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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베트남으로

Chapter 2. 세계 속으로

by 뚱이

♡ 호치민으로 고고


숙소에서 제공해준 차를 타고 씨엠립공항에 도착해서 보딩 전광판을 보니 아직 우리 비행기 정보가 없다. 저녁 6시 30분 비행기인데 우리가 좀 일찍 왔나보다.

대기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면서 보딩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는데, 어라? 우리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뜬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서 황당하기도 하고, 겁도 덜컥 났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수는 없기에 베트남 항공 직원을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취소된 게 맞고 우리는 9시 35분 비행기를 타야 된단다.

‘아~ 어떻게 하지?’하고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손해보고 있을수는 없다 싶어 다시 베트남 항공 직원에게로 갔다.


이렇게 예고도 없이 4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게 어딨냐고, 이런경우에는 어떤 보상이나 조치가 있어야 되지 않냐고 따지듯 물었더니 미안하다며 공항내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식사권을 내민다. 이것도 보상 항의를 안 했으면 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역시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자기 권리를 스스로 챙겨야하는 건 다 똑같은 거 같다.


마침 배가 고팠던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점원에게 항공사에서 받은 식사권을 제시했더니 익숙하게 식사권을 받아들고 주문을 안내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일이 허다했던지 여기저기에서 식사권을 제시하는 여행객들이 눈에 띈다.


비행시간이 늦춰지는 바람에 호치민에 도착하는 시각이 저녁 11시로 늦춰져 버렸다.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로 걱정거리가 많아진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탑승시각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개찰구에 와 보니 이건 또 뭔가? 탑승시간 1시간 전인데 벌써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었다.


예정된 비행시각이 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승객이 전부 탑승했다고 그냥 출발한다.

허허~.

나름 베트남 국적기인 베트남에어라인 인데...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호치민 공항에 도착해보니 정말 11시가 되었다. 밤 늦은시간이라서 주변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기사들만 우리에게 손짓하며 다가온다. 두 차례의 실갱이를 벌이고 나서야 적당한 가격의 택시를 탈 수 있었고, 다행히 숙소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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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항서 감독


베트남에서 찾아간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오늘은 특별한 분이 예배에 참석하셨다고 사회자가 소개를 한다.

바로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감독님 이셨다. 예배가 끝나자 여러 사람들이 박감독님과 악수라도 한 번 해보려고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나도 박감독님과 사진이라도 같이 찍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왠지 자랑질을 위한 사진찍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배당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아내가 계속 아쉬워하며 내 눈치를 본다.

그래. 아내가 원한다면야 뭐. 다시 올라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올라가보니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는 박감독님을 교회분들이 안내해서 교회 뒷문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덕분에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던 아내의 기대는 날아가 버렸고, 아쉬운 셔터질에 박감독님의 뒷모습만 찍혔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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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의 우리가족들의 모습을 돌아보면 많이 안타깝다. 자기의 것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열정이 좀 부족한 거 같아서 그렇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고만 있으면, 사회에서는 아무도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동안은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눈치껏 알아서 챙겨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뭐든지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전부 해주다보니 우리가족들이 너무 나약해지는 거 같고, 이로 인해 나중에 힘들어하고 상처받을까 걱정이다.

자기의 의사표현을 똑바로 하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과 배려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결정한 사항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빠른 판단으로 결정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싶었다.


물론 내 욕심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것이 잘못된 방법이 아니라면 하는데 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 집주인이 두 명 이라고?


하노이보다는 조금은 공기가 좋은 호치민의 여러 관광지들을 돌아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먼지가 올라앉은 몸을 따뜻한 물에 씻어내고 나니 졸음이 몰려온다.


스르르 눈이 감기려는데 갑자기 집주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이름을 물어보니 나와 계약했던 사람이 아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사정을 들어보니 나와 계약했던 사람은 이 숙소의 본 주인이 아니었다. 찾아온 사람이 원래 이집 주인이고, 이 사람에게 세를 얻어 사는 사람이 우리에게 집을 빌려 준거라고 한다.


