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눈꽃 06화

나팔꽃

기쁜 소식

by 서율

고여있던 새벽의 어둠이 걷힐 무렵에도 여전히 해가 떠오를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작된 일출을 흩뿌려진 구름이 희미하게 덮어버렸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흐릿한 하늘은 세상을 밝혀주지 않았다.
버스 첫차가 지나가고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해는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히 구름에 가려져 환하게 비춰주지 못하고 금세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이른 시간 사람들은 출근길에 발을 내디뎠다.
“오늘 동지라더라.”
버스정류장에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해가 늦게 떠올라 어둠이 긴 시간을 지배한다. 동시에 사람들도 늦게 비춰지는 날이다.
-어두우니까 침울해지는 느낌이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저기에 있는 사람들도 비슷할 거야.
이제 막 문을 연 가게들의 배경이 어두우니 괜히 암울하다.
애초에 흐린 날씨 덕에 낮에도 맑은 하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처럼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들어서는 시간, 그 사이 선물 가게로 들어가는 설하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선물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머리를 묶은 설하의 모습이 보였다. 어렴풋이 보이는 설하는 선물 가게에서 작은 인형 키링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제 그리 애달프게 울었던 소녀의 입가에 웃음기가 드리운 것을 보니 안심되었다. 밝은 모습을 보니 그녀는 정말 귀엽고 예쁘게 생긴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키링 몇 개와 간식을 손에 쥐고 돌아갔다. 자신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일지, 누군가에게 건네는 고마움의 인사일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한 새장에서 나와 벌써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내면에 피게 될 꽃은 너무나 추웠던 겨울 끝에 따스한 봄을 맞아 가장 아름답게 피울 거니까, 그녀만큼 맑고 포근하고 또, 예쁘게.

카페는 학생들로 가득 찼고 거리는 조금 더 한가했다. 날이 유독 흐리더니 하얀 눈 결정이 떨어졌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이 얼어가는 눈송이들 위로 쌓여 다시 포근한 거리를 그려냈다. 카페 앞, 선물 가게 입구 계단, 식당 지붕 위까지 모두 아리따운 하얀색으로 물들어 간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꽃이 길가마저 사뿐히 덮어주었다. 흩날리는 눈꽃의 꽃잎이 나의 옆자리에 위치해 나뭇가지의 빈 부분을 채워주었다.
-사람들이 본 우리도 비슷한 모습이었겠지?
직접 바라보는 눈은 생각보다 더 예쁘게 내린다.
-우리는 우리를 볼 수 없고 우리는 우리를 느낄 수 없지만, 누군가가 느낀 우리는 겨울을 알리는 멜로디였을 수도 있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받은 선물일 수도 있어. 허전한 겨울을 꾸미는 아름다운 장식이었거나 추억의 사진을 꺼내게 해 주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예뻤을 거야, 저 눈꽃만큼.
그치지 않는 눈길을 뚫고 몇몇 학생들은 집으로 향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카페가 빈틈을 타 일하고 있던 남자가 가게 어닝 아래로 나왔다. 그는 가만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옷이 젖어가도 크게 개의치 않은 듯했다. 그는 투박한 손으로 바닥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쥐어 뭉쳐 보았다가 이내 다시 내려놓고 옷에 물기를 대충 닦았다.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후 별일 하지 않고 다시 카페 안으로 돌아선 남자는 유리창 너머로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잘 보이진 않았다. 자연스레 내 관심에도 벗어났다.
-저 남자는 안 도와도 되는 거야?
좀 전에 내린 새하얀 눈송이가 나에게 물었다. 처음 세상을 마주한 눈송이였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누군가의 내면을 불필요하게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래? 난 궁금한데, 이렇게 추운 날 굳이 나와서 눈을 만져보는 게 이상하지 않아?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 모두가 눈을 피해 돌아간 시점에 따뜻한 카페 안을 두고 자처해서 밖에 나온다는 건 이상하긴 했다. 물론 눈을 만져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눈을 만지는 그의 표정이 기뻐 보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마치 남들과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만일 그의 겨울이 힘들고 고된 날이라면 나아가 그에게 기억을 건네야 하는 게 맞는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감정을 참으려 애써 웃어 보이고 복잡한 감정을 참으려 무슨 행동이라도 해보는 건 절대 들키길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들은 감정을 잘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들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숨긴 감정을 알아버린 내가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더 조심히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 내렸던 눈송이의 말에 꽂힌 건지, 단순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

해도 뜨지 않은 아침부터 남자는 책상에 앉았다. 곧바로 조금은 낡은 노트북을 켰다. 저장된 텍스트 파일이 바탕 화면에 늘어져 있었다.

