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 평짜리 여행

여행의 묘미

by 제이로사 Feb 24. 2025

    “올해는 중앙아시아입니다. 보름 예정이에요. 7월이니까 가능하신 분들은 붙으세요!” 세계여행통 왕언니가 호출해 왔다. ‘인생뭐있어’ 카톡방이 시끄럽다. 8명이 한 마디씩 한다. 여름휴가로 더운 곳에?, 거기 아직 여행자들에겐 개척지 아닌가? 교통편은? 보름 동안 휴가 내기 힘든데,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에 가는 거?

    우리는 50~60대로 이루어진 아줌마들이다. 공무원 등 각자 직장생활을 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퇴직 스타트를 시작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주로 ‘인생 뭐 있어? 인생 뭐 있어!’를 외치며 우리끼리 잘 놀러 다니는 여행 동지들이다.              

우즈베키스탄 모스크우즈베키스탄 모스크

    그렇게 7월 중순, 8명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공항에 서 있었다. 인생뭐있어 멤버 두 명이 빠지고, 왕언니 친구 두 명이 함께 했다. 첫날은 타슈켄트를 밴 렌터카를 타고 투어 하고, 둘째 날은 4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이동했다. 중간 휴게소도 없었다. 고속버스에서 나누어 준 물을 마신 일행 두 명이 기어이 탈이 났다. 그들은 배를 부여잡고 간신히 사마르칸트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내달렸다. 우리나라 80년대 분위기의 고속터미널, 낯선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이방인들, 그 풍경 사이로 뜨거운 햇빛에 땀을 뻘뻘 흘리며 캐리어와 함께 우왕좌왕하는 한국 아줌마들. 내 일행들을 보는 순간 난 모자를 더 깊게 내려쓰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다.


    “이번 여행, 맞습니까?” “건강이 허락할 때,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런 여행도 해둬야 해. 고급 패키지는 다음번에!” 아직 여행의 야생성이 살아 있는 왕언니의 다독임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숙소까지 택시를 타려고 터미널에 서 있던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물으니, 얀덱스택시 어플 검색 택시비의 두 배가 넘었다. 아무래도 여행자용 바가지요금인 것 같았다. 얀덱스택시 세 대로 나누어 타고 숙소까지 이동했다.


    다음날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타지키스탄 판자켄트, 코니보돔 국경을 거쳐 다시 우즈베키스탄 코칸트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판자켄트에서 코니보돔 국경까지 웅장한 기암절벽과 돌산, 톈샨설산에서부터 녹아내려 철분이 섞여 흐르는 검붉은 계곡의 강물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낡은 택시가 산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에어컨은 꺼졌다. 웅장한 자연경관도 좋았으나, 더운 날씨와 불편한 교통편은 우리를 점차 지치게 했다.        

우즈베키스탄 코칸트 시장우즈베키스탄 코칸트 시장

    여행 4일째, 우즈베키스탄 코칸트에서 키르기스스탄 오시로 국경을 넘어가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날 오전 일찌감치 코칸트 시장 구경을 하고, 옥수수 등 간식거리를 사 왔다. 오전 9시 30분. 짐들을 고려해 얀덱스택시 세 대를 호출했다. 나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 탈 차량이 왔다. 잘 다려진 흰 와이셔츠를 입고, 짙은 눈썹에 신뢰감 가는 얼굴의 청년이 택시에서 내렸다. 그는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처럼 영어를 못했다. 소통이 걱정되었다. 앞으로 긴 5시간 동안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택시 안에서 우리는 그와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해야 했다. 다행히 택시는 에어컨이 나오고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택시에 타자마자 아침에 사 온 삶은 옥수수와 과일을 기사님께 드렸다. 그는 조금 놀라워하며 감동하는 눈빛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름을 물었다. 압둘 자봇. 번역기를 동원해 물어보니 서른두 살에 아들 삼 형제를 둔 가장이었다. 운전석 쪽으로 가족사진도 보였다. 자봇은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잘 웃었다. 차가 출발하고 30분 정도 가다가 자봇이 어느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잠시 후 그는 두 손에 음료수와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와서는 대뜸 우리에게 주었다. 깜짝 놀랐다. 자봇은 손님에게 대접받으면, 반드시 대접해야 한다고 공손히 답하였다. 그는 이슬람교도였다. 얼떨떨했지만 친구는 벌써 자봇이 준 음료수를 쪽쪽 마시고 있었다. “시원해서 더 맛있다. 이슬람교 좋은데?” ‘먹을 것 앞에 선 깃털 같은 믿음이여!’ 우리는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가 웃으니까, 자봇도 따라 웃었다. 차는 다시 출발했다. 우리 일행은 어느새 자봇 덕분에 낯선 도시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고 있었다.


