이기 위한 현명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한 연구에서는 619명의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우리가 스마트폰에 얼마나 자주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스트레스 수준과 행복감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한 잦은 주의는 우리의 뇌가 지속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과 같아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마치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는 컴퓨터처럼, 뇌는 과부하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전두엽입니다. 이성적인 판단과 문제 해결,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지치면, 우리는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즉, 스마트폰은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두뇌 소모를 줄이고 우리의 주의력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경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특정 시간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멀리 두거나, 식사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규칙을 정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우리의 뇌에 ‘휴식의 시간’을 선물하고, 소중한 주의력을 보존하여 진정한 회복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치 통장에 여유 자금을 남겨두듯이, 우리의 뇌에도 ‘주의력 잔고’를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지 스마트폰을 덜 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을 더 의식적이고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행복의 두 가지 종류: 당신의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는 행복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고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나 봅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을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바로 ‘헤도닉 행복(Hedonic Happiness)’과 ‘유다이모닉 행복(Eudaimonic Happiness)’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두 가지 행복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두 가지 장면을 통해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장면 하나. 늦은 저녁, 퇴근 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밀려오는 피로감과 오늘 하루 있었던 짜증나는 일들을 잊고 싶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의 화려한 일상을 구경하고, 드라마의 다음 회를 연달아 시청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기도 하고, 잠시나마 현실의 걱정을 잊기도 합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을 가리키고, 결국 잠자리에 듭니다. 겉으로는 즐거웠던 시간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 몸은 더욱 무겁고 머리는 개운치 않습니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옵니다. 이처럼 즉각적인 즐거움과 쾌락에 초점을 맞춘 행복이 바로 헤도닉 행복입니다. 달콤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안타깝게도 그 특징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졌다가도 금세 사라지고, 오히려 더 큰 허무함이나 중독적인 속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쾌락적 행복의 순간을 보낸 이후에는, 때때로 스트레스나 공허감이 증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장면 둘. 바쁜 일과를 마치고 저녁,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약속했던 대로 운동화를 신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합니다. 처음 몇 걸음은 마치 쇠사슬을 끌고 가는 듯 힘들고, ‘그냥 쉴까?’ 하는 유혹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새 몸은 가벼워지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오늘 하루의 걱정거리들도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개운하고 뿌듯함으로 가득합니다. 침대에 누우니 평소보다 깊은 잠이 스르륵 밀려옵니다. 이처럼 즉각적인 즐거움보다는 노력과 수고를 통해 얻는 삶의 목적, 성장, 의미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 바로 유다이모닉 행복입니다. 유다이모닉 행복은 행동과 행복의 감정 사이에 시간차가 있습니다. 당장 편안하고 즐거운 것보다는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기기에, 그 행동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도하기에 다소 귀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행동에 옮기고 나면, 스트레스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회복시켜주고, 깊이 있고 지속 가능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벅찬 성취감과 세상이 발아래 펼쳐지는 광경처럼 말이죠.
2분의 깨달음: 멈춤의 기술
이러한 유다이모닉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전속력’이 아니라 ‘적절한 멈춤’입니다. <타이탄의 도구들>에 등장하는 데릭 시버스(Derek Sivers)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는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매일 40km를 자전거로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페달을 밟아 완주하면 늘 43분이 걸렸죠.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너무 빨리 달리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바다 쪽의 돌고래도 보고, 머리 위를 나는 펠리컨도 보았죠. 정말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숨을 몰아쉬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돌아와 시간을 확인하니 45분이었습니다. 고작 2분 차이였던 거죠. 제 삶을 시뻘겋게 달구었던 고통과 스트레스는 겨우 2분의 시간을 줄여주었을 뿐입니다.”
이 2분의 차이에서 데릭 시버스는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을 짜내고 분초를 다투는 노력이 아니라,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으악’ 하는 소리를 알아차리고 멈추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틈틈이 질문을 던지며 이상 신호를 감지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좋은 신호를 얻기 위해 2분 정도 기다려줄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성공이자 휴식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헤도닉 행복으로서의 스마트폰을 아예 없애고 수도승처럼 살거나 무조건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콘텐츠는 잠깐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수단이 되거나, 때로는 유용한 정보와 흥미를 제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20%만 사용을 줄여보면 어떨까요? 이 작은 변화가 가져올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책 <회복탄력성의 뇌과학>에 나오는 셀마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셀마는 자신이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불필요한 스크롤링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축구에 대한 글을 읽거나 경기 분석을 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그녀는 미디어 다이어트와 같은 방법을 통해 점차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였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피로감이 줄고 집중력이 향상되었으며, 심지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축구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력까지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뇌와 몸을 동기화하여 해로운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현명한 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휴식을 위한 루틴: 나만의 리듬을 찾아서
이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시간과 주의력 면에서 생긴 여유를 유다이모닉 휴식에 투자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휴식을 ‘해야 할 일’처럼 느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휴식 루틴을 만드는 것입니다. 루틴은 꼭 같은 시간에 뭘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유연한 루틴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합니다.
누구나 알 법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해서, 마을 사람들은 칸트가 산책하는 시간만 봐도 몇 시인지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고정된 루틴을 지키기 녹록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프랑스의 철학가 알랭 드 보통은 “어른에게도 삶의 방식에 대해 학습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통찰 속에서 ‘인생학교’를 창안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한 예능 <우리들의 인생학교>에서는 출연자들에게 갑작스러운 3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집니다. 다들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안정환 씨는 과거를 추억하러 모교를 찾았고, 전혜빈 씨는 잘 모르는 동네를 발길 닿는 대로 산책했습니다. 저는 이 전혜빈 씨의 방식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틈새 시간’을 활용한 저만의 유연한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외부에 미팅이 있는 경우, 가능하면 30분 정도 먼저 가서 그 동네를 돌아봅니다. 낯선 골목길을 걷거나,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눈에 새깁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신선함 속에서 잠시 생각의 끈을 놓는 것이죠.
때로는 가볍게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읽거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정리하기도 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오롯이 저 자신에게 집중하고,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유다이모닉 행복, 즉 깊이 있고 지속 가능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저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회복하고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소중한 휴식인 셈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휴식을 위한 루틴’을 찾아보세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데릭 시버스가 발견한 그 ‘2분’의 여유를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이 제안하듯 삶을 배우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산책로를 찾아 나서는 것. 그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