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2층으로 올라가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리니 마사지 베드가 늘어선 방들이 여럿 보인다. “이 방 들어가세요” 중국인이 어설픈 한국어로 우리 일행을 안내한다. 여기는 중국 광저우의 칭웬시 마사지 숍이다. 비치는 부직포로 만든 반소매 상하의 마사지 옷으로 갈아입었다. 유니폼을 입은 네 명의 20대로 보이는 여성 마사지사들이 환한 미소로 들어온다. 통통하고 귀여운 얼굴의 마사지사가 내 앞에 와서 인사한다. “니하오!” 침대를 편하게 눕히고, 다리 쪽으로 뜨거운 물을 받아 발을 넣어준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누워서 그녀들이 내 근육을 얼마나 힘 있게 풀어주나 기대해 볼 차례다.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발랄하게 떠들며 마사지를 시작한다.
“니 앞에 친구가 젤로 힘 세 보인다.”
“응 그런 것 같아.”
“에구구, 시원하다.”
난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내 몸을 주물러 대는 것 자체가 극히 혐오스러웠다. 또한 마사지 숍이 갖고 있는 그간의 이미지가, 어둡고 은밀하고 음란한 사건·사고의 온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컸다. 그래서 여전히 국내에서는 마사지 숍을 가지 않는다.
친구들은 아시아 쪽 해외여행만 가면 마사지를 받으려 들었다. 발리에 갔을 때였다. 숙소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마사지사들을 불렀다. 일행 모두 받는 것으로 독촉해서, 나는 억지로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마사지의 맛을 알게 되었다. “시원하다.” 엄마 어깨를 주무르면 나오는 소리를 내가 하고 있었다.
마사지를 몇 번 받아보니, 전문가의 손길은 확실히 달랐다. 주물주물해주다가, 내 몸의 취약한 부분, 나의 경우는 왼쪽 어깨와 목뒤 등인데, 그 부위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근육을 풀어준다. 그러면서 점차 나는 마사지에도 전문가가 있고, 중요한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사지 숍의 청결이 제일 우선이었다. 그 판단은 우선은 외관에 있었다. 그리고 베드와 커버. 외양을 보고 허름하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 나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나는 몇 달 전에 깨달았다.
작년 12월, 캄보디아에 갔을 때였다. 캄폿에 도착해서 렌터카 운전기사에게 마사지 숍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현지인으로, 우리의 캄보디아 여행을 책임지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현지인들이 가는 곳으로 추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잠시 후 음식점 등 각종 상점이 즐비한 거리 안에 있는 허름한 숍 앞에 차가 섰다. 나는 숍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는 싫어요. 너무 허름하고 청결해 보이지도 않고.”
“시각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마사지 숍이니, 믿고 한 번 받아보세요.”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니, 나란히 늘어선 8개의 낡은 베드에 캄보디아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낡고 연푸른 유니폼을 입은 마사지사들이 눈을 감거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열심히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블라인드 마사지 숍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더욱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비용은 7달러 정도였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고급 호텔에서 받으면 거의 25~30달러인데 그 비용의 1/3도 안 되었다.
일행은 벌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꺼림칙했지만, 차에 혼자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쪽으로 작은 룸이 있고 3개의 낡은 베드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쪽으로 안내되었다. 룸에는 선글라스를 쓴 젊은 남성 둘과 여성 마사지사 한 명이 있었다. 나는 통통한 젊은 여성 마사지사를 선택했다. 베드에 눕자, 마사지사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Where are you from?”
“I am from South Korea.”
“Ok, good.”
여성 마사지사는 눈을 감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부터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내 몸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천천히 근육을 풀어나갔다. 나는 점차 긴장이 풀리고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에 몸이 노곤해졌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났다. 옆의 베드에 있던 일행이 아이스커피를 베드 머리 쪽 아래에 두었는데, 마사지사 발에 걸려 엎어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우리가 배려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실수한 것이었다. 서로 미안해했다. 마사지사도, 내 일행도. 소란은 잠시였다. 마사지는 계속되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마사지해주는 사이, 마사지사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캄보디아 말이니, 나는 백색소음쯤으로 여기며 비몽사몽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시설이 낡았을 뿐이지, 더럽지는 않은 것도 알게 되었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수건을 깔아 주었다.
우리는 마사지가 끝나고 나서 다른 곳에서 주던 팁의 두 배를 지급했다. 가격도 워낙 착했다. 일행은 나와서 그동안 받았던 마사지 중 최고였다고, 운전기사에게 감사를 전했다. 낡고, 조금은 더럽고 좁은 마사지 숍은 그 안에 최고의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그들은 그것이 유일한 생계이기에, 잔꾀 없이 손끝에 마사지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비록 시설 외양은 허름하고 낡은 옷을 걸쳤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열심이었다. 나는 또 외양에 갇혀 진짜를 못 알아볼 뻔했다.
몇 년 전, ‘어둠 속의 대화’란 전시체험을 한 적이 있다. 100분 동안 깜깜한 어둠 속에서 먹고 마시고, 계단 등 다양한 체험을 했었다. 시각장애인이 되어서 일상을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과그들과 동등한 사회인으로 서비스를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그로 인해 경직되고,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 일상에서 떠나는 여행은 좋은 치유 약이자, 내 마음에 주는 마사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끔 나에게 주는 팁처럼, 근육 마사지를 받으면 몸까지 풀려서 돌아온다. ‘여행의 마지막 마무으리!’로 ‘마사지’를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내 마음은 또 한 뼘 컸다. 내 선입견의 세상이 또 한 꺼풀이 무너진 것이다. 여행이어서 가능했던 새로운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