집주인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에게 집을 빌려준 사람은 집주인에게 한달에 85만원 정도에 집을 빌려서 150만원 정도에 빌려주고 있었다.

물론 공실률을 생각하면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결국 자기돈은 회수하고 중간마진을 이용한 수익방법을 택한 거다.


돈 버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싶다.

이런 방식으로 몇 개의 숙소를 관리만 하면서 차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꽤나 괜찮은 임대업이 되는 거다.

별걸 다 알게 되는 하루다.


♡ 달랏으로


호치민의 숙소를 나와 달랏으로 가기위해 그랩을 불러 공항에 도착했는데, 기사님이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당연히 국제선을 탈줄 알고 국제선 출국장에 내려주셨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도 들어가 보니 우리 비행기가 보딩 안내판에 없다. 이상하다 싶어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국내선 청사는 건물이 따로 있단다.

그랩 기사에게 우리가 가는 곳을 이야기 해줬거나, 국내선으로 가자고 이야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영어 울렁증 때문에 확인하지 않았던 값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달랏으로 가는 비행기는 비행시간이 한 시간 이어서 그런지 잠간 눈을 감은 것 같았는데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달랏공항에서는 한국가요를 좋아하는 친절한 택시기사님 덕분에 이승철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숙소까지 즐겁게 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쉬겠다며 그냥 룸으로 들어가 버려서 아내와 둘이서 만 달랏의 야시장을 오붓하게 둘러보며 구경했다.


야시장을 둘러보며 이곳에서 제법 유명한 베트남 피자와 두유 한 잔을 사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길가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간단한 안주에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아내는 잠자리에 뭐 먹으면 불편하다고 싫단다. 내 생각에는 지저분한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아내와 함께 손잡고 그동안의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쑤언흐엉호수에 도착했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달랏의 밤 풍경은 베트남스럽지 않게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색다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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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듀 2019


달랏은 베트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고 햇볕이 좋았다. 덕분에 오토바이 매연 때문에 머리 아파하던 아내가 오랜만에 활력을 되찾았다.


달랏은 프랑스사람들의 휴양지로 개발되었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제법 많이 있었고, 하늘 마저도 유럽의 하늘과 비슷해 보이고 날씨까지도 비슷하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 호수에 드리워지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호수주변을 돌며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장면들을 사진에 담았다.


한참을 사진과 함께 호수주변을 돌다가 꽃 축제가 한창인 공원을 만났다. 이번 달이 달랏에서 꽃 정원 축제가 열리는 달이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입장료를 내고 축제 현장으로 들어갔다.


축제 현장에는 공원마다 테마를 두어 거기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에 꽃들이 더 밝게 자기들의 색을 뽐내고 있는데다가 어울리는 꽃들끼리 잘 모아서 꾸며놓은 정원도 너무나 예뻐서 이 곳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도시락이라도 싸왔다면 하루를 투자해서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아내는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분제코너에서 넋을 잃고 그 정교함과 고풍스러움에 빠져들었다. 집에 하나 가져다 놓고 싶은 욕심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아쉽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저녁에 있을 송구영신 예배시간을 확인하러 숙소 근처에 있는 교회에 들렸다. 하지만 교회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송구영신 예배에 대한 어떠한 안내문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 나트랑에서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나트랑으로 갈 때 이용할 슬리핑 버스를 예매하러 발길을 옮겼다.

