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연솔 태어나다
어떤 날은 공기마저 다르게 흐릅니다. 그날이 그랬죠. 유난히 볕이 좋았고, 광화문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묘하게 들뜨게 만드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고객사 미팅도 없어 오랜만에 본사 사무실에 머물렀습니다. 직장인에게 가끔 주어지는 선물 같은 여유같았죠. 점심으로 가볍게 샐러드 한 그릇을 비우고, 늘 그렇듯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경복궁 돌담을 따라 삼청동으로 향하는 길. 익숙한 풍경이 오늘따라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머셋 팰리스를 지나 경복궁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어요. 주머니 속 전화기가 진동했습니다. 액정에 뜬 아내의 이름을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거울 너머의 진실
매일 아침, 안방 욕실에서의 루틴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잠이 덜 깬 채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면도기를 듭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네요. 그날 아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생각은 멈춰 있었고, 시선은 습관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의식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뇌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의 뇌는 참으로 기묘한 저장소입니다. 내가 보고 있다고 믿는 세상 밖의 것들까지도 부지런히 주워 담습니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무의식적 처리(unconscious processing)라 부르지요. 예일 대학교의 존 바그(John Bargh) 교수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정보들에 의해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 밝혀냈습니다. 특히 시선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시(peripheral vision)로 들어온 정보들은 의식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뇌 깊숙한 곳, 편도체 같은 감정의 영역에 직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날 아침, 뿌옇게 김 서린 욕실 어딘가에 무심코 놓여 있던 플라스틱 막대기 하나를 내 눈은 보았지만 내 머리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뇌의 어느 구석방에 던져두었던 그 짧은 영상이, 아내의 전화를 받는 순간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튀어나왔습니다.
모든 배경이 지워진 순간
전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할 말이 있는데.” 그 한 마디에, 아침 욕실의 잔상이 퍼즐처럼 맞춰졌습니다. 홀린 듯 물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아침에... 임테기(임신 테스트기) 본 것 같은데, 맞지?”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내 작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응.”
광화문 네거리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횡단보도의 파란 불이 깜빡거리는 것도 잊은 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정말이야? 와...” 터져 나온 것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순식간에 밀려드는 무거운 책임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물음 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숨을 고르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그럼.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우린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 통화를 어떻게 끝냈는지, 남은 산책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카메라의 얕은 심도(depth of field)처럼 작동했던 기억입니다. 오직 전화기 너머의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사이에 놓인 새로운 생명의 존재만이 선명한 초점으로 남고, 나머지 세상은 흐릿한 배경으로 물러나 버렸습니다.
두려움과 간절함 사이에서
언젠가 아내가 지나가듯 “셋째 가지면 어떨까?” 하고 물었을 때, 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각기 다른 돌봄이 필요한 연우와 연서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지금도 빠듯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잘게 쪼개야 한다는 뜻이었고, 마흔을 넘긴 우리 부부의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걱정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반대로 간절함이 자라났습니다. 연우에게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는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평범한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그 충만한 기쁨을 다시 한번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이 두려움을 압도했습니다. 나이도 있고 해서 쉽게 찾아오진 않겠지, 하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운명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문을 두드렸습니다.
다시, 유월의 병실에서
이듬해 6월, 출산이 임박해올수록 문득문득 겁이 났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 애써도, 둘째 연서 때 겪었던 아찔한 순간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죠. 의료진이 100% 안심하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불안을 키울까 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맞잡은 손의 떨림까지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부모들에게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고 하죠. 이를 심리학에서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의 과정에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의 연구에 따르면, 이전 출산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산모들은 다음 출산 시 더 큰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더 깊은 감사와 의미를 발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이 새로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기에 생겨난 것이었죠.
마침내 연솔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름은 첫째 연우가 가족 투표를 거쳐 심사숙고해 골라준 것이었습니다. 39주를 꽉 채워 나왔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생각보다 작고 말랐네요. 간호사 선생님이 포대에 싸인 작은 생명을 내게 안겨주며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를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 작고 온전한 손발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안도감이었고, 감사함이었으며, 압도적인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회복실로 올라가기 전, 붉어진 눈시울을 거칠게 닦아냈습니다. 이제 아내에게 가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정말, 정말 고생 많았다고.
정신없지만, 더없이 좋은
연솔이는 이제 세 돌 반이 지났습니다. 생김새는 연우 판박이인데, 성격은 정반대입니다. 차분하고 수줍음 많은 연우와 달리, 이 녀석은 고집도 세고 에너지도 넘칩니다. 우리 집은 이제 연우의 책들과 연서의 의료용품들, 거기에 연솔이의 장난감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포화 상태입니다. 매일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다이내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날들이 이어집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기도 합니다. 체력은 바닥을 치고, 목소리는 자꾸만 높아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만 부풀어 오릅니다. 세 아이가 만들어내는 소란스러운 화음 속에서, 저와 아내는 전보다 더 자주 웃고 있습니다. 정신없지만, 무척이나 좋은 나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