[아들, 아침은 먹었어?]

해가 떠오르고 나서 아침 식사 시간 정도가 되니 그의 엄마에게서 연락을 왔다. 자취를 하는 아들을 걱정해서인지 남자의 엄마는 종종 이른 시간에 연락하곤 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던 남자는 엄마의 연락에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곧 먹으려고. 엄마는 밥 먹었지?]

이후 남자는 엄마에게 밥을 먹었다는 답변을 받고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남자가 집필 중인 글은 장편 소설 작품이었다. 보장되지 않은 도전에 지칠 대로 지친 남자에게 마지막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소설도 잘 안되면 그만두고 일자리라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가진 상태에서 집필을 시작한 소설이었다.
남자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작가 지망생에 불과하다고 여겨도 틀린 말은 아닐 만큼 인지도 없는 무명작가였지만 말이다. 처음엔 그저 교내 글쓰기대회에 종종 나가며 키우게 된 장래 희망이었다. 대회에 참가하길 좋아했던 남자는 처음 나가봤던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타며 작가라는 직업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마음으로 인터넷에 ‘작가 되는 법’,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해 봤다. 숫기가 없는 소년이었던 남자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단으로 글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적어 가며 혼자만의 취미로 단편소설을 완성해 갔다. 겨우 텍스트 몇 자로 행복 따위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에게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성적 챙기기도 바쁜 와중에도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수능 성적을 받아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물론 그의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글을 배워볼 수 있겠지, 주변에서 들은 극한의 반대에도 남자가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이유는 그뿐이었다.
분명히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저 의지만으로 무언가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1년에 한 번 이상은 출판 공모전에 소설을 제출해 봤다. “올해는 출판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늘 가득 담았던 기대와는 반대로 결과 발표날은 항상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로 흘러가 버렸다. 작가라는 꿈을 향해 내디딘 걸음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할만한 노력은 모두 해봤다 싶을 만큼 모든 걸 다 해봤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글을 쓰기 위해 해안가로 가보고,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하려고 장마철에 매일을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하루에 한 번 꼭 책을 읽으며 쓰는 요령도 익혀갔다. 동기들과 여행을 가면 풍경을 눈에 담아 시로 써 내려가기도 했다. 남자는 대학 졸업 후엔 하는 수 없이 알바로 생활비를 벌다가도 손님이 없을 때를 틈타 글을 쓰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와 함께 졸업한 대학 동기들의 대화 주제는 작가로서의 성과였다. 누군가는 공모전 당선작으로 신문 1면에 실리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되기도 했다. 모두 동기들의 좋은 소식들만 들려주는데 마음 놓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그에게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에 수많은 이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데 혼자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모든 힘을 쏟아부은 것만 같은 기분. 그러다 보니 친했던 동기들과 연락도 줄어들면서 사회와 고립되어 가는 느낌까지 받게 되기도 했다. 종종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그 생각이 남자를 옥죄어왔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초안을 수정에 수정을 거쳐 또다시 출판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를 반복한다. 열심히 달려도 포기할 때까지 역시나 제자리다. 그가 마치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글 같은 거 잘 쓰지도 전하려는 의미도 담지 못하는 작가 지망생일 뿐이었다”며 남자는 낙담하기에 이르렀을 때도 어떤 소식도 없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요즘 뭐 하고 사냐”라는 질문을 꼭 한 번씩 받는다.
“글 쓰고 있어요.”
대표작도 없고 인세도 거의 받지 못하는 자신을 작가라고 칭해도 되나라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내 말에 “아직도 그만 안 두고 하고 있냐”는 조부모님의 답변을 들을 때는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 싶기도 했다. 처음부터 혼자 고집했던 일인 만큼 과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생각은 남자를 조급하게만 만들 뿐이었다.