이곳 달랏에 있는 버스터미널은 우리가 있는 숙소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어서 표를 예매하기 위해서는 그랩을 타고 가야 하지만 다행히도 숙소 근처에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는 별도의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 달랏에서는 버스표를 예매할 때 우리 숙소의 주소를 알려주면 버스 시간에 맞춰서 셔틀버스로 버스터미널까지 무료로 픽업서비스를 해준단다. 다행히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가 영어를 잘 하셔서 우리가 더듬더듬 이야기 했는데도 잘 알아들으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면서 예매를 도와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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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밥 포장해 주세요


저녁생각이 없다는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아이들과 함께 숙소 앞 쌀국수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곳 달랏에 와서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맛있는 쌀국수 가게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숙소 바로 앞에 있었다. 역시 구글 평점은 믿을만 했다. 맛도 좋은데 야채와 고명들 까지 계속 리필해주는 고마운 가게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가 없다. 바로 옆에도 쌀국수 가게가 있는데 그곳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쌀국수가 다 거기서 거기겠거니 하고 옆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 인기 있는 맛집과 인기 없는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바로 옆 가게는 재료를 아끼지 않고 야채도 듬뿍 넣어주면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해 주는데 반해 이 가게는 미소도 없고, 야채도 조금 줘서 더 달라고 했더니 정말 조금 더 주니 국수양 마저도 적게 느껴졌다.


서비스가 좋지 않으니 손님이 별로 없었을 테고, 손님이 없으니 월세 내기도 빠듯할 테고, 그러니 재료를 더 아끼게 되고, 기분이 다운되니 서비스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인거다. 쌀국수에 대한 아쉬움보다 가게 주인이 안쓰러워 마음이 더 불편한 저녁식사였다.


아쉬운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오려는데 문득 저녁을 먹지 않은 아내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뭔가를 포장해 가야겠다는 생각에 어제 저녁을 먹었던 한식집에서 파는 김밥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함께 한식집에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다행히 포장이 된단다. 야채김밥과 김말이튀김을 주문했더니 김치와 물까지 서비스로 포장해주는데 가격이 단돈 3천원이다. 정말 놀라운 베트남의 물가다.


숙소에 가져와서 혼자 핸드폰과 놀고있는 아내에게 요기라도 하라며 건네 줬더니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속이 좀 불편해서 저녁을 먹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나가고 얼마 안 되서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더란다. 빈손으로 왔으면 많이 서운해 했을 뻔 했다. 다행히 맛있게 먹고 감사해하니 덕분에 기분 좋게 달랏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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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인을 만나다


오늘은 우리가족 세계일주의 마지막 종착지인 나트랑으로 가는 날이다.

이제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일찍 일어났는데 딱히 할 건 없는 새벽이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더니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아내가 잠에서 깼다. 조금 더 자야하는데 잠 못 자게 부스럭 거리는 남편이 나쁘다며 투덜투덜 한다.


이삿짐을 다 싸고 나니 오전 8시가 조금 넘었다. 다들 극성스런 아빠로 인해 일찍 준비를 한 덕분에 조금 일찍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숙소 앞 쌀국수 가게의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우리의 고정 메뉴가 되어버린 쌀국수를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식당 앞에서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보인다. 아내가 뭐 찍고 있나 보다고 이야기해서 나가 보니, 어라? ‘대한외국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현민씨가 쌀국수를 먹는 장면을 찍고 있다.


언제나 뭉그적대면 후회만 남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잽싸게 다가가서 카메라 감독님께 물어보니 방송촬영중이라고 하신다. 잠시 기다렸다가 카메라를 철수하는 걸 확인한 후 한현민씨에게 가서 사진 좀 찍겠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선뜻 응해주신다. 이때다 싶어서 아내와 딸아이를 불러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뭐 좋은 일이 있을려나? 아침부터 연애인을 보다니”

원래 계획대로 9시에 나왔으면 못 볼 수도 있었고 배고프다고 조금 일찍 왔어도 못 볼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딱 맞아서 이런 귀한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을까? 이건 필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징조다 싶다.


이때도 아내와 아이들은 “와! 한현민이다” 이러면서 발만 동동구르는 모습이 나는 좀 못마땅했다. 우리 식구들은 누군가 멍석을 깔아줘야 뭔가를 한다. 본인이 하고 싶어도 스스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아내나 아이들이나 세상 살면서 기회가 지나가는 걸 보고도 ‘어! 어!’ 하다가 놓치지나 않을지 말이다.