    출발해서 1시간 정도 지나니 차량이 많아 조금 막혔다. 그 도로 한쪽에 낡은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10세 정도의 소녀가 작은 종이상자를 들고 넋 놓고 서 있었다. 차봇은 운전석 쪽 창문을 내리고 그 소녀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소녀가 다가오자, 운전석 옆의 잔돈 상자에서 돈을 한 줌 꺼내 소녀의 종이상자에 넣어주었다. 소녀는 인사를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뛰어갔다. 다른 택시 기사들도 그렇게 소녀에게 기부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그 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저렇게 해보자.” 나는 비록 잔돈 상자였지만, 얼마인지 세지도 않고 덥석 돈을 집어주는 자봇의 모습이 찐부자가 기부하는 법 같아서 여간 멋져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자봇에게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자봇과 함께 식당에 도착했다. 기사님과 식당에 가면 비용은 우리가 내지만 대부분 따로 앉아서 식사했다. 그런데 자봇은 수줍어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와 합석했다. 함께 사진도 찍고, 각자 몫으로 메뉴를 골라 자봇이 주문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식사 전에 따듯한 블랙티가 나온다. 자봇은 작은 찻잔에 블랙티를 조금씩 따라 옆의 큰 그릇에 버리고, 따듯해진 찻잔에 블랙티를 가득 따라 우리 앞에 한 잔씩 놓아주었다. 우리는 자봇의 이 친절에 ‘라흐맛(감사합니다.)!’을 외쳤다. 그리고 자봇에게 한국말 ‘건배!’를 가르쳐주고, 넷이 함께 건배! 후 우아하게 식전 차를 한 입씩 마셨다. 식당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다가 미소를 보내주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자봇이 갑자기 자신의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러더니 음식을 먹기 좋게 썰어서 우리 접시에 조심스럽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닌가. 자봇은 집에서도 그 일은 자신의 몫이라며 우리가 말리는데도 계속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자봇이 자신의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먹을 때 입에 닿는가, 슬쩍 보았다. 사실 나는 이런 것에 매우 예민한 편이다. 자봇은 조심스러웠고, 자신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손님 접대에 진심이었다. 미안했다.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돈은 우리가 냈는데, 자봇에게 중요한 손님으로 식사 대접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즈베키스탄나라에게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와우! 멋진 자봇. 우린 무슨 횡재니. 이번 생은 틀렸으니, 다음 생에서나 자봇 같은 남편 만나길 기도하자.” “덕 많이 쌓아라!” 우리말을 모르는 자봇은 수다 떨며 웃어대는 우리를 보며 함께 웃었다. 낯선 나라 여행 중에 지쳤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우리는 예의를 갖춘 품격 있는 여행자 본성으로 충만해 있었다.


    오후 3시경 국경에 도착했다. 자봇과 헤어질 때 우리는 국경에서 사진을 찍고 동전까지 탈탈 털어 팁으로 지불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몇백 원에서 몇십 원 정도 되는 동전을 팁으로 받으면서 자봇은 환히 웃었다. 그렇게 자봇과 작별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를 생각하면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압둘 자봇과 함께했던 5시간 동안의 택시 여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여행에서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은 크고 고급스럽거나 비싼 것에 있지 않다. 예정에 없던 어떤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 틈새에 있던 진심 어린 친절을 발견하는 순간이 최고이다.

추천 브런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