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그대 다시 마주할 듯해
넘치는 마음 시 몇 줄을 적어 볼까
라고 말했던 스무 날,
노을이 체념에게 잡아먹히고
무표정에 집착하게 되었을 때쯤
그대는 악마가 되어 나타났다
지옥은 두 번 다신 가보고 싶지 않을 만큼 흥미로웠다
사라지지 못한 것들이 남았고
그토록 바라지 않던 길이 생겼고
이름도 겉모습도 처음 보는 꽃이 가득했다
환생은 불규칙적이었다
죽을 만큼 괴롭고 편안한 날들의 반복 끝에
간신히 울어대지 않는 정적이 오면
그대는 또 다시 악마였다
그토록 바라던 이상과 닮은 악마였다
잠식된 감정은 난해해서 잠에 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꽃을 꺾었다 잎의 수를 다 세지도 못한 채
과거 때문에 너무나 커진 현재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쳤다 깊고 깊은 굴로
기다렸다 풀내음이 가짜 꽃을 만들 때까지
오랜만에 맞이한 지금은 어지러워서
혼란 속의 꿈틀대는 심호흡에
한없이 집중했다
자아도취의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