어찌됐건 맛있게 식사도 하고 연애인과 함께 사진도 찍으며 멋진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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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을 멋지게 보내는 부부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주던 너무나 착해보이던 카운터 직원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한 뒤, 풍짱 슬리핑버스 터미널까지 우리를 태워줄 미니버스를 기다렸다.


예약한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한 미니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다른 손님들 두 그룹이 합승했다. 그중 한 가족은 연세가 지긋하신 노 부부였는데, 골프백을 같이 가지고 타셨다.

아내가 인사를 건네고 달랏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여쭤보니, 은퇴하신 후 간간히 이렇게 골프여행으로 들르신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느낀 것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이렇게 노후의 삶을 즐기시면서 세상을 누리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노후에 사람들을 만나서 살아온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자기자랑만 하시는 그런 어르신들만 보아 오다가 이렇게 노후를 즐기시면서 건강도 유지하시는 분들을 보게 되니 ‘우리도 저렇게 늙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자극을 받았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골프부터 배워야겠단다. 우리도 나이 들면 다른 운동은 같이 하기도 힘든데 골프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부부동반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인거 같아 보여서 우리도 부지런히 배워서 같이 하기로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나트랑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내는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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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리핑버스를 타고


이번여행에서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경험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슬리핑버스 체험이다. 시골버스라서 그렇게 큰 기대는 안했는데 방송이나 블러그에 올라와있는 것 보다 훨씬 편안하고 넓고 좋았다. 단지, 달랏에서 나트랑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구불구불한 길이어서 어쩔수 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제외하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줄 수 있는 편안한 버스였다.


나트랑에 도착한 슬리핑버스는 손님들이 예약한 호텔까지 미니버스로 드롭다운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6천 5백원에 픽업, 슬리핑, 드롭다운까지 해주는 스리핑버스 시스템이 여행자인 우리에겐 너무나 고맙기만 했다.


우리는 빈펄랜드 선착장에서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기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친절하게도 선착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빈펄랜드의 벨보이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내려 주셨다. 감사했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짐을 내리고 있는데 벨보이가 다가와서는 자기가 짐을 내려서 우리 숙소에 옮겨 놓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체크인 하라며 데스크로 안내해 준다.


지난 6개월 동안, 언제나 낑낑대며 짐을 옮기고 어렵게 숙소를 찾아다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그동안 했던 많은 고생들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소에서 이런 호강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 여기가 천국인가?


아름다운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넓고 안락한 쇼파에 앉아 웰컴쥬스를 대접받은 후 리셉션으로 안내받아 체크인을 하면서 안면인식 사진을 찍었다. 요즘은 출입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안면인식 시스템을 이용해서 얼굴만 보여주면 통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단다. 세상 참 좋아졌다.


제트보트를 타고 빈펄섬의 리조트 리셉션에서 룸 등록을 한 후에서야 드디어 우리가 쉴 숙소에 안내를 받아 도착할 수 있었다.


긴장 반 기대 반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 가족 모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어마어마한 실내 전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주방과 거실만 해도 족히 30평은 되어 보이고, 두 개의 방에는 각각 화장실이 하나씩 딸려있는데 그 크기만도 웬만한 방 크기만 했다. 커다란 욕조와 별도의 샤워부스, 파우더 룸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 방안을 둘러보니 두 명이 굴러다니며 잠들어도 될 정도의 커다란 침대와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TV, 앤틱한 분위기의 티테이블과 의자들이 있다.

커다란 통창을 나가면 넓은 프라이빗 정원이 있고, 그 한 켠에는 썬베드와 티테이블이 갖춰져 있는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다.


대박! 이건 정말 대박이었다. 우리도 이런 집에서 쉬는 날이 오다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저 감동, 또 감동 이었다.


이사하느라고 점심을 제때 못 챙겨 먹은 우리는 저녁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저녁식사는 리셉션이 있는 건물 내에 레스토랑에서 할 수 있단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이긴 하지만 리셉션에 전화하면 전동차를 보내준다. 피곤해서 꼼짝도 하기 힘든 우리에게는 딱 안성맞춤의 서비스였다.


