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
***
바다를 떠도는 내면에 그는 답답함에 허우적댄다. 비탄으로 뒤덮인 바다다. 발버둥 칠수록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데 아무도 빠져나오는 길을 모른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바다에 목을 메웠다. 끝없이 바다를 떠돌았고, 때 없이 찾아오는 격랑에 잠기고 떠오르길 반복했다.
그 바다는 현실이다. 바다에 빠지면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이란 바다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다. 그런데도 막히는 숨을 이고 지고 계속해서 가라앉으며 절대 탈출할 수 없는 바다가 현실인 것이다. 더 이상 힘들 수도 없고 우울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지경에 이르러도 결국 점점 더 슬퍼질 뿐이다. 그 바다에 빠지면 차라리 익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구명조끼를 던져주기를 기다리지만 어느새 보면 너무 깊이 가라앉아버려서 구명조끼를 받을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수면이 그를 거의 덮쳐올 때쯤이다, 그는 무극의 수평선을 보며 바다가 영원함을 알아차렸다.
바다 깊은 곳 그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물음에 당당히 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추악하다고 느끼기까지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긴 시간 꿈꿔온 일을 전혀 맘 편히 할 수 없고, 끊임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들 맘속에 품고 있는 꿈이 있지만 현실이 가혹해서 실현할 수 없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필요한 건 꿈인 것 같아.
지금 살얼음판 위에서 가진 위태로운 꿈이 아닌 어릴 적 작가에 꿈이란 이름을 붙였던 순간에 가졌던 생각 말이다.
남자는 현실의 바다에 빠진 순간부터 예전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 바다는 해저의 끝을 알 수가 없어서 가라앉다 보면 바다의 은은한 파동마저 느끼기 힘드니까 말이다.
밤새워 별과 바람과 달빛의 기운을 받아 새벽이면 화들짝 피었다가 아침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시들어 가는 꽃이 있다. 어둠의 시간을 겪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 해가 질 무렵부터 온밤을 지새워 꽃을 피울 준비를 한 후 여명의 아침이 아직도 먼 곳에 있는 새벽에 피어나는 꽃, 싱그러운 아침햇살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꽃.
바다와는 먼 곳에서, 푸르른 풀잎 사이에 자리 잡은 나팔꽃이다. 우리와도 닮았다, 꼭 고난을 지나야 만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새벽이슬과 함께 보라색으로 나팔꽃이 물들면 그 꽃 한 송이는 고난에 지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어둠을 지내온 누군가에게 고생했다는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가는 남자에게 필요한 건 초록색 풀잎을 마주하는 것, 푸른 하늘을 하얗게 꾸며주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때론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을 뿐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저 망상에 빠져 살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망상이란 단어를 꿈으로 바꾸고 도전이라 읽어본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바보 같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그 꿈에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무의미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남자의 마음속을 살펴본 일이 불필요한 일이 아니라서, 남자가 겪고 있는 고난을 내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에게 어릴 적 첫 소설을 썼을 때부터 쭉 품고 있던 글을 되새겨주었다. 그가 생각했던 작가, 자신의 글에 품고 있던 바람, 작가라는 꿈의 의미까지 모두.
그는 자신이 썼던 글이 누군가에게 휴식처가 되길 바랐다. 설령 그게 휴식처가 아닌 현실의 도피처가 되더라도 누군가가 잠시 쉬어가길,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라도 위로라도 얻고 가길 바랐던 것이다. 혹여나 깊은 바다가 메마르게 되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고개라도 내밀어 바라보는 하늘마저도 예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남자는 글이 허무하고 공허한 날에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랐던 거야.
***
남자는 알바 후 집으로 향했다. 눈이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는 깨끗한 길눈을 밟으며 가게 되었다. 낮에 한참 내렸던 눈은 소낙눈이었던 듯 흐린 하늘마저 완전히 흘러가 버렸다.
작은 자취방에 도착한 남자는 책상에 앉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자는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이럴 시간에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나을까’ 싶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굳은 결의로 시작한 일인 만큼 끝까지 하고 싶다가도 그런 게 미련할 뿐인 것 같아 남자는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글을 쓰기에는 여념이 머리를 가득 메워 집중을 할 수 없었기에 남자는 잠시 바람을 쐬러 자취방을 나섰다. 자취방 앞 골목길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가로등 하나와 어둠으로 뒤덮인 주택가 골목길이었다. 곳곳에 실외기가 보이고 담담한 주택 대문밖에 없지만 가장 안정적인 곳이라 느끼곤 했다.
어느 순간 찬 바람 사이 눈꽃의 향기가 남자를 둘러쌌다. 그에게 잊혀진 글과 작가의 의미를 되새겨주기 위한 겨울의 향기는 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온 남자인 만큼 좋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작가를 결심했던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휴식처가 되어주는 글’을 쓰고 싶다던 과거의 그가 현재의 그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이 되는 일을 권유하는 사회에서 그는 작가의 꿈을 이어 나가겠다며 여기까지 왔던 이유, 애초에 작가는 생계를 위한 일로 꿈꾸던 게 아니었다. 남자는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게 있었기에 작가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취방 앞을 방황하던 남자는 눈꽃의 향기를 통한 결심을 계기로 다시 자취방에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집필 중이던 장편소설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의 가장 오래된 파일에 들어갔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간 썼던 그의 첫 소설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빛을 발하지 못하고 갇혀있던 소설,
그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였다.
<나팔꽃>
그 소설의 제목이다. 남자가 되고 싶은 꽃, 어둠을 당당히 버텨서 결국 예쁘게 피울 수 있는 꽃. 마치 그가 써왔던 소설의 주인공과도 닮은 꽃.
남자가 내린 결정은, 가상 속에 동경의 대상인 수많은 주인공 대신 자신이 직접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이다. 충분히 자신의 삶을 살면서 쓰는 글이 훨씬 더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휴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압박도 딱딱한 고민도 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수단, 그게 어릴 적 남자가 여긴 글이란 쉼터였다.
남자는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소설에 배경과 주인공을 둔 세상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도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물론 세상에 주인공은 없지만,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이라는 끝나지 않은 소설 속 주인공이다. 우리는 충분히 주인공처럼 자유로울 수 있고, 끝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한 현재 겪고 있는 고난들이 지금 당장은 너무나 힘든 문제 같고 삶이 불행으로 가득 찬 것만 같지만, 인생의 끝에서 본다면 그 고난이 소설 속 한 챕터보다 작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캐릭터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직접 우리의 소설을 써 내려가며 늘 선한 존재가 될 필요도 없다. 때론 악역이 되어보고 때론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보기도 하면 된다.
남자는 글 대신 자신의 삶이라는 소설에 한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주인공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같은 답 없는 질문 따위는 뒤로하고 꿈을 펼쳐볼 자격이 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도전해볼 자격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자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