전업 작가, 글을 쓰는 것만으로 자신의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 그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남자는 생각했다. 어릴 적엔 꼭 전업 작가로 살기를 원했지만 결국 현실의 한계에 맞닿고 말아 버린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재능은 반비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 질문에 남자는 선호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고, 어쩌면 삶을 살아가기에 남자는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이제 자신이 소설이라는 상상에 의존한 글을 쓰며 망상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실은 지금의 삶의 시작은 남자가 써 내려간 소설 속 주인공에게 느낀 묘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남자가 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늘 고난과 역경을 딛고 그들만의 행복을 찾게 된다. 즉, 해피엔딩이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보면 주인공은 늘 옳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아간다. 주인공이 겪는 고난은 한 챕터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주인공은 없기에 남자도, 그리고 그 누구도 주인공처럼 완벽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데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순간이 너무나 힘들어한다.
낮이 되자 남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을 나섰다. 책을 쓰는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에 남자는 꾸준히 알바를 나섰다.
카페에 들어서 앞치마를 착용하고 나니 고등학생들이 몰려왔다. 전엔 항상 카페에서 공부했었는데 수능이 끝난 요즘은 자주 와서 수다를 떨곤 한다.
시간이 지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유독 흐리더니 눈이 펑펑 내렸다. 아침에 일기예보에서 눈이 온다는 예보를 본 것이 기억났다.
“우산 없는데.”
“그냥 나가서 놀다 가자.”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길 걱정하는 소리와 눈이 와서 기뻐하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나도 우산이 없네.”
남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벽이 거의 통유리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에 계속 눈이 갔다. 집에 돌아가길 걱정하던 학생들은 하나둘씩 돌아갔다. 문 앞에 쌓인 눈을 조금 만져보기도 하고 서둘러 뛰어가기도 했다. 어느새 남자만 가게에 남아있었다.
잠깐 나가볼까, 남자는 생각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순식간에 찬바람이 살갗이 에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 화면을 켜서 날씨를 보니 -6°C가 찍혀있었다. 남자는 추운 날씨에 몸을 조금 움츠리고 눈 내리는 날의 풍경을 응시했다. 차는 평소처럼 차도를 지나다니고, 유독 길거리에 사람은 적다. 학생들의 말소리도,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직장인들의 바쁘게 돌아다니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회에서 홀로 동떨어져 고립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그는 잠시 자세를 낮춰 맨손으로 눈을 뭉쳐보았다. 얼음을 만지는 듯 차가운 느낌 뒤로 무감각해짐을 느꼈다. 눈은 금세 녹아 물기가 되어갔고 남자는 뭉쳐놓은 눈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느끼기에 때로 눈은 가엾은 존재였다. 1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이 눈꽃이다. 하지만 결국 눈은 봄을 보지 못하고 녹아버린다. 차디찬 밤을 몇 번 맞이하고 나면 따스한 햇살이 비춰주는 순간에 너무나 따뜻해서. 더 이상 버틸 힘은 남지 않아서.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 추운 날들을 꾹꾹 참고 견뎌왔으면서 곧 있을 봄을 보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막상 맞이한 봄이 너무 어색해서 내쳐버리기도 한다. 그게 사람과 눈의 공통점이자 사람의 나약함이다.
어찌 됐든 남자가 하고 싶은 일은 작가다, 명확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꿈을 쫓으려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다. 지금 포기하기는 아쉽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고, 이다음에는 또 그다음에는 성과가 있을 것 같고. 그렇게 굴레에 빠져 완전히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게 아닐까.
차갑기를 넘어선 공기를 들이마시자 폐 속까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찬 공기는 그 속을 얼려버린 듯 아무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봐도 답답하기만 했다.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꺼내 드니 검은 화면에 남자의 얼굴이 연하게 비쳤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얼굴에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에 그렇게 신경을 쏟은 건지 자신이 잊혀졌다.
“대체 뭐 하고 사는 거야?”
남자는 자신에게 물었다. 묻는 사람도 남자고 답하는 사람도 물음 뒤에 숨어있는 남자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답을 듣지 못한 남자는 돌아서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도 남자는 몇 번이고 눈 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허전하던 풍경을 하얗게 채워주는 함박눈과 거리를 메워주는 숫눈이 유염해 저절로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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