뷔페 음식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지만 숙소가 준 감동에 비해서는 좀 못한 듯 했다. 그래도 여행 중에 이렇게 편안하게 다양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기에 한 시간 넘게 충분히 즐기고서는 숙소에 돌아왔다.


이제는 새로운 여행지를 조사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식당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 그동안에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것들로부터 해방되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진 덕분인지 그동안의 여독을 풀어볼 요량으로 몸을 맡긴 욕조 안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정말 푹 쉴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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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펄리조트 그리고 풀빌라


처음 경험해보는 고급 리조트에서의 새벽은 나를 설레이게 하여 더 이상 잠자리에 있지 못하게 했다. 해변 넘어 야트막한 산위로 조금씩 붉어지는 여명을 보며 6시쯤 산책길에 나섰다.


이국적인 정원의 아침 산책길은 기나긴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으로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 메인 리셉션이 있는 건물까지 10여분 정도의 조용한 산책길은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와 산들산들 불어와 내 몸에 부드럽게 부딪히는 적당한 습도의 바닷바람이 아침 빈속을 편안하게 해주어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는 산책길이었다.


메인 동에 도착해보니 역시 골프 치시는 분들이 제일 부지런하시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골프를 치러 오신 분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우리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렇게 골프여행을 다닐 수 있겠지 하면서 그날을 그려보았다.


쌀국수 한 사발과 과일, 커피로 아침을 열면서 일기를 써내려갔다. 한 시간쯤 지나서 큰아이가 식당에 도착했다. 역시 또 한 시간이 더 지나니 아내가 왔다. 어쩜 저렇게 시간을 잘들 지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랜만에 여유 있게 아침식사를 하니 너무 좋다. 6시부터 10시까지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지는 식사시간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과 해변을 보면서 지난 6개월간의 여행이야기들을 다시 상기시켜가며 천천히 아침시간을 즐겼다.


아침 식사 후 숙소에 있는 개인풀장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족들은 이상하게도 누군가 선동해서 하자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나서서 하지를 않는다. 역시나 내가 먼저 풀장에 입수하고 나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내도 수영복을 갈아입고 큰아이도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는 순수한 우리 가족만의 수영장이어서 인지 다들 신이 났다. 정신없이 물장구를 치다보니 제법 운동이 되었던지 더부룩했던 속이 좀 편해지는 것 같다.


숙소에 전자저울이 있는 걸 발견하고서 여행을 떠난 뒤 우리의 몸무게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자신의 몸무게를 확인했다. 엄마와 아빠는 조금 늘었는데 아이들은 조금 빠졌다. 특히 막둥이는 5kg이나 빠졌다. 누가 보면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을 엄청 부려먹고 엄마 아빠만 많이 먹고 다니는 나쁜 부모들 인줄 알겠다 싶다.


열심히 퐁당거리며 놀다 보니 어느덧 12시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안지난거 같은데 벌써 점심시간이라니. 그래도 이미 계산을 해버린 하루 세끼 밥값이 아까워서 또 먹으러 갔다. 배가 하나도 안 고픈데도 먹으니 신기하게 또 들어간다. 이러다 살이 얼마나 더 쪄서 귀국을 할지 걱정된다.


숙소에 돌아와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기고서 TV를 보면서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잠깐 쉬었다가 또 먹고, 또 쉬었다가 또 먹었다. 이게 일상이 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아무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는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은 정말 편안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내와 함께 숙소 앞 해변을 산책하며 옛날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18년이다. 그 세월의 추억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해변을 충분히 걷고도 남을 만큼 많이 쌓여있어서 하나하나 끄집어 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바다 모래의 부드러움과 조근조근 속삭이듯이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우리 부부의 옛이야기들과 함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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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아침


오늘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레스토랑에 도착했기에 창가의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 내내 아내의 눈에는 행복함이 가득 차 있었다.

여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 아내만 특별한지 모르겠지만 보여지는 것들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어떻든 아내가 행복해하는 이 아침시간 만큼은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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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둥이의 꿈


여행중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오던 막둥이가 오늘은 자기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 꺼냈다. 자기가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상당히 뛰어난 소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막둥이의 완성된 그림을 보지 못한 우리는 막둥이의 그림솜씨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막둥이가 언니랑 엄마에게 일러스트 학원을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이야기 해줬다. 막둥이의 기를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너무 모르고 착각 속에 사는 것 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 뭔가 도피만 하려고 하고 재미로 그냥 해보고 아니면 마는 그런 식의 즉흥적인 결정을 이제는 지원해 줄 수도 없다.


그래서 저녁식사 후 가족끼리 대 토론회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언니가 중학생 동생에게 조언을 해주는데 옆에서 들어보니 제법 조리있게 말을 잘한다. 기특했다.


“중학교 생활을 만만하게 보면 안 돼. 생각한 것처럼 쉽게 생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동안 네가 보여준 행동들이 가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어. 그러니 이제부터는 너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거야.”


막둥이의 안일함을 일깨워주는 일침을 놓는 언니의 말들이었다. 참 기특한 말들이다. 엄마 아빠가 해야 할 말들을 언니가 대신 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언니의 말이라고 잘 들어주는 막둥이도 기특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도 저 시절을 겪어 왔지만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처럼 생각했다면 한 대 때려주면서 “내가 네 속을 다 알아!” 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가 보다.


♡ 귀국


행복했던 리조트 생활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우리의 기나긴 여행이 거의 끝나 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뿌듯함이 함께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런 저런 복잡한 마음들을 뒤로하고 그랩을 불러 타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런! 지난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국제선을 타야 하는데 국내선 탑승장에 내린 것이다.

휴~ 어쩔 수 없이 국제선 공항까지 걸어서 가야했다.


오랜만에 장시간의 비행이다. 4시간 조금 넘게 걸린 거 같은데, 원래 출발시간보다 두시간정도 늦게 이륙한 비행기 덕분에 한국에 도착해 보니 대중교통이 다 끊어진 새벽 시간이다.

공항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앉아있기에는 너무나 피곤했다.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안도의 마음에 긴장이 풀렸던지 몸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짐이 많아서 밴을 타야 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말이 통하는 한국이니까. 이정표도 한국어로 되어있고 누구에게나 한국말로 물어보면 된다. 너무 좋다.


이른 새벽시간 인데도 다행히 깨끗하고 넓은 차를 찾을 수 있어서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다시 돌아온 우리집


우리집인데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출입문을 열자 우리를 반겨주는 건 우리의 반려묘 ‘뚱’이었다.

“오랜만이다 뚱아! 잘 지냈어?”

제수씨가 우리가 도착하는 날에 맞춰 ‘뚱’이를 데려다 놨나 보다.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식탁위에 올려져 있는 것들을 보고 입을 떡 벌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천사같은 제수씨가 미리 장을 봐와서 식탁위에 올려놓고 간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며 나물이며 기본 밑반찬까지 해서 곱게 넣어두었다. 우리 제수씨는 정말 천사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내일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외식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한국라면은 정말 반가웠다. 베트남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새벽 2시가 되기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우리에게는 하늘의 맛나와 같은 귀한 음식이었다.


제수씨 덕분에 맛있게 라면을 끓여먹은 후 우리는 6개월간 쌓인 집안의 먼지를 먼저 닦아내야 했다. 발바닥이 까매질 정도로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닦았지만 계속 먼지가 묻어 나왔다. 앞으로 몇 일은 더 닦아내야 없어질 것 같다. 오늘은 딱 네 번만 닦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피곤해서 더 이상은 힘들기도 했으니까.


너무나도 많은 경험들을 했던 꿈과 같은 188일간의 세계일주를 마친 우리는 원래 우리가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지친 몸과 부른 배가 인도하는 대로 어느새 하나 둘 꿈나라로 